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을 위한 도구

환영받지 못한 나의 작은 특기

by 예쁜호박

죽음 대신 복수를 선택한 그날 이후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엄마가 폭력을 휘두르고 맹독과도 같은 폭언을 던져대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날 감정 쓰레기통 대하듯 모든 짜증과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어대던 엄마가 유일하게 부드러워질 때가 있었으니, 바로 남동생의 숙제를 나에게 대신하라고 지시할 때였다.

엄마는 내가 뭔가를 뛰어나게 잘하는 상황을 반기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독서를 즐겨한 덕분인지 중고등학교 다니며 교내, 교외에서 열리는 백일장 대회를 나가 많은 상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엄마의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다.


뭐야. 우수상 이잖아.

장려상밖에 못 받았네.


최우수상,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난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교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도 엄마는 말했다.


뭐야. 이건 교내 대회잖아. 교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이야 뭐...


단 한 번도 나를 칭찬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받아온 상장들을 모두 액자에 끼워 거실벽에 전시하듯이 걸어두었었다.

그건 나를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다.

집에 손님들이 오시면 엄마는 그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차를 대접하며 상장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 상장들은 엄마의 트로피였던 것이다.

이혼하고 재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식 안 버리고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 라는 것을 과시하며 으스대는 용도로 내 상장을 이용하셨다. 정작 내 앞에서는 잘했다고, 내 딸 너무 잘했다고 이야기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말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를 너무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학교 국어 선생님과 제일 친해지게 되었고 그분의 소개로 많은 대회들을 나가 다양한 글들을 접하고 써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내가 어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어떤 책 읽는 걸 좋아하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전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동생이 4살, 내가 10살 되던 해에 동생의 아빠가 돌아가셨고, 그 후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상을 받아올 때마다 칭찬은커녕 나무라기만 했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나에게 남동생 숙제를 시켜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남동생의 숙제를 '도와달라는' 거였다.

나도 그 정도는 누나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에 종종 동생의 숙제를 '도와주곤'했다.

상을 받아와도 칭찬을 않던 엄마가 내가 남동생의 숙제를 도와주니 웃으며 칭찬을 해주더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화나고 짜증 나는 상황이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이 어렸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엄마의 칭찬, 그토록 받고 싶었던 엄마의 인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더 적극적으로 동생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남동생과 달리 난 그렇게 악착같이 뭔가를 해야 겨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엄마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동생의 숙제를 나에게 대신하라고 지시했다.

방학 시작할 때 나눠주는 청소년 권장도서 리스트를 들고 온갖 서점을 돌아다니며 다 구입하고 갖고 와서는 내 책상에 쌓아두곤 했었다. 그걸 다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것이다.

단, 그 독후감을 쓴 사람은 동생이어야 했다. 내 이름이 아닌 동생의 이름을 쓰고, 마치 동생의 글씨인 것처럼 조금은 삐뚤빼뚤하게 쓰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생이 독후감을 먼저 쓰면 내가 첨삭을 해주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주고 나면 동생이 옮겨 적는 행태로 변했다.

그런데 동생이 그거 쓰는 거 마저 힘들어한다며 내가 그냥 다 하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나. 너무 화가 났다. 난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나도 방학 동안 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동생 숙제를 해줘야 하냐고, 이건 잘못된 일 아니냐고 엄마한테 대드니 엄마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살 달래고, 인정해주며 날 이용해먹던 엄마가 발끈하는 나를 보더니 본색을 드러내며 욕지기를 쏟아부으면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 집을 가도 누나들이 공부 못하는 동생 그 정도는 다 도와준다며 내가 나쁜 년이라서 그러는 거라고 소리 지르며 손으로 내 머리, 뺨을 때리다가 점점 본인 분노에 못 이겨 결국 날 눕혀놓고 발로 밟고,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벽에 내 머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겁을 먹은 동생에게도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네가 똑바로 하란 말이야!!!

그래야 이깟 년 한테 그딴 부탁 안 하고 당당하게 살 거 아니야!!!


엄마에게 대체 난 뭐였을까? 난 그 사람에게 정말 딸이 맞았나?

결국 엄마는 또 나에게 내가 친부를 닮아 이따위라는 결론 내렸다.

늘 시작은 다양했지만 끝은 하나였다. 내가 친부를 닮아서, 그래서 내가 저지른 친부와 닮은 이기적이고 못된 행동들 때문에 다 이 사달이 일어났다는 것. 언제나 결론은 그거 하나였다.

동생의 방학 숙제를 대신해주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밟혔다. 엄마에게 뺨을 수십 차례 맞았다. 온몸에 멍이 들어서 반팔을 못 입을 정도였다.

이게 정상인 상황인가?





엄마는 나에게 그나마 하나 있던 작은 특기까지도 남동생을 위해 쓰기를 바랐다.

엄마에게 자식은 동생뿐이었다.

난 그저 엄마의 자식을 잘 키워내기 위한 도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오빠, 올케언니, 동생, 그리고 엄마의 두 번째 재혼 상대인 지금의 아빠도 모두 방관자들이었다.

특히 올케언니는 버릇없는 동생을 혼냈다가 엄마에게 김 씨 식구라고 김 씨 편만 드냐는 말도 안 되는 폭언을 듣고 그 이후부터는 동생의 편에 섰다. 나를 더 나무라면 나무랐지, 그 뒤로는 동생을 나무라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 며느리니까 시어머니가 무서웠겠지 하고 이해해주고 싶다.


엄마는 자신의 감정이 불편하면 온 주변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모두 전염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온 가족이 모두 엄마 편이었다.


그러게 네가 엄마 말 좀 듣지.

네가 잘못 안 했어도 그냥 죄송하다 하고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되니?

또 너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워졌잖아.


그 집안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엄마에게 아무리 그래도 딸한테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 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함부로 대하니 그들도 무의식 중에 난 그렇게 맞아도 되는 아이, 나는 늘 혼나도 되는 아이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친자식을 학대하고 죽였다는 부모와 그 공범들의 뉴스를 보며 저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가?

슬프게도 난 그런 뉴스를 보면서도 놀랍지 않다. 나 또한 충분히 당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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