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나다
2019년 6월 6일.
공휴일이었기에 두 아이와 박물관 견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이잉...
핸드폰 진동소리에 얼른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올케언니였다.
" 엄마가 오늘 돌아가실 것 같아. 의사 선생님이 가족들 모두 와서 마지막 인사 준비를 하라고 하시네. "
요양병원에서 꽤 오랜 기간을 계셨던 친정엄마의 소식이었다.
평범한 여느 집 딸들은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슬픔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아니 그게 무슨 말 이냐고 소리쳤을까.
아니면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련한 눈빛으로 전화를 끊었을까.
전화를 덤덤하게 끊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 하... 입장한 지 얼마 안 됐는데...'였다.
그래, 난 나쁜 딸이다.
엄마는 억척스러웠고, 늘 예민했으며 특히 딸인 나에게 더더욱 그러했다.
그 흔한 칭찬과 애정표현들... 엄마에게 받아 본 기억을 아무리 찾아내 보려 해도 없다.
그래서 난 엄마를 싫어했다.
내가 무슨 실수만 하면 쥐 잡듯이 잡으며 욕을 퍼붓거나 매를 들어서 싫었고,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이 아니어서 싫었다. 어디 가서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며 물어뜯는 엄마의 모습도 싫었고, 그저 오빠와 늦둥이인 막내에게만 너그러운 엄마가 싫었다.
특히 더 싫었던 건 다른 친구들 가정과 같은 평범한 가정이 아닌 재혼가정이 내가 처한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엄마가 싫어졌고, 그 감정은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저 '싫다'를 넘어선 증오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엄마가 쏟아내는 폭언과 폭력을 당하기만 하던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야 드디어 반항을 시작했다. 엄마가 나에게 독한 말을 던지면 난 더 독한 말을 던졌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난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엄마가 날 때리면 나도 엄마를 힘으로 밀쳐냈다.
급기야는 엄마에게 난 절대 당신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목 놓아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도 좀처럼 엄마에 대한 감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내가 자식을 낳아보니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소중하건만, 어찌 엄마는 나에게 그리도 모질었을까 하는 생각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순식간에 치매까지 함께 진행이 되었고 거동을 못하게 되셨다. 가족이 돌보기에는 엄마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크게 걱정도 되지 않았다. 오빠와 올케언니, 그리고 동생은 거의 매일 요양병원에 방문했다. 난 그때 당시 둘째를 임신하여 만삭의 몸이었기에 거의 가지 않았다.
난 여전히 엄마가 싫었기에 보러 가기 싫었고 마침 만삭의 몸이었기에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2019년 6월 6일, 그날 올케언니의 전화를 받아도 별생각이 없었다.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여느 때와 같은 마음으로 평온하게 운전하여 엄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엄마는 돌아가셨다.
3일장을 치렀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울어야 할 것 같았다. 비통하고 슬픈 표정으로 3일을 지냈다.
엄마를 화장하여 수목장 하는 순간에도 내 감정을 알지 못하겠더라.
옆에서 오빠와 동생은 그리도 서럽게 우는데 난 슬프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모든 장례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너무나 목이 탔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에 담가주신 고추장 통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먹어서 바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그 고추장통 뚜껑에 쓰인, 엄마가 꾹꾹 눌러쓰셨을 "고추장"이라는 글씨가 눈에 보이는 순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날 덮쳐왔다.
냉장고 안에는 고추장 외에도 들기름, 김치 등 엄마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엄마 나름대로의 사과였나 보다.
엄마는 스스로도 알고 계셨다.
절대 나에게 당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살갑게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씀 한 마디 없이 돌아가신 게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그날, 냉장고를 보고 알 수 있었던 건 엄마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나에게 미안함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식의 사과는 내 마음에 닿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난 엄마를 싫어한다.
다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절대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