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돌파구를 찾아서
영주권은 얼마 전에 나왔지만 아직 야간으로 다니는 일리노이 주립대학 세무학 석사 과정은 반쯤 마친 상태였고 미국회계사로서의 경력도 마땅히 있다 없다 말하기도 뭐 한 회계법인 경력 10개월 일반 기업 일리노이 본사 세무회계부서에서의 경력 1년 5개월이 내 이력서의 전부였다. 어째 저째 비한국인들과 일은 하고 있고 대학원 지원 시 제출해야 했던 토플 점수가 의외로 높게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언어적 능력이나 기본적인 상식 및 지적 능력은 이민 3년 차가 느끼기에 아주 부족했다. 특히나 이번 경험을 통해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과 무엇보다 이 나라에서 당최 어떤 법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느 관할 구역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이런 수준과 경력으로 이혼녀 딱지를 달고선 한국으로 돌아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곳에서 혼자 그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 더 나아가 성공적인 정착을 할 수 있을까? 그 또한 막막한 노릇이었다.
종종 나를 덮치는 암담함과 막막함에 가슴이 답답했지만 고맙게도 주변에서 나의 상황을 알고 알게 모르게 참 많은 도움을 주었다. 원래 본인들끼리 아주 친하던 나의 보스들이 종종 금요일 근무 후 근처의 술집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하고 이전 회계법인 동료들이나 타 부서 젊은 동료들도 나의 상황을 알고 종종 주말에 본인들 모임에 나를 부르기도 하며 내가 우울함에 잠식되지 않게 도와주었다. 한국에서 여자대학을 나오고 동아리 활동도 마땅히 열심히 한 적 없이 근면한 친구들과 미국 회계사를 준비하며 살다가 나름 독실한 기독교인 남편을 만나 사회적 격리에 가까운 인생을 살던 나에게 나름 젊고 살짝 인싸스러운 생활은 갈망하던 바였다. 사람들과 별 의미 없는 농담을 하며 음주에 의존하면 걱정 근심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줄어든다는 것을 안 나는 열심히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주의 여파를 온몸으로 겪는 다음 날이나 평일 저녁마다 어딘가 허하고 암담한 심정은 나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엄마가 찾아왔고 나는 음주는 가급적 멀리하고 심신의 안정을 위해 독서도 하고 엄마와 대화를 많이 나누며 이 경험 중 내가 가장 어렵게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무지였다. 나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일을 하면서도 그랬고 배우러 간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Internal Revenue Code라는 조세법이 가장 상위 법인데 나는 그 체계도 제대로 안 잡혀있으니 혼자 미 국세청에서 공표하는 설명서를 뒤적이며 답안을 작성하곤 했고 교수님도 좋은 학점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법 때문에 답답하고 뭔가 돌파구도 필요하니 더 늦기 전에 로스쿨이나 가야겠다고 하니 엄마는 얼굴을 밝히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전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무모한 도전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