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새겨진 세 글자 동.거.인

난 엄마의 자녀가 아닌 동거인

by 예쁜호박

엄마의 거짓말과 달리 난 전문가에게 언어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말을 더듬고, 나중에는 심지어 말을 아예 하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던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말을 하려면 말이 목에 걸려 안 나왔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막히지 않고 목소리가 술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입을 닫았던 이유는 말 더듬 증상으로 인해 말이 목에 걸리는 느낌이 싫었던 것인데 노래할 때만큼은 그 느낌이 없어서 정말 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 덕분이었을까.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말이 노래 나오듯 목에 걸리지 않고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내가 말이 트이니 신이 나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 댔었다.

말이 많아진 나에게 엄마는 말 못 하는 애가 말이 트이니 너무 시끄러워졌다며 핀잔을 줬었다.

말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친한 친구들도 생겨났었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학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갔더니 가끔 집에 들르곤 하셨던 삼촌이 와 계셨다. 정말 삼촌이 아닌 그저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이 '삼촌'이었다.

막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오시면 용돈을 쥐어주셨기 때문에 그리 싫지는 않은 분이었다.

한 장의 사진처럼 그날의 장면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내가 미처 마음의 준비도 채 되지 않은 순간에 그분이 내 친아빠라고 짜증 내며 소리쳤다.

정말 그 순간의 앞뒤 기억이 없다.

무슨 대화를 하다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 엄마가 나에게 짜증을 내며 저 인간이 니 아비라고 소리를 쳤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그 흐린 기억 속에서도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던 엄마의 눈빛과 증오로 가득 찼던 목소리만큼은 생생하다.

당시 8살이던 나는 어째서 그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 시절의 난 지독한 가정폭력의 상황 속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삭제'를 선택했었나 보다. 오빠가 '친구'를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내가 '아빠'라고 부르는 남자가 사실은 내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정말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내 마음속 소외감은 더 커져만 갔다.

새아빠가 밤새 남동생의 로봇을 조립해서 아침에 깜짝 이벤트를 하는 모습도, 엄마가 남동생을 껴안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쩜 이리 예쁘냐 난리를 치는 모습도 날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 엄마의 화장대 위에 있던 서류를 한 장 보게 되었다.

그 서류에는 새아빠의 이름을 시작으로 해서 가족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쓰여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동생의 이름 옆에는 '자'라고 쓰여 있는 것과 달리 오빠와 내 이름의 옆에는 '동거인'이라고 쓰여있었다.

동거인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 수 없는 나이였지만 묘하게 기분 나빴다.

엄마에게 물었었다. '동거인'과 '자'의 뜻에 대해 말이다. 엄마는 대답해주지 않고 말을 돌려대거나 나에게 짜증을 냈다. 학교 선생님께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동거인'은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가족이라서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어떠한 사정 때문에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고.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며 질문을 했으니 선생님은 나에게 친절하게 그 뜻을 알려주셨고, 그날부터 난 내가 엄마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오빠는 엄마가 새로이 만든 가정에 얹혀사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래서 오빠와 새아빠가 그리 심하게 다퉜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엄마는 오빠가 며칠 씩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새아빠를 앞세워 오빠를 찾으러 다녔다.

친구 집에 있는 오빠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날이 바로 우리 집이 시끄러워지는 날이다.

엄마는 오빠를 집으로 억지로 데리고 와 심한 체벌 아니, 그건 폭력이라고 해야겠다. 엄청난 폭력을 퍼부었다. 그것도 새아빠를 앞세워서 말이다.

하루는 자는데 거실이 너무 소란스러워 눈이 자연스레 떠졌다. 새아빠와 엄마의 목소리로 거실은 너무나 시끄웠다. 문을 빼꼼 열고 밖을 본 나는 오빠가 너무 불쌍했다.

새아빠와 엄마가 어디서 갖고 왔는지 나무 각목을 오빠의 종아리와 뒷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는 꿇어앉게 시켰다. 오빠는 그 고통스러움을 참으며 이 악물고 땀 뻘뻘 흘리며 앉아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오빠 앞에 서서 새아빠와 엄마는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다시 가출할 거냐, 학교 잘 나갈 거라고 약속해라 뭐 그런 내용들이었다. 여느 부모가 자식한테 할 수 있는 말로 들리지만 그날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빠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 새아빠가 오빠를 엎드리게 한 후 각목으로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몇 대를 맞고만 있던 오빠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레 달려든 오빠에게 놀란 새아빠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오빠를 잡아 거실과 부엌을 구분하는 유리문을 향해 던져버렸다. 유리가 깨지며 오빠가 그 유리 위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후, 오빠는 전보다 더 심하게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툭하면 나에게 자기 아비 닮아서 천성이 더럽고 못 돼먹었다며 폭언을 하는가 하면 급기야 나를 죽이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난 내가 가장 불행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날 늦은 밤 내 눈으로 본 오빠도 나 못지않게 너무 가여웠다.

성인이 되면서는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적어도 오빠가 여느 오빠들처럼 집에서 든든하게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대도 내가 이렇게 힘들었을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오빠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곤 했다.


나는 여자아이고 8살이었다. 작고 약했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쉽게 학대했다.

하지만 오빠는 당시 15살이었고 한창 자라고 있던 덩치 큰 청소년기 남학생이었다. 엄마는 새아빠를 동원해 오빠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신도 첫 번째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을 견디지 못해 도망쳐 나왔으면서, 우리 남매에게는 자신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폭력을 놀이처럼 휘둘러댔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막냇동생만은 끔찍이도 아꼈다.

그 집에서 오빠와 나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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