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라서 죄송합니다

저도 원해서 김씨가 된건 아니지만요

by 예쁜호박

내가 그 집에서 불청객이었다는 건 8살 어린아이의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동생이 커가면서 엄마는 조금 더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차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생 때는 하교하고 집에 오면 대문 앞에 배달 음식 그릇들이나 피자박스들이 있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안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다.


야, 그거 동생 먹은 거야. 너 먹을 거 안 남았어. 아침에 끓여둔 찌개 있으니까 배고프면 그거 데워서 밥에 말아먹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남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하던 중요한 시기였는데 엄마는 남동생의 입학에만 온 신경을 쏟으셨다.

왜 남동생만 예뻐하냐고 내가 따질 때면 엄마가 늘 하는 변명이 있다.


쟤는 하늘 아래 쟤 혼자 뿐이잖아!




남동생이 4살 되던 해에 새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랑 오빠는 김 씨인 데다 연락은 안 되지만 '친아빠'라는 존재가 살아있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남동생은 혼자 이 씨, 게다가 새아빠 마저 돌아가셨으니 세상천지 본인 말고는 남동생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이미 마음속으로 남동생과 나를 이 씨, 김 씨로 편 나누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소한 잘못이라도 하면 엄마는 어김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쌍놈의 종자 같으니. 넌 김 씨라서 그래. 종자가 더러우니 그 따위지.


엄마가 나에게 던진 말이 맞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난 김 씨라서 종자 자체가 더럽다는 말이다.

김 씨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종자가 더럽다는 둥 온갖 쌍욕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다.

내가 김 씨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어린 나이에 그런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너무 무섭고 크게 보이던 엄마 앞에서 감히 반항을 꿈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 깊이 눌러만 두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서서히 터져 나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어렸지만 영리했다.

엄마가 자기를 아끼는 것과는 달리 누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동생은 그런 상황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했다.

엄마는 툭하면 남동생은 불쌍한 아이라며 나에게 그 아이를 잘 돌보라고 했지만 우리의 우애가 영원히 금 간 것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공헌이 가장 크다.

동생은 나에게 너무나 버릇없이 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하지만 누나에게 어떻게 행동해도 자기는 절대 혼나지 않는다는 걸 안 이후로 부터는 너무나 악랄하게 나를 괴롭혔다.

'누나'라는 호칭 없이 말을 툭툭 비꼬듯 내뱉는가 하면 구타까지 일삼았다.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으로 내 배를 때리거나 얼굴을 쳤다.

한 번은 동생이 날린 주먹에 얼굴을 맞으며 치아에 부딪힌 입 안 쪽이 찢어졌었다. 많은 피가 입 안에서 흘러나왔고 내 분노도 끌어올렸다.

엄마는 그 광경을 보고도 남동생한테 아무 꾸지람도 하지 않았다.

입 안에서 피가 철철 나와 피로 빨갛게 물든 그 휴지 더미를 보면서도,


누나가 누나답게 행동했으면 이런 일이 있냐?


라며 나를 나무랐다.

그러니 동생은 더욱더 마음 놓고 나를 교묘하게 괴롭히고 피 말리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전혀 반격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 또한 절대 그런 일들을 당하고만 있을 성격은 아니다.

난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딸이니까 말이다.

엄마가 외출을 하고 집에 동생과 둘만 남을 때는 신나게 동생을 때렸다.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동생이 고자질을 해대면 나도 엄마에게 빗자루, 파리채, 각목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게 맞았지만 그래도 난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동생을 때렸다.

동생을 때리면 때릴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랐고, 동생의 얼굴과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래서 심하게 때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엄마와 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에게서 자신의 첫 번째 남편을 떠올리며 나를 구타하던 엄마.

동생에게서 엄마를 떠올리며 동생을 구타하던 나.

내가 엄마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감이 밀려왔다.

세상에서 제일 닮기 싫은, 내가 절대 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엄청난 자괴감을 가져다주었다.

마침 그때 내가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교류도 가장 활발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 집에 놀러 갈 일도 많았는데, 그들의 가정과 내 가정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나랑 친구가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서면 어서 오라고, 공부하느라 힘들지 않았냐며, 얼른 앉으라며 간식을 내어주는 따뜻한 엄마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그래서 난 더욱더 숨었다. 겉으로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절대 그 누구도 내 집에 초대하지 않고 집안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음 놓고 꺼내놓지 못하는 우울감과 그 부정적인 느낌들은 빠른 속도로 나를 병들게 했다.

나를 병들게 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방법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내가 김 씨가 되면 안 되는 거였기 때문이다.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난, 14살이었던 그 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날 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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