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정 호송 출석 대기
추위와 소음과 피로와 무엇보다 스트레스로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아침이 왔다. 또 한 번의 개구멍 배식과 또 한 번의 알량한 자존심 대립 후 철문이 열렸다. 드디어 법정이 문을 열은 모양이었다. 경찰의 설명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었던 것인지 이때까지도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나지만 어쨌든 일단 법정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입건이 확정되던지 불기소 처분을 받던지 판사의 판가름을 받아야 했다.
호송 준비를 위해 쇠사슬이 연결된 매우 두껍고 무거운 가죽 벨트를 내 허리에 감쌌다. 쇠사슬 끝에 달린 두꺼운 수갑으로 양 팔이 배꼽 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내 양손을 채우고, 사활을 건 도망자 스타일의 육상이나 큰 보폭은 하지 못하게 쇠사슬로 연결된 무거운 발목 수갑을 양쪽에 채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긴, 나는 그들에게는 형사법을 위반한 피고인 중 한 명이니 당연지사라 생각하면서도 나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호송 차량은 외관은 스쿨버스를 개조한 듯한 모양새였다. 비스듬히 내려진 경사 받침대를 소폭으로 움직여 올라탔다. 내부는 스쿨버스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창문은 당연히 없고 좌우로 나뉜 호송칸에는 각각 긴 쇠붙이 벤치 하나가 양쪽 외관 벽에 기대어 틈새 하나 없이 부착되어 있었다. 추운 밤을 어디선가 견디고 나에게 보내진 이 차량은 그 차체로 냉골이었고 난방은 사치일 뿐이었다. 나는 오른쪽 칸으로 올라타 혼자 이동하게 되었다. 차량이 출발하자 나는 짐짝처럼 이리저리 미끄러져 내동댕이쳐지기 시작했다. 수갑으로 채워진 데다 원래도 잡을 곳 하나 없이 제작된 범죄인 호송차량에 추위나 안전 따위가 어찌 고려대상이 되겠냐마는 쇠사슬이 허용하는 최대한으로 다리를 벌려 힘을 주며 최대한 덜 미끄러지기 위해 애쓰며 버티자니 참으로 고되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출근 차량들 사이로 주택가와 대로를 달리는 이 차량은 가속과 급정거를 번갈아 해대며 법정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 보다 이들의 이런 피고인 대우가 더 큰 범죄라 여길 때쯤 차는 멈추고 나는 법원 안으로 옮겨졌다.
입찰구처럼 보이는 유리창과 작은 구멍으로 나의 소지품인지 서류인지 전달되었고 무언가 사무적인 처리 후 이곳에서 무언가 설명을 들은 것 같지만 사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대체 무슨 말인지 일단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 이후 법정 안 또 다른 구치소로 이동되었다. 이전 경찰서 구치소와 비슷한 모양새지만 또 달리 이 구치장은 쇠철창으로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게 되어있었고 이층침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변기는 앉았을 때 정면으로는 적어도 동료와 눈은 마주치지 않도록 막이가 세워져 있었다. 이 구치장은 애초에 다인실로 구성된 듯했다. 잠시 후 내 또래로 보이는 멀쩡한 흑인 여자 한 명과 어렴풋이 헝클어진 머리에 날라리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30-40대쯤의 백인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먼저였는지 그 흑인 동료가 먼저였는지 무슨 일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듣자 하니 그도 참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금요일 밤 망나니 여동생이 늘 하던 대로 본인의 어린 딸을 이 여인에게 내팽개치고 본인은 나가서 신나게 불금을 즐긴 모양이었다. 이 언니도 자기 생활이 있고 약속이 있었는데 동생의 일방적인 육아방치에 화가 잔뜩 나 동생이 돌아오자 다툼이 시작되었단다.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이 벌어져 도저히 끝이 안보이자 이 언니가 직접 911에 신고를 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나타난 경찰이 정황 설명을 듣다가 우선 동생을 밀친 것은 언니라며 경찰에 신고를 한 이 언니를 체포해 와서 구치소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 경찰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단다. 새로운 법이 개정되어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누군가는 일단 격리가 되어야 하는데 누가 신고를 했건 누가 더 난폭했던 간에 몸싸움을 발발시킨 상대가 가해자가 된다며 흠껏 두드려 맞은 이 언니를 구속해 왔다. 토요일 새벽부터 법정이 열리는 월요일까지 갇혀있었다며 자기는 주말에 일하는데 연락도 없이 안나타났으니 자기는 이제 일자리도 잃었을 거라며 답답해했다. 나는 억울해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손 하나 까딱 안 하는데 먹을만한 식사를 제때 줘서 편했다는 둥, 이 와중에 자기가 없으면 끼니도 제때 못 챙겨 받는 그 여동생의 아이를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보다 더 복장 터지는 상황 같아 보이는데 밥 잘 먹고 잘 마시고 배변 활동도 잘하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