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나에게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by 예쁜호박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즈음, 남동생이 탈장수술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수술 후 입원기간이 짧지는 않았다. 난 학교가 끝나고 바로 병원으로 가야 했다. 주말에도 남동생 옆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무조건 남동생의 병실을 지키게 했다.

엄마가 본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반면 누나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은 영리한 동생은 매우 버릇이 없었고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주말이었다. 남동생이 입원해있는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도 날 누나 취급 안 하던 놈이었는데 몸까지 아프니 짜증내고 화 낼 곳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든 짜증과 화를 나에게 쏟아냈다. 오죽하면 옆 침대에 입원해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동생이 누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며 한소리 하셨을 정도다.

동생의 발 아래쪽에 앉아있던 나는 남동생의 발을 내 발로 툭 치며 적당히 하라고 겁을 줬다. 동생은 방금 전 옆 침대 아주머니에게 한 소리 들어서 내가 발로 자기를 때렸다는 누명을 씌우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있었을까? 갑자기 동생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입술까지 부르르 떨면서.

난 동생을 때리지 않았다. 발로 차지도 않았다. 그저 내 발로 동생의 발을 툭 치며 적당히 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누나가 때려서 배가 아프다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난 그때 당황했지만 울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언제 널 때렸느냐고 말이다.

그때, 그 녀석이 울면서 나에게 외쳤다.

“ 누나가 내 배 발로 찼잖아! ”

거짓말. 엄마가 본인의 병적인 히스테릭함의 원인을 나로 돌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해대던 거짓말을 이 놈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동생의 울음소리에 간호사가 와서 체크했고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날 엄마에게 육두문자가 섞인 욕을 들어야 했다. 누나가 아픈 동생을 똑바로 돌보지는 못할망정 발로 수술부위를 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졸지에 난 탈장수술을 한 남동생의 배를 사정없이 발로 걷어찬 나쁜 누나가 되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때리지 않았다고, 발로 차지 않았다고, 난 그저 발로 동생의 발을 가볍게 툭 쳤을 뿐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수술해서 입원한, 많이 예민해서 짜증 낼 수도 있고 화 낼 수도 있는 8살의 어린 동생을 이해하지 못해 발길질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년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남동생은 퇴원했다. 동생에게 왜 거짓말했냐고 물으면 짜증내고 소리를 지르며 왜 자기를 괴롭히느냐고 덤벼들었다. 자기한테 지난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고 하악질을 해댔다.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에게도 매를 얻어맞았다.

엄마의 애정은 전적으로 남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 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그랬다. 남동생만 엄마의 자식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중간에 내렸다. 그날의 가을 햇살이 참 따스했고,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완벽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다. 지각, 무단결석은 해보지 않았기에 선생님께는 대충 병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다라고만 이야기해도 따로 엄마에게 연락은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기가 싫었다. 내가 지금 왜 집에 가기 싫은 걸까 생각해보니 남동생과 엄마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억울함의 마음이 매우 컸다.

그 감정의 시작은 동생이 입원한 동안 있었던 일 때문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서러움, 분노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르렀다. 그날 나는 막연하게 약국들을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달라고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수면제를 팔 약사는 없었다. 약사님들은 부모님과 함께 오라며 날 돌려보냈다.


‘ 높은 곳에서 떨어지자.’

학교 동네에 있던 아파트에 들어갔다.

복도식 아파트였고,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계단에 걸터앉아 책가방에서 연습장과 볼펜을 꺼내 유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왜 죽는지 자세하게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써 내려간 유서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남동생을 향한 증오에 가까운 감정들로 가득 찼다. 담담하게 죽자고 생각하고 그곳에 올라갔지만 유서를 쓰면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큰 소리로 울면 누가 나와서 볼까 봐 조용히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가 죽고 나면 경찰이 내 유서를 발견해 엄마와 남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을 모두 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마침내 유서 쓰기를 마치고 아파트 복도에 섰다. 난간에 손을 대고 서서 밑을 바라보았는데 너무나 높았다.

14살의 나는 순간 겁이 났다.


떨어지면 많이 아프겠지.

한 번에 못 죽고 어설프게 살아나서 병원에 실려가면 어쩌지.

병원에서 깨어나면 또 엄마가 나에게 쌍욕을 퍼부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급기야는,

‘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 하고,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 상황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못을 한 인간들은 저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나는 이곳에 서서 죽으려고 하는지 말이다.

이러한 생각들 끝에 닿은 결론은 ‘복수’였다. 엄마는 남동생의 기가 사는 것만 좋아하고 내 기가 동생보다 사는 건 싫어하니까 일부러 내가 더 잘 살아서 엄마를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거짓말을 하든, 날 모함하든, 엄마가 날 때리든 말든 공부만 열심히 해서 엄마와 남동생이 감히 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성공하자고 다짐했다. 훗날 엄마가 나이 들어 병들어 쇠약해졌을 때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다짐했다.

결국 14살의 나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내려왔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떨어지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엄마로부터 날아오는 폭력들을 이 악물고 버텼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좀 더 크면 두고 보자 라는 칼날 같은 결심을 품고 말이다. 동생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냉소해졌다. 그날 이후로 그놈은 내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때려도 울거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몇 시간이고 날아오는 매를 다 맞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나에게 소가죽처럼 질긴 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독한 년이라고 욕하며 본인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다.

날 이렇게 만든 것이 본인이라는 걸 정녕 몰라서 그런 말들을 했을까?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갈 수만 있다면, 난간 위에 서 있던 14살의 나에게로 가고 싶다.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다.

그럼 난 좀 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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