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연극
엄마가 내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늘 사소한 것들이었다.
엄마의 분노 버튼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눌러지고는 했다.
살이 찐 체형이었던 나는 여름만 되면 양쪽 허벅지 살의 마찰로 살갗이 자주 벗겨지곤 했다.
한 번은 허벅지 살이 너무 아파 걸음걸이가 좀 주춤했는지 엄마는 나에게 당장 바지를 벗어보라고 했다.
엄마는 내 허벅지의 상처를 보더니 별안간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너 남자랑 무슨 짓 했어?!
더운 여름에 거들이나 속바지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오래 걷다 보니 허벅지에 땀이 차고 습기가 찼을 것이다. 게다가 걷는 동안 양쪽 허벅지가 계속 부딪히며 마찰을 일으켰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살이 발갛게 올라오고 열감이 상당한 상태였는데 엄마는 그런 내 허벅지 상태를 보며 걱정보다는 의심을 하기 바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로는 날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못 믿기 때문에 딸에게 받을 미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엄마의 그런 말은 궤변이었다.
남녀공학을 다녔던 내가 연애편지라도 한 통 받는 날이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내가 그 남자애에게 꼬리를 쳤기 때문에 편지를 받아온 것이라며 나를 쥐 잡듯 잡아댔다. 하교 후 친구들이랑 떡볶이 한번 먹고 나면 나랑 친한 친구들 집에 전화까지 돌려가며 나와 떡볶이를 먹은 게 맞는지, 몇 시쯤 헤어졌는지까지 모두 캐내기 바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친구들도 학교 밖에서는 나와 따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엄마의 상상 속에서 대체 난 어떤 딸이었을까.
살갗이 헤진 허벅지 살을 보며 약 발라줘야겠구나 생각보다 이것이 어디서 어떤 놈이랑 뭔 짓을 하고 왔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라면 적어도 그분의 상상 속에서 난 좋은 딸은 아니었나 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도 엄마에게 힘으로 반항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를 때리면 나도 달려들어 있는 힘껏 엄마를 밀쳐냈다. 막말을 퍼붓는 엄마에게 나도 비수가 되는 말들을 무차별적으로 날렸다.
한 번은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꽉 휘어잡고 놔주질 않는 거다.
너무 화가 난 나는 엄마에게 당장 내 머리카락에서 손 떼라고 소리쳤지만 엄마는 끝까지 내 머리카락을 더 힘주어 잡아챘다. 순간 이성을 잃은 나는 열 손가락 손톱으로 엄마의 양쪽 팔을 사정없이 찌르고 긁어댔다.
피가 줄줄 나도 여의치 않고 손톱으로 온 힘을 다해 엄마의 팔을 공격했다. 그래도 엄마는 끝까지 내 머리채를 놓지 않고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날 바닥에 눕혀 내 머리를 바닥에 찍어대기 시작했다.
항상 시작은 뺨을 때리는 걸로 시작하다가 엄마 자신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할 때면 그렇게 내 머리를 바닥에, 또는 옷장 모서리에 찍어 대고는 했다.
엄마는 그날 저녁 귀가한 두 번째 새아빠에게 자신의 팔에 난 상처들을 보여주며 내가 한 짓이라고 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해댔다. 그 난리통이 일어날 때 집에는 엄마와 나, 올케언니뿐이었다.
올케언니가 시누이 편을 들어 시어머니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엄마는 두 번째 새아빠를 붙들고 거짓말을 보태가며 나를 세상 천하의 나쁜 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말로 사람 한 명 정도는 우습게 짓밟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동생이 엄마를 닮아 그렇게 영악했던 건가 할 정도로 엄마는 모든 상황을 본인이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행동을 잘했다.
앞 뒤 상황 다 빼고 내가 엄마에게 달려들어 공격했다며 새아빠에게 세상 서럽게 울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의 시나리오에서 늘 난 나쁜 년이다. 엄마는 세상 착하고 불쌍하고 가여운 엄마고 말이다.
엄마만의 세상 속에서 엄마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이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식만은 버리지 않고 지킨 여자.
