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이 만든 그늘

나도 원해서 태어난건 아닌데...

by 예쁜호박

엄마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까지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그중에는 특히 친아빠에 대한 욕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솔직히 그분을 '친아빠'라고 지칭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기억도 전혀 없을뿐더러 초등학생 때 한번, 중학생 때 한번, 고등학생 때 한번 총 세 번 얼굴 본 게 전부다.

그래서 '친아빠' 보다는 그냥 엄마의 첫 번째 남편이라고 지칭하려 한다.





엄마의 첫 번째 남편은 술, 도박, 여자 이 세 가지를 탐닉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도박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엄마를 찾아와 돈 내놓으라며 그렇게 때리셨다고 한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엄마를 이불로 덮어놓고 발로 밟기도 했고, 뜨겁게 달군 연탄집게로 다리를 지져버리기도 했다 한다. 그러다 자기 화에 못 이기면 엄마를 죽이겠다며 칼을 꺼내 달려들기도 했었단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엄마의 친한 동네 동생과 눈이 맞아 둘이 아예 살림을 차렸다 하니 내 기억에는 거의 없지만 오빠는 그 모든 폭력의 현장에서 엄마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백 번, 천 번 갈라서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단념시킨 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셨다고 한다.

남자들은 아이가 생기면 철든다며 임신을 하라고 하셨단다.

사위가 딸을 때리고, 도박을 하고, 바람을 보란 듯이 피고 다니는데도 임신하라고 권하셨다니 참 답답할 노릇이다.

그 당시에는 이혼녀에 대한 시선이 매우 곱지 않았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이해해볼까 싶다가도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당신 부모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오빠를 나를 7년 터울로 출산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 건 없었다.

급기야 일방적으로 구타당하고 있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11살이었던 오빠가 칼을 들고 아빠에게 달려드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어쨌든 엄마는 이혼을 했다.

이혼을 했어도 결혼기간 동안 당했던 그 일들에 대한 기억은 아마 뼈에 사무쳐 잊지 못하셨을 거다.

엄마는 그 뼈에 사무친 아픔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고, 거침없이 화살을 쏘아대며 날 미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엄마는 날 미워했던 것이 맞다. 확신한다.


지 아비랑 똑같이 생긴 년

내가 너만 안 낳았어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다.

엄마는 날 임신하는 순간부터 날 원망하고 미워했다.

날 임신하지 않았으면 조금 더 빨리 그 지옥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그때 왜 날 유산시키지 않았는지 후회된다고 나에게 말했다.

커갈수록 내 외모가 아비를 닮아간다며 내 외모를 소재삼아 나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난 7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이상하리만치 그 이전의 기억이 삭제된 듯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시절은 7살부터 시작인데, 엄마는 7살인 나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하며 엄마 또한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약자인 나에게 모든 화를 풀어냈다. 오빠도 내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빠 또한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었기 때문에 도피처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오빠가 선택한 도피처는 '친구'였다. 중학교 시절의 오빠는 툭하면 가출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빠 집에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당연히 집에 엄마와 함께 있는 건 나였고, 엄마는 아빠가 당신에게 했던 짓을 나에게 했다.

난 9살이 되는 해까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그래서 입을 닫아버렸다. 말은 하고 싶은데 목에 걸려 나오질 않는 느낌이 싫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엄마는 그것도 첫 번째 남편 탓을 했지만, 아니다.


엄마가 날 죽이겠다며 소주병을 깨 나에게 달려들던 그날부터 난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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