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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판사아저씨 Dec 23. 2020

책을 팔아야 하는데,

출판사 영업사원의 푸념


나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직무는 영업이지만, 크지 않은 출판사라서 영업은 물론이고 그 외 잡다한 업무들도 처리하고 있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핵심적인 일인 편집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각 서점에서 온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책을 찾고, 포장하고 출고하는 일을 한다. 우리 출판사는 대학 교재를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각 학기 초인 3월과 9월은 그 주문량이 상당하다. 그때는 영업활동은 뒷전이고 매일 창고에서 책 먼지에 둘러싸여 있는다. 그리고 4월부터 10월부터 방학 전까지 전국 대학교를 다니면서 구내서점에서 수금을 하고 우리 출판사 교재를 집필하신 교수님들을 찾아뵙는다. 이때 진정한 영업활동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하면서 아무리 영업을 열심히 하고 잘해도 매출이 하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건 우리 출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출판사의 공통점이라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개인의 영업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수준 높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지면 활동은 아무래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대학 교재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도서도 제작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방향 영업은 또 다르게 해야 해서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와중에 초중고 교사 8명이 의기투합하여 각 학교에서 벌어진 제자와의 에피소드, 교사들이 제자를 가르치면서 느꼈던 소회 등을 다룬 책을 출판하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교사들이 집필했기 때문인지 다양한 독서 경험이 묻어나고, 글의 표현력 또한 뛰어났다. 글을 읽는 내내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교사로서 본인이 부족하다는 자책도 있고, 좋은 제자를 만나 본인이 더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본인 손으로 제자를 퇴학시켜버린 이야기까지 소재가 풍부하여 글 읽는 재미가 매우 뛰어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나는 팔아야 한다. 혼자 읽고 재미있구나 느끼고 말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출판사 매출로 가지고 와야 한다. 책이 재미있으면 알아서 잘 팔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형서점 입구에 수백만 원을 주고 진열하여도 안 팔리는 책은 안 팔린다. 각종 서평을 모집하여 온라인에 게재해도 그냥 근근이 팔리는 수준일 뿐 월등하게 판매되는 경우는 없다. 뭐, 옛날 모 방송국에서 ‘책을 읽읍시다’처럼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우렁차게 책을 홍보해주면 좀 팔릴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팔아야 한다.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공부하고, 글쓰기를 주 업무로 하셨던 선생님들께서 영업을 하기는 쉽지 않고, 출판사에서 영업을 몇 년째 전공으로 하고 있는 내가 팔아야 하는데, 도통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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