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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그 이후의 시간

성공스토리보단 오답노트에 가까운

by 요니

브런치에 MBA 입학 관련 글을 올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 후 3개월이 지났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MBA 관련 생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적어보고 싶기도 했고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해 두고 싶었지만 욕심만 앞섰다. 결국 남는 것 하나 없이 졸업을 해버렸다. 아쉽다.

사실 MBA 졸업 후 성공스토리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했어요라던가 마음 맞는 동기를 만나 스타트업을 창업했어요라던가...)를 끄적여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자랑할 만큼 큰 결과물은 없다. (준비도 하지 않았지만) 이직을 한 것도 아니고 직무나 직군이 바뀌지도 않았고 승진을 하긴 했지만 MBA 때문은 아니고.. 커리어적으로 MBA 전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에 MBA 가 인생에 있어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말할만한 스토리는 솔직히 없다. 그래도 그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커리어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는 없을지 몰라도 그래서 느끼는 아쉬움 속에서 새삼 깨닫게 된 내 모습이랄까 가치관의 변화는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바꿔 표현하자면 성공스토리에 대한 공유라기보다는 오답노트라고 해야 할까.



학교생활에 얼마나 만족했냐고 물어본다면 절반 정도 될까? 가장 아쉬운 건 역시나 네트워킹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시작한걸 원인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잘하는 친구는 잘하고 있었고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하필 학교생활 2년간 개인적으로 꽤나 임팩트 있던 상황들이 다채롭게 진행되면서 새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대하나 두려움이 좀 더 컸을 수도 있던 것 같다. (이것도 핑계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딱히 네트워킹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 '친목'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목적'을 갖고 네트워킹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 +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랄까. 이직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뿐더러 영업직군이나 신사업 직군으로 외부 네트워킹이 딱히 필요하지 않은 직무 (관리/기획)에 있기도 했고 요새 한창 일본에서도 붐인 스타트업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맞는지도 잘 몰랐고 그냥 조심스러웠던 것 같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수업시간에 그룹워크 등으로 만난 사람들과 한 학기 동안 잘 지내고 많이 깨닫고 끝난 정도일까. 사실 패밀리 비즈니스 등등 전형이 따로 있어서 그런 친구들과 만나거나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변에서는 딱 그런 친구들만 모아서 프라이빗하게 모임을 주도한 경우도 있긴 하더라..) 그 자리에 참석해서 웃고 얘기하는 건 가능할지라도 더 나아가 내가 주도하는 건 못하겠더라 싶다. 성격의 문제일지 경험의 차이 일진 모르겠지만.



졸업논문 역시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다. 여름방학 전후로 주제를 바꾸기도 했고 워낙 유명하신 선생님인지라 학생들의 논문을 세세히 지도해 주시기보다는 전체적인 틀만 잡아주는 정도? 정말 퀄리티는 '학생이 하기 나름'이었던 것 같다. 지도교수 한분에 학생들 여섯 명이니 세세히 봐주시기도 힘드셨겠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도교수 한분에 학생 한 명인 수업의 경우가 의외로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논문지도가 1주일에 한번 시간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 한 달의 한 번만 진행을 했는데 비인기 강좌의 경우 1주일에 한번 진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선생님과 학생 간 1:1 디스커션이 더 활발하다고 해야 할까 논문 주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주시고 그에 대해 답변을 생각하고 고민해보면서 좀 더 의미 있고 흥미로운 논문 산출물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친구를 보면) 많아 보였던 반면 우리는 그런 시간이 적었던 것에 좀 아쉬웠던 것 같다. 물론 나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해서 교수님께 따로 폭풍질문을 마구마구 던졌더라면 또 달라졌을 것 같지만 이 역시 성격 탓일지 능력 탓일지 그럴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물론 논문 연구생 중에 확실히 뛰어나고 돋보이던 학생이 있긴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계획을 갖고 매 달 발표하는 내용이 의미 있고 구체적이었던 친구였는데 닛케이 신문을 다니는 기자 출신 학생이라 그런가 워낙 그런 데이터를 잘 만지는 친구라 그런가 대단했고, 부러웠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R을 쓰긴 했지만 내가 한 데이터가 제대로 된 것이 맞는지부터 시작해서 결국 R 언어도 (수업시간에 좀 다루긴 했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선 나 스스로 터득하고 배우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다. 방학기간에 따로 봤던 유튜브와 구글링이 실질적으론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론 언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일본에 온 기간 치고는 일본어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일본어로 된 강의를 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외국인은 외국인이었다. 듣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교수님에 따라 이건 천차만별이었는데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선생님들의 경우 발음도 정확하고 단어의 선택도 좀 더 쉽고 알아듣기 편한 단어가 대부분에 말의 속도 역시 적절했고 표현도 명확해 알아듣기 쉬웠던 반면 ( 아 그리고 대부분 일반경영, 전략과 같은 수업들이었기 때문에 더 알아듣기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생소한 주제라던가 말이 매우 빠르다던가 (M&A 수업의 교수님은 말이 진짜 너무 빨랐다. 일본인들도 빠르다고 불평할 정도였으니 ㅜ)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던가 하는 경우엔 집중해서 듣고 있어도 한 60% 정도밖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남들 다 웃을 때 나는 왜 웃는지 모르고 멀뚱멀둥 앉아있는 느낌. 1학년 수업은 대부분 일반 전공 위주라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2학년 수업은 선택 과목에 주제도 다양했었기 때문에 갈수록 언어의 한계를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듣는 것도 문제인데 스피킹에서는 더욱더 자괴감이 들었다.. ㅎ 그래도 발음이나 나름대로 일본 사람처럼 말한다고 들어왔었는데 어쩌면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여실히 부족함이 느껴졌다. 내 욕심이 큰 걸 수도 있겠지만 현지인과 외국인의 차이가 극명했다. 특히 마지막 학기 때 들었던 기업재생이라는 회생절차 관련된 수업에서는 매 시간마다 발표를 했었는데 아무리 쉐도잉을 하고 표현력을 길러보아도 막상 앞에서 얘기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인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질문을 한다던가 짧게 길어야 5분을 넘어가지 않는 경우에는 그나마 잘 얘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5분 이상의 스피치나 발표의 경우 , 제대로 스크립트를 준비해 가도 발음의 문제 표현력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한 번 외국인의 한계를 제대로 느꼈던 듯. 물론 수업을 이해하거나 진도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올 A+ 받을 거다 라는 욕심만 없다면야 성적을 받는데 큰 무리는 없었고 (간간히 A+도 있고 A 도 있었으니) 수업내용도 전체적으로 80% 이상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 물론 아예 포기했던 과목들은 20% 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건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심의 문제) 어쨌든, 외국인은 외국인이었다.



MBA를 통해 느낀 점이 결과적으로 아쉬움 + 자괴감만 들었던 시간처럼 쓰긴 했지만 오답노트라고 표현했듯 좋게 풀어보자면 "나를 좀 더 알게 된 시간"이 된 것은 확실하다. 20대 때도 그랬고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왠지 모를 근자감에 나에 대한 확신만 가득했던 것 같다. 뭘 해도 나는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그래 어찌 보면 막무가내로 도전의식만 매우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더라면, MBA 2년 동안 어쩌면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과 나의 한계점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구분자가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고 나 스스로도 변하거나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변하지 않는 명제는,

세상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은 정말 많고, 나 역시 모든 일에 다 잘할 순 없고 '한계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 그 한계를 넘어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도 했고 노력도 했더라면 이제는 현명하게 포기할건 포기하고 내가 잘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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