그럼 나는? 그런 상황에서 자식을 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엄마들도 많은데 기꺼이 날 버리지 않고 거둬준 엄마에게 고마운 줄 모르고 사춘기 핑계로 엄마에게 불효하는 나쁜 년. 즉 내가 가해자이고 엄마는 피해자였다. 엄마의 가상현실 속에서는 말이다.
그날 엄마가 새아빠에게 전달한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내가 엄마에게 잘못을 먼저 했고, 그것에 대해 지적을 하니 내가 심하게 대들었다.
그래서 내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엄마가 날 한 대 때렸더니 내가 엄마를 마치 죽일 것처럼 달려들어 엄마를 공격한 것이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든 엄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엄마는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기 위한 연극에 굉장히 뛰어났다.
대성통곡을 하며 중간중간 정신을 잃고 쓰러질 듯한 제스처까지 잊지 않았다.
엄마에게 MSG가 심하게 가미된 그 이야기를 들은 두 번째 새아빠는 냅따 카메라를 꺼내 엄마의 팔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런 건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야 나중에 법으로 가도 내 잘못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그들이 방관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또한 공범, 가담자였다.
엄마는 자신의 상상이 꼭 사실이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엄마의 비상식적인 폭력행위들이 정당화되니까. 내가 엄마의 상상과 다르게 착한 딸이라면 반대로 엄마 자신이 나쁜 엄마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에게 몇 시간이고 폭력을 쏟아붓고 나면 늘 온 가족들을 앞에 앉혀두고 가슴을 탕탕 치며 세상 제일 억울한 사람인 것처럼 통곡을 해댔다. 물론, 없던 이야기까지 지어내며 나를 최대한 가족들 앞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나에게 신나게 매타작을 하고 나서 통곡하며 쓰러지는 건 엄마의 레퍼토리였다.
내 눈에는 그게 모두 엄마의 '쇼'였는데 다른 가족들의 눈에는 정녕 그것이 보이지 않았나?
엄마에게 몇 시간을 맞아 팔다리에 피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몇 움큼씩 빠져 바닥이 새카매져도 울면서 쓰러지는 건 늘 엄마였다.
가족들 눈에는 엄마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건지, 그들은 쓰러진 엄마에게 달려들어 팔다리를 주물러대며 당장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딸이 엄마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일을 이지경으로 만드나며 날 나무라기 바빴다.
엄마에게 맞아 입술이 까져 피가 흐르고, 팔다리는 멍으로 가득하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는 날 나무라기 바빴다.
여보세요 들!!!!! 지금 온몸을 두들겨 맞은 건 나거든요??!!! 내 꼴은 안 보이세요??!!
라고 힘껏 소리치고 싶어도 그럴 의지조차도 나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그런 무기력은 긴 세월에 걸쳐 자행된 엄마의 폭력 속에서 학습되어 왔기 때문에 쉽사리 그 상황을 타파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에게 몇 시간 동안 폭력을 퍼붓다가 통곡하며 쓰러지면 엄마는 순식간에 약자가 되었고, 난 그런 약자를 아프게 만든 천하의 몹쓸 딸이 되어버리는 패턴이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지속되었다. 안 그래도 당뇨, 고혈압 등 지병으로 몸이 아프고 힘든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신경 쓰게 하고 결국 쓰러지게 만드는 나쁜 딸.
이것이 엄마와 가족들이 가스 라이팅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내 모습이다. 특히나 엄마가 그 일에 매우 앞장섰다.
지금도 새아빠는 가끔 나에게 '소가죽'이라고 부른다.
엄마에게 그리 맞으면서도 울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소가죽처럼 질기다고 날 소가죽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는 당시의 내 모습, 내가 처한 상황이 소가죽이라는 별명으로 가볍게 농담처럼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별 일이 아니었나?
엄마는 본인이 나쁜 엄마였다는 걸 감추기 위해 날 나쁜 딸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가족들은 모두 그런 엄마의 계획에 적극 동참한 공동정범이었다. 그들이 날 '소가죽'이라며 놀리듯 별명으로 부르는 행동이 그것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