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갈라파고스
2017년 2월. 아메온나 (雨女) 에 걸맞게 이 날도 여행 내내 비가 왔었다. 처음으로 일본인 친구와 떠나는 섬 여행이었고 특히 '별'이 장관이라는 소문을 듣고 떠난 여행이었으나 별은 커녕 새파란 하늘 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이 특별히 의미있던 것은 처음으로 일본 현지인 친구와 여행을 함께 준비했다는 점, 친구 덕분에 뚜벅이 여행이 아닌 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점 (섬 여행은 차가 없으면 불가능이다) 에서 참 많이 기억에 남는다. 축축했지만 그 어느 여행 때보다도 따뜻했고 든든했던 그날의 기억.
0. 동양의 갈라파고스, 아마미오시마를 계획하다.
아마미오시마는 나에게 굉장히 낯선 지명이었다. 오키나와와 가고시마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컸던 것 같다. 회사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와 함께 약 3개월 전부터 이번 여행 플랜을 준비하였는데, 거의 대부분 혼자 또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여행계획을 준비하다 처음으로 일본 현지인 친구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경험 자체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거웠고 신선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떠올랐던 아마미오시마의 이미지는 ‘무인도’와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키나와와 비슷한 자연환경일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인지도는 높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 일 것으로 생각했다. 좀 더 자연과 가까이, 자연을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으며, 더욱이 여름 성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여유있게 관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날씨만 좋기를 희망하며..
1. 아메온나 (雨女) : 비를 부르는 그녀들
보통 아마미오시마의 연중 평년기온은 15도 이상이라고 하였고, 바다도 연중 내내 입수가 가능할 만큼 따뜻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수영은 하지 못할지라도, 맑고 따뜻한 날씨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머무는 3일이 가장 추웠던 날이라고 할만큼 춥고, 우중충했고, 비가 오락가락 했다. 정말 10분 간격으로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는데 그래서인지 맑은 하늘을 보면 기분이 평소보다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아마미오시마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아마미오시마 여행계획을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밤하늘에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의 사진을 본 것이었는데 3일 내내 흐린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날은 정월대보름이기도 해서 환했던 탓에 별이 더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비와 바람 햇빛과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그렇게 자주 변덕부리는 날씨 탓에, 좋게 생각한다면 아마미오시마의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의 모습, 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날씨가 개어 햇빛이 화창할 때 보이는 바다의 모습, 색깔이 가장 예쁘고 아름다웠지만,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이에 내리비치는 햇살의 모습이나, 구름 사이로 보이는 일몰/일출의 순간, 바람과 함께 높게 일렁이는 파도들의 모습들 역시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런 풍경들도 나름의 멋을 갖고 있다고 해야할까.
2.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과 함께 드라이브를
아마미오시마는 사실 관광지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섬이기 때문에 관광지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해변공원이다. 해변공원마다 그 나름대로의 특징이나 특색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이 ‘호노호시 해안’ 이었다. 수많은 해안 중에서도 이 곳이 특별하고 남다른 이유는 바닷가 전체를 모래가 아닌 돌이 뒤덮고 있기 때문인데,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물과 돌이 자박자박 부딪히는 소리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고 신선했다. 대학 시절 크로아티아 여행을 갔을 때 자다르 도시시에서 들었던 바다오르골이 불현듯 떠올랐다. 날씨가 화창했더라면 더 머물고 싶을만큼 아름다웠으나 아쉽게도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빨리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바닷가 100선에 선정된 오하마 해변공원도 멋있었다. 석양이 절경이라고 하여 일몰시간에 맞춰 방문하였으나 아쉽게도, 역시나 바람과 구름 때문에 제대로 된 석양은 감상할 수 없었다. 다만 간헐적으로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그 순간 순간마다 언니와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점프샷도 찍었으나, 우린 점프에 소질이 없나보다. 제대로 찍히지 못했다. 바람이 굉장히 거셌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절경을 감상했다. 바닷바람이 괜히 거센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3. 고난의 순간들, 우정으로 극복 : 유이다케 전망대, 아마미포레스트폴리스 (마테리아 폭포)
여행을 하면서 언니와 나의 우정이 십분 발휘된 경험도 있었다. 먼저 유이다케 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그 경험 중 하나였는데, 유이다케 전망대는 아마미오시마에서 남서쪽 끝에 있는 전망대로 아마미 10경 중 하나로 이 곳도 역시 일몰이 아름답다고 하여 언니와 함께 오후 무렵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내가 운전면허가 없어 언니가 계속 운전을 해주었는데, 언니 역시 5년만에 운전을 하는거라 긴장도 많이 하고 많이 무서워하였다. 물론 생각보다 편안하고 안정되게 운전을 해주어서 고마웠는데, 유이다케까지 가는 길이 꽤나 험난했다. 산 꼭대기를 올라가는데 비포장도로에 도로도 굉장히 좁았고 그 옆은 낭떠러지라 위험했다. 게다가 비도 왔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일부 도로가 공사 중이라 굉장히 협소하고 좁은 길을 말 그대로 ‘통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언니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면서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같이 기도했는데 무사히 그 길을 탈출(?) 했을 때 언니도 나도 매우 신나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는데 지금 봐도 그 때의 짜릿한 기억이 떠올라 웃게 되는 것 같다. 유이다케 역시 생각했던 것만큼 붉은 해질녘 노을은 구름 때문에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많은 구름이 일궈내는 장관도 그 나름대로 멋있어 넋을 놓고 바라봤던 것 같다. 두번째 언니와 함께 간 곳은 아마미포레스트폴리스라는 산 이었다. 이 곳에 마테리아 폭포가 있다고 하여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등산을 하게 되었다. 꽤나 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한 30분쯤 등산을 하다보니 어느새 폭포에 도달하였다. 일본에서 많은 폭포를 보았지만 지금까지 봤던 모든 폭포 중 가장 작고 소박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폭포라고 자신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일까 에메랄드 빛의 폭포를 보고 있으니 괜히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폭포를 보고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되돌아가기엔 또 다시 등산을 해야하니 싫고, 개울을 건너 건너편 지름길로 가자고 결정, 개울을 건너는 것이 생각보다 문제였다. 꽤 무서웠는데 결국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로 서로 도와가며 힘을 합쳐, 개울을 건넜다. 예상치 못한 등산과 다이나믹한 경험에 둘이 꽤 많은 시간 웃었던 것 같다. 폭포보다도 그 경험 자체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4. 카누를 타고 맹그로브 원시림을 돌아보다.
아마미오시마를 가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맹그로브 원시림이었다. 오키나와에도 맹그로브가 있다고 하는데, 남부 열대지역에 이런 맹그로브 서식지가 있는 것 같다. 겨울이라 카누를 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연중 카누는 탈 수 있는 것 같았다. 카누체험은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카누를 타고 맹그로브 주변을 돌아보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는데 약 8명정도 함께 다녔다. 1인 카누를 타고 갔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저어야 했는데, 워낙 운동신경이 둔한지라, 자꾸 뒤쳐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결국 가이드 분의 도움으로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카누운전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언니도 그렇고 다른 일본인 일행분들도 여자분임에도 불구하고 잘 타는 것 같았다. 자꾸 뒤쳐지고 신경쓰이게 하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했다. 카누 체험 중반 즈음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더욱 힘들어졌다. 게다가 오후 4시즈음이라 만조로 물이 불어나 노를 젓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간조 때 였다면 걸어서 이동도 가능하며, 물이 얕기 때문에 물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 관찰도 가능하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갈 줄 알았는데 초입을 잠깐 들어갔다 되돌아오는 느낌이라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만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