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공동정범
엄마는 나의 외모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가차 없이 공격했다.
엄마의 지인들이 집에 놀러 와 내가 인사를 하러 거실로 나가면,
“ 내 딸이야, 좀 뚱뚱하지?”
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뚱뚱하다고 꼭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직성이 풀리시는지 누군가를 만나 인사할 때마다 꼭 이렇게 콕 집으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 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 난 며느리가 더 내 딸 같아. 우리 며느리 전에 봐서 알지? 우리 며느리 엄청 날씬하고 예쁜 거.”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올케언니 칭찬을 입에 마르게 했고 엄마는 트로피를 손에 거머쥔 거 마냥 어깨를 으쓱해댔다. 난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비키곤 했었다.
사람들이 거실에 걸린 상장들을 유심히 보면 우리 딸이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한다며 자랑을 해놓고 끝에 꼭 한마디 덧붙이셨다.
“ 살만 안 쪘으면 좋았을 텐데.”
성장기에 살이 쪄도 뭐 어떠냐고, 왜 딸한테 그런 이야기 하느냐고 지인들이 뭐라 하시면 꼭 나를 전시하듯 불러 세웠다.
“ 이것 봐. 전에 봤을 때 보다 더 찐 것 같지 않아?”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엄마는 나에게 정말 무례했다.
뚱뚱한 사람은 세상을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딸인 나를 끌어내리기 바쁘셨다.
한참 빛나야 했던 나의 20대는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그늘졌던 기억뿐이다. 남동생도 비만 체형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원래 덩치가 있어야 하는 거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나에게만 가혹했다.
살을 빼라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을 시키기도 하셨다. 매일 아침 화장실 다녀온 후 속옷만 걸친 상태에서 체중계 위에 올라가게 하시고는 거실 달력에 내 체중을 기록하셨다. 온 가족이 오가며 달력을 보면 내 체중을 볼 수 있게 말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인권유린이다.
내가 순응하지 않고 대들면 그 모든 게 나를 위해서라 말하며 누르려고 했다. 처음에는 엄마만 나에게 그런 행동들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 가족이 내 체중에 관심을 기울였다.
숨이 막혔다. 그 집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 고통이었다.
냉장고를 열면 온갖 종류의 편의점 간식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남동생을 위한 것들이었다. 나를 위한 건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가 중간에 누가 물을 먹고 싶다거나, 부엌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 있다거나 할 때 온 가족은 어김없이 나를 시켰다. 꼭 한 마디 씩 덧붙이며.
“ 많이 움직여야 살 빠져.”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건 너무 서러웠다. 왜 옛 속담에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밥을 막 먹으려 할 때나, 한참 밥을 먹는 중에 자꾸 일어나서 심부름을 하려니 너무나 짜증이 났다.
내가 19살, 고3 때였다.
집에 손님이 오셨다. 저녁을 대접하기 위해 밥상을 차리고 손님과 함께 온 가족이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남동생이 물 먹고 싶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엄마가 만류했다.
“ 넌 앉아. 김지영. 네가 가서 물 떠 와. 움직여. 안 움직이니까 살찌는 거 아냐.”
지인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손님이 있던 자리였다. 엄마의 말에 너무나 기분 상하고 기분이 나빠 숟가락을 세게 탁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에 엄마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엄마는 분노 조절이 힘든 사람이었다.
특히 나에 대한 분노에 대해서만 조절이 매우 힘든 사람이었다.
숟가락을 소리가 나게 탁 내려놓은 행동에 손님이 계시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분노하셨는지 밥상 앞에서 나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잡으셨다.
그리고는 머리채를 꼭 잡고 피하지 못하게 한 후 뺨을 수차례 내리치시며 어디 건방지게 숟가락을 그렇게 내려놓느냐 소리치셨다. 그때 온 가족이 당황했겠지만 가장 당황했던 건 아마 손님이셨을 거다. 가족들과 손님이 달려들어 엄마를 내게서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자 엄마는 더 화가 났는지 이번엔 내 윗옷을 잡아 찢어버리셨다. 티셔츠가 걸레처럼 찢어졌다. 그날 집에 방문한 손님은 중년의 남성분이셨다.
그래, 가족은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한 발 양보한다 쳐도 중년의 남성 앞에서 딸의 옷을 찢는 엄마를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 갈기갈기 찢긴 티셔츠 사이로 속옷이 다 보이고 맨살이 다 드러났다. 그러고 나서야 엄마는 멈췄다. 엄마에게 맞으면서 울었던 적이 없다.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맞으면서 운 날이었다. 그건 아파서 운 것도 아니었고, 슬퍼서 운 것도, 억울해서 운 것도 아니었다.
수치심 때문에 눈물이 났다. 울면서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입술이 터져 피가 났다. 그 와중에도 가족들은 내 탓을 했다.
그러게 숟가락을 왜 그리 세게 내려놔.
손님 앞에서 그러면 엄마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
그냥 물 뜨러 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기분이 나빠.
엄마가 처음에 달려들 때 라도 죄송하다고 했어야지.
왜 큰 일도 아닌 걸 크게 만들고 그래.
나에게 쏟아지던 말이다. 그때도 모든 건 내 탓이었다. 모든 문제는 내가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 없을 집 이란다. 이 얼마나 대단한 가스 라이팅인가.
모든 게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밥을 먹다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만 시키는 것도 살찐 내가 날씬해지라고 그러는 것이고, 냉장고에 남동생 간식만 가득 채워놓는 이유도 내가 더 살찔까 봐 그러는 것이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거실 달력에 매일 내 체중을 공개적으로 적어놓는 행위도 다 살찐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난 살이 쪘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생존해내고 있었다.
목욕탕을 가도 날씬한 올케언니 옆에 날 세워두고 품평질을 해댔고 친척들이 오면 살찐 내 모습이 창피하다며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도 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날 위한 것이었나? 그건 당사자인 내가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모든 행동들이 날 위한 행동이었는지, 아닌지는 당사자인 나의 생각에 따라 결정될 일이지 그들이 나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건 날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날 좀먹고 있던 마음의 병을 더 악화시키는 독이었다.
엄마가 날 함부로 대하면 대할수록 다른 가족들도 날 그렇게 대했다.
그 집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