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개의 가면을 가지고 살다
너무 오랜 시간 가족들이 나를 함부로 대해왔다.
그런 분위기를 앞장서서 조성한 엄마는 나에게 온갖 형식의 폭력을 휘둘렀고 말이다.
그런 가정 안에서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는커녕, 내 생각을 지지해주거나 감정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난 집에서 사는 동안 늘 가면을 준비해두고 살았다.
집 안에서는 웃을 일이 없었다. 마음 편히 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집 밖으로 나가면 가면을 썼다.
활발한 사람의 가면, 맡은 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얼굴의 가면, 누구라도 마음 편히 나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는 온화한 얼굴의 가면 등등...
결혼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가면을 골라 쓰는 행위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바늘로 피 한 방울 나지 않은 냉정한 년이라고 욕을 했다.
내가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그날도 엄마는 아프다며 누워있었다.
등교할 때도 누워있더니 내가 하교하고 나서도 누워있었다.
엄마는 거의 매일 아프다,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살며 늘 누워 지내던 사람이었기에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날 냉정한 년이라고 불렀다.
아들 둘은 그래도 엄마 어디 아프시냐 물어보기도 하고 안방을 기웃거리기라도 하는데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게 엄마가 누워 있어도 모른 척한다며 냉정하단다.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날 공격할 때마다 난 무척 당황했었다.
엄마와 나의 사이가 여느 모녀처럼 좋은 사이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엄마가 아픈데 들여다보지도 않느냐고 달려들면 내가 뭐라 해야 할까. 죄송하다고 해야 했었나?
엄마는 딸인 내가 아파도 무시했던 사람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 겨울이었다.
갑자기 팔다리가 너무 아프고 온 몸이 뜨거웠다. 순식간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리기에 너무 놀라서 엄마에게 나 지금 몸이 이상하다고, 너무 아픈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그때 엄마는 나에게,
아프긴 뭘 아파!!! 뭘 또 어디서 쳐 주워 먹고 다니니까 그러지! 넌 너무 처먹어서 아픈 거야!!!
세월이 흘러도 그 겨울에 엄마가 마당에서 나에게 뱉었던 말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처먹어서 아픈 거라고 소리 지르고 있는 엄마에게 더 이상 무얼 이야기할 수 있겠나.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누웠고 몸은 그렇게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갈수록 몸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무서워서 엄마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처음에 아프다고 이야기했을 때 반응으로 유추해보건데, 한번 더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날 때릴 것이 분명했다. 결국 난 걸어서 올케언니의 직장까지 찾아갔다.
내 얼굴을 본 올케언니는 깜짝 놀라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연락한 올케언니에게 엄마는 네가 알아서 데리고 다녀오든가 말든가 하라고 했고 올케언니가 날 데리고 병원에 급히 갔다.
청진기를 대보려고 내 티셔츠를 걷어올린 의사 선생님은 올케언니에게 왜 이렇게 열꽃이 필 동안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엄청난 고열로 아이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라며 홍역일 수도 있고 지금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 배를 내가 내려다 보고는 나도 놀랐다. 온몸에 불긋불긋 피부 색깔이 이상해져 있었다.
체온을 재보더니 의사 선생님은 열이 너무 높아 해열제를 주사로 쓸 수도 없다며 웃통을 벗겨 물수건으로 몸을 계속 닦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날 눕혀놓고 의사 선생님이 시킨 대로 물수건으로 내 상체를 닦아냈다. 내심 기대했다. 엄마가 나에게 사과할 거라고.
그런데 엄마는 미안해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이 일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이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한데 당시 중학생이던 내가 이 일을 어찌 잊었겠는가.
엄마는 본인의 행동을 까맣게 잊은 건지 어찌 엄마가 아파 누워있는데 자식이 모른 척하냐며 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거라 했다. 그만큼 독한 년이라고 나를 비난했다.
나에게 수십 년간 했던 행동들과 말을 보면 엄마가 나에게 독한 년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늘 부모로서 딸인 나에게 어찌했는지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자식의 의무에 대해서만 나에게 외쳐왔다. 정작 부모로서 자식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것도 충분히 해내지 못한 엄마가 말이다.
내가 아프다며 방에 누워있는 엄마를 들여다보지 않은 이유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엄마가 걱정되었다면, 그래서 정말 엄마가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면 나는 하교하자마자 누워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아침에도 누워있더니 지금도 누워있느냐고,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거냐고,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마음이 일절 없었다.
엄마는 늘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그건 그냥 으레 지나가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 엄마가 진심으로 날 간호해 준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홍역에 걸려 몇 주를 고생하는 동안에도 간호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냥 엄마가 불편했다.
아프다는 나에게 너무 처먹어서 아픈 거라며 올케언니에게 네가 병원 데려가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했던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못 받아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유아기 때부터 엄마에게 받아온 학대행위도 그 이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즉, 엄마와 나 사이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프다며 누워있어도 솔직히 난 아무 감정도 느끼는 게 없었다.
엄마와 나는 그런 사이였으니까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는 갑자기 내가 아프다는 본인을 살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섭섭하다는 둥, 나에게 냉정하다는 둥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급기야 시큰둥한 나에게 욕까지 퍼붓는다.
엄마가 아파 누워있다고 내가 엄마를 걱정하며 안방에 들어가는 게 오히려 우리 모녀 사이에는 더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었다.
엄마는 정말 거짓말처럼 본인이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잊은 것이었을까?
내가 기억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엄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뻔뻔하게 내가 여느 집 딸들처럼 본인을 대해주기를 바랐다.
정작 본인은 여느 집 엄마들이 딸 대하듯 날 대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더 냉정한 딸이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뿌린 만큼 거두었으면 하는 독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