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어느 저녁의 트라우마

엄마는 날 죽이려 했다

by 예쁜호박

엄마가 나를 죽이겠다며 깨진 소주병을 들었던 이유는 남동생 때문이었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 엄마는 재혼을 했다.

그 재혼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엄마의 재혼 상대는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총각인 데다가 나이까지 엄마보다 어렸다.

전남편과 사별도 아니었고, 거기에 더불어 전남편의 자녀 두 명까지 딸려있던 엄마는 예비 시댁에서 반기는

며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둘은 재혼에 성공했다.

엄마의 결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그 시절의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곱게 화장한 엄마를 보며 너무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아마 내가 6살에서 7살 넘어가던 겨울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날 예쁜 한복을 입고 머리도 곱게 단장해 엄마, 새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세월이 흐른 후 나에게 새아빠가 날 무척이나 아꼈다고 이야기했었지만 난 그 분과 좋았던 기억이 전혀 없다.

단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분은 내가 학교 숙제를 하고 있으면 와서 검사를 하셨고, 틀린 문제가 있으면 꿀밤을 때렸었는데 그 꿀밤이 너무 아팠다.

그 꿀밤이 너무 아파서 싫었던 기억밖에 없는데 엄마는 내게 그분이 나를 아꼈다고만 했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는 집에서 남동생을 출산했고, 그날 난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우리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소리쳤었다.




하지만 동생이 태어난 후에 내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새아빠와 엄마는 동생을 돌보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미미인형, 곰돌이 인형 하나 없이 자랐던 나와는 다르게 온 집안이 그 녀석 장난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새아빠는 로봇을 좋아하는 남동생을 위해 매일 저녁 남동생 몰래 조립 로봇을 사 와서는 밤새 조립해서 아침에 짠하고 동생을 놀라게 하곤 했다.

엄마 또한 온 신경을 남동생에게 쏟았다.

오빠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거나, 해가 떨어져서야 들어오는 날이 많았기에 그 당시 집 안에서 나와 놀아줄 사람이 없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부모님들 중 엄마는 없었다. 물론 새아빠도.

내려오는 비를 다 맞으며 집까지 걸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새아빠와 남동생은 성(姓)이 같은데 왜 난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학교 선생님도 나에게 왜 아빠와 성이 다르냐고 묻지 않았던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고 보니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한 가족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걷잡을 수 없는 소외감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난 남동생이 싫었다.

학교 끝나고 오면 남동생이 누워있는 요람을 흔들라고 시키는 엄마도 싫었다.

나한테는 요람을 흔들라고 시켜놓고 엄마는 잠을 자거나 동네 마실을 나가셨었다.

그 사건이 있던 날도 엄마는 나에게 요람을 흔들라고 시키고는 자리를 비웠다.

8살 아이한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요람을 흔드는 것은 진짜 참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동생을 싫어하는 누나에게 그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겠는가.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동생이 너무 싫어서 화풀이하듯 요람을 아주 세게 흔들었더니 동생이 그만 요람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동생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듣고는 마당에서 동네 아줌마와 담소를 나누고 있던 엄마가 뛰어왔고 내가 상황을 설명할 틈도 없이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엄마가 내 뺨을 힘껏 때렸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집안은 난리가 났다.

엄마는 내가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8살의 나는 너무 어렸다.

분노에 차올라 눈이 뒤집힌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동생을 죽이려고 한 적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무서워서...

엄마는 새아빠 있는 앞에서 날 인민재판하듯 세워두고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며, 무릎 꿇고 빌라고 했다.

엄마가 너무 무서웠지만 무릎을 꿇기는 싫었다. 난 절대 동생을 죽이려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엄마에게 동생을 죽이려 한 게 아니라고 말할 용기마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대답 없이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아 뜯고 눕혀서 발로 밟아댔다.

새아빠가 달려들어 말리자 잠시 나에게서 떨어졌다가 화에 못 이기겠는지 물부엌을 청소할 때 쓰던 대걸레를 들고 와서는 긴 손잡이 나무막대 부분으로 내 머리, 등, 팔, 다리 등 가리지 않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그때 패닉 상태였던 것 같다. 그저 멍한 상태였던 것 같다.

울지도 않고 빌지도 않는 나를 보며 엄마는 지 아비 닮아 독한 년이라 외치며 옆에 있던 소주병을 깨서는 날 죽여버리겠다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새아빠가 이성 잃은 엄마를 필사적으로 말리며 나와 떼어 놓았다.

그런 새아빠에게 엄마는,


저 년이 아기를 죽이려 했다니까!!! 목 조르는 걸 내가 봤다고!!!


라고 외쳤다.




거짓말...

엄마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거짓말을 숨 쉬듯 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엄마가 8살 딸에게 그 정도까지 분노할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상황은 비상식적이었다.

엄마 스스로도 본인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저지른 행동이 비상식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천하의 나쁜 아이가 되어야 했었을 거다.

엄마는 내가 커서도 종종 본인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식인 날 깎아내리는 거짓말을 했었다.

그래서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엄마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의사가 엄마의 언어를 관장하는 뇌혈관 쪽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 엄마가 입으로 내뱉었던 죄들에 대한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난 그날 이후로 얼마 뒤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고, 말이 목에 걸려 안 나오는 느낌이 싫어서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될 때 까지도 지인들을 만나면 첫 번째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충격을 받아 입을 닫았던 가엾은 8살 딸아이를 데리고 언어치료를 다녀 결국 입이 트이게 되었다며, 여전히 본인을 좋은 엄마로 포장하느라 거짓말을 해댔다. 거기에 더불어 새아빠도 좋은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언어치료 센터를 새아빠가 여기저기 알아보려 다녔다는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8살 때 겪었던 그 일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올 만큼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나 역시 현재 13살, 6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지만, 내 엄마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 그날, 정말 엄마가 날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 뉴스를 보다가 부모에 의해 죽은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어떻게 세상에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난 그런 뉴스를 보면 8살 그날의 밤이 떠오르곤 한다. 나 또한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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