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꽃들이 향기로운 건 아닌 것처럼
엄마는 나와 부딪힐 때마다 딱 너 같은 자식만 낳아서 키워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입 밖으로 내 생각을 꺼낸 적은 없지만 엄마가 참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분이구나 생각하고는 했다.
난 자식을 낳으면 절대 엄마가 나에게 한 것처럼 하지 않을 거라서 내가 낳은 자식도 나 같지는 않을 텐데 참 본인 얼굴에 침 뱉기를 어쩜 저리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나도 자식을 낳아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이 정말 이해가 될까 싶기도 했다.
뭔가 엄마들만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자식을 낳아보니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것은 바로 학대였다. 엄마가 나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것은 학대였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학대였다.
첫 아이를 낳고서 한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막연했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자식을 낳고 보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내 품 한가득 안으면 온 세상을 다 안은 듯했다. 말랑말랑한 볼살, 정수리에서 폴폴 풍기는 아기 냄새, 내 검지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작은 주먹.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이가 첫 옹알이를 할 때, 첫걸음을 떼었을 때, 첫 이유식을 성공했을 때 등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엄마에게는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일까. 내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쏟아내었던 독 같던 말들, 나를 때리며 흥분하던 눈, 날 죽이겠다며 소주병을 깨어 들고 달려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사랑하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내게는 온 세상과 다름없는 내 아이에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해서도 안 되고 아이를 사랑한다면 절대 할 수도 없는 행동이다.
난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난 절대 엄마가 나에게 행했던 폭력을 내 아이들에게 행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진 소주병을 들고 자신을 찌르려는 엄마 앞에서 8살 작은 소녀는 정말 엄마가 날 죽일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엄마가 화를 못 이겨 화풀이하듯이 두드려 패도 온전히 맞아야 했던 나는 절대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수 백 번, 수 천 번을 다짐했다.
엄마는 정말 날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날 사랑했을 리가 없다. 내가 자식을 낳아 기르며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
여자의 이혼이 동네 창피한, 그래서 숨겨야 하는 죄악처럼 인식되던 시대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한 엄마였다. 그것도 전남편의 자녀를 두 명이나 데리고 총각과 말이다.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오빠와 나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였다. 새아빠 집안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을 때 엄마는 오빠와 내가 짐짝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오빠가 '친구'라는 도피처로 피신한 반면 7살이었던 나에게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를 짐짝이라고,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을 엄마에게 화풀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른 나의 친부와 너무나 닮은 내 얼굴까지. 모든 상황이 엄마가 날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엄마가 성숙한 성인이었다면 현명하게 그 상황에 대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엄마는 그러지 못했고 난 엄마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7살 때부터 엄마는 툭하면 날 사창가에 팔아넘기겠다고 말했다.
난 고모들을 닮아 끼가 있다며 말을 안 들으면 돈 받고 날 넘기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나도 지금 딸을 키우고 있다. 내 딸이 지금 6살이다.
난 절대 내 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천진하고 사랑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그 얼굴을 보며 그런 말을 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없다.
엄마는 정말 어지간히도 날 싫어했고 그걸 나에 대한 학대로 풀었다.
물리적인 학대, 언어적 학대 그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내 영혼을 조금씩 죽여 나갔다.
급기야는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아도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김없이 폭력이 날아왔다. 7살 아이가 그런 학대를 당하면 안 되는 거다.
시간이 흘러 뒤늦게 엄마의 방식으로 나에게 미안함을 표현한 건 날 위한 것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엄마는 온갖 반찬을 해서 주거나 손자의 옷들을 한 보따리 씩 사다 주곤 했다.
손자의 생일이나 뭔가 이벤트가 있으면 용돈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이 모든 행동들이 미안하다, 고맙다 같은 말 따위 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엄마 나름대로의 미안하다는 뜻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동들은 내 마음에 닿을 수 없었다.
그런 행동들로 치유될 상처가 아니었다. 내 상처는...
그렇게 해서 엄마의 마음이 편해졌겠지만 난 전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 향기롭기만 한 건 아닌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