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
회사에서 느끼는 우울감의 대부분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가에 대한 회의감에서 온다.
나의 쓸모 있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개 내가 하는 업무나 역할의 중요성일 텐데 그 중요성이라는 것이 참 주관적인지라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바뀐다. 사람인지라, 천성이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의식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중요성을 판단하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한결같지 못하다.
열심히 준비한 보고를 잘 마무리하거나, 부하직원이 말을 잘 듣거나, 내가 한 업무가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될 때 나 스스로 버텨온 시간을 칭찬하며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며 퇴근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루틴 하고 반복되는 업무, 이 보고서가 정말 필요한 보고서인지에 대한 회의감, 잘해준 건 기억하지 않고 서운한 것만 배로 생각하는 부하직원들의 모습, 칭찬은 고사하고 실수만 챙겨보는 상사, 특진에 잘 나가는 동기의 얄미운 모습까지 묵묵히 지켜보며 스스로를 삭히는 시간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름 이 업계에서 6-7년 일하면서 한창 성장할 때부터 1-2년 전부터 시작된 사업 축소와 쇠퇴기까지 산업의 흥망성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어느 산업이나 굴곡은 있겠구나 싶어 당장의 이 축소기를 벗어나기 위한 이직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만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느껴지는 패배주의의 생각이 결론적으로 스스로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너는 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너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항상 도달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그냥 기준을 없애. 너를 좀 내려놔. "
맞는 말이었다. 나는 나에 대한 이상이 높았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나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컸다. 아니 욕심만 많았다. 성장에 대한 과도한 욕구와 집착이 결국 욕심만 키워놓았다. 하지만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찾아오는 감정은 결국 나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걸까. 왜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게 매일 나를 채찍질해 왔다.
이제부터 조금씩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욕심을 버리는 연습.
식탐을 줄이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절약하고 절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성장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줄이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제시간에 회사에 출근해서 해야 할 업무들을 제대로 잘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충분히 쓸모 있는 존재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지는 것, 내가 관심 있는 것, 내 마음이 원하는 것. 그걸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