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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6)

6. 국선 변호사

잠시 후 나를 불러낸 법원 경찰은 나를 후비진 빈 사무실로 데려갔다. 낡은 책상과 그 책상에 앉을 의자가 벽을 바라보며 놓여있었고 그 왼쪽 옆에 반대편을 바라보는 의자가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나를 그 옆 의자에 앉힌 경찰은 나의 오른팔을 들어 올려 책상에 연결된 수갑을 채웠다. 혹시나 모를 위협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또 한 번 나의 가슴은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간 후 곧 열정 없어 보이는 표정의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국선변호사가 폴더가 잔뜩 들은 서류 꾸러미를 들고 들어와 폴더 하나를 열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과 나이 주소 직업을 묻더니, 지금 무슨 구형으로 체포되었는지 아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domestic violence라고 알고 있다 답하니 domestic battery란다. 무슨 차이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가정폭력이었다. 기록에 보니 아무 전과가 없는데 맞냐고 재확인한 후, 앞으로 판사 앞에서 어떤 형식으로 어떤 절차를 밟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법정에 들어가 자기 옆에 와서 서면 이름을 확인하고 판사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 하며, 자기는 내가 전과도 없고 직업도 분명한 큰 오점은 없는 일반인이니 이 구형은 정당하지 않다고 불기소 처분을 판사에게 피력하겠다 했다. 나는 또다시 이 구형은 애초에 고려되지도 말았어햐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지만 그 변호사는 나의 억울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알았으니까 법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짧게 대답했다.


법률 시스템에 문외한이었고 그가 왜 누구를 어떻게 도와주는지 의아했던 나는 그럼 당신은 나를 변호하는 것이냐는 황당무계한 질문을 그때 했던 것 같다. 그녀의 흠칫 놀라는 표정이 기억나는 걸 봐서는 내가 뭔가 똑똑지 못한 질문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해 반대편에 서 있을 검사인지 나를 체포해 갔던 경찰인지 여하튼 누군가가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판사가 나의 구형을 취소할 수 있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나가게 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판사가 구형을 취소하고 불기소 처분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후로 나가서 집에 가면 된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밤새 고민했던 빨간 줄이 궁금했다. 그럼 나는 이무 기록도 없이 깨끗하게 나가는 것이냐 물었더니 아니라며 체포기록이 알링턴 하이츠와 주정부 기록에 다 남을 것이라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변호사는 그 기록을 어찌어찌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지만 구형 종류와 일단 지금 판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절차가 다르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했다. 나의 표정을 본 그녀는 이건 자기가 도움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나중에 나가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처리하라 조언했다.


나중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expungement나 sealant가 가능한데, domestic battery 같은 felony charge는 만약 구형이 되어 진행되면 그 케이스가 종결된 후 긴 일정 시일이 지나면 sealant같이 덮어두기만 가능하며 charge가 drop 되어 arrest record만 있는 경우는 곧바로 expungement를 신청할 수 있었다.


이 변호사가 해준 것은 이러한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이 중 몇 가지 단어를 써가며 이런이런 절차가 있다는 정도는 이야기해 준 것 같았다. 어쨌든 유쾌하지 않은 기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 같은데 그 후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내 한계가 무너져 앉은 내 가슴을 더 짓눌렀다. 왜 이 먼 타국에서 부족한 언어와 지식만 갖고 살면서 이런 난국을 맞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 힘이라더니 힘없고 부족한 내 신세가 한탄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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