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가정폭력 대물림'이라고 써보면 관련 기사와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쏟아진다. 정말 폭력이 대물림되는 일이 흔하긴 흔한가 보다.
하지만 난 '가정폭력은 대물림된다'라는 그 말이 너무 싫다.
그래서 늘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남매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야 아직 모든 게 서툰 존재들이니 가끔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친다.
그때마다 욱욱 화가 올라오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칠 때가 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난 내가 소리쳐놓고도 스스로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방금 너무 엄마 같았던 거 아닌가? 어쩌지?
그리고는 이내 방금 소리친 것이 미안해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한다.
엄마가 큰 소리를 내서 놀랐냐고, 미안하다고, 네가 다치는 줄 알고 엄마도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큰 목소리가 나왔다고, 놀라지 말라고...
집 안에서 늘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던 나에게 집은 지옥이었다.
학교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집에 가는 게 싫었다.
내 아이들에게만은 나와 같은 유년시절을 대물려 줄 수 없어서 언제나 행복한 집, 즐거운 집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을 하고 있다.
쟤 좀 봐봐. 지 엄마도 그러더니 어쩜 저리 지 엄마랑 똑같아!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다. 이 말이 듣기 싫어서,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언제나 노력에 노력을 더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남은 치명상은 쉬이 치유되지를 않고 있다.
지금도 밤에 잠을 자다가 엄마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도 엄마는 인상을 잔뜩 쓰고 나를 곧 죽일 기세로 달려들며 내 온몸을 손과 발로 때린다.
나도 엄마를 때리며 소리친다.
그렇게 때렸으면서 아직도 뭐가 모자라서 이렇게 꿈에서까지 때려!!!!! 다음부터 내 꿈에 오지 마!!
그 뒤로도 종종 엄마꿈을 꾸었다.
엄마꿈을 꾸고 나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케케묵은 30년도 더 넘은 과거의 일들이 마치 바로 어제 겪었던 일인 것처럼 되살아나서 쉽게 잠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느낌까지 든다.
증상은 점점 심해지더니 어느 날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숨을 몰아쉬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당장 이 공간을 벗어나야 내가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과호흡 증상으로 순간 어지럼증이 심해져 정신이 아찔해졌다.
공황발작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몇십 년에 걸쳐 저지른 행동 때문에 내 몸과 정신에 이상이 온 것이다.
난 엄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들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든 엄마는 그분 나름대로 미안함을 나에게 표현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마음들이 닿지 못했다.
엄마가 엄마의 입으로 사과해주기를 바랐다. 엄마가 엄마 스스로 나에게 인정하길 바랐다.
엄마 자신을 위해 온갖 거짓말로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날 깎아내린 것, 나에게 휘두른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들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러지 '않았다'.
순전히 엄마의 의지에 따라 엄마는 나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마음보다 어떻게 나한테 진정 어린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릴 수 있나 싶은 억울함이 북받쳐 올라왔다.
엄마는 내게 사과를 하고 돌아가셔야만 했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는,
자식 버리고 도망가는 다른 년들에 비하면 내가 대단하지! 난 자식은 떼놓지 않았어!
라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절 보육원에 보내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엄마와 내 삶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은데.
그거 절대 잘 한 선택 아니에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대꾸도 하지 않고 엄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냈다.
교외 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받았다고 날 나무라던 엄마에게 예선 통과도 못해 대회 조차 못 나간 애들이많은데 왜 나한테 칭찬 한번 안 해주냐라고 따지니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왜 너보다 못한 애들을 바라보며 사냐고. 그러니까 니 인생이 발전이 없는 거라고. 니보다 더 잘하는 애들을 보라고 말이다.
나도 그 말을 엄마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왜 엄마보다 못한 엄마들을 보며 위안 삼느냐고. 엄마보다 더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엄마들을 보면서 좀 배우라고 말이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나에게는 세상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매를 퍼부었던 엄마였다.
난 절대 그런 엄마는 안될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난 좋은 엄마들에게서 자란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가 되는지 방법조차 모른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아니, 불안했었다.
전에는 많이 불안했었다. 내가 자녀들에게 좋지 못한 엄마가 될까 봐.
정확히 말하면 내 엄마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에서 벗어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꿈을 최대한 꾸지 않기 위해 엄마가 가끔 떠오르더라도 그 생각에 내가 잠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육아적으로 뭔가 선택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히면 딱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절대 그 반대로만 하자.
그리고 하늘이 두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꼭 지키자고 마음먹은 육아 철칙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절대 아이들에게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난 사랑의 매 따위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를 때리는 주체가 인공지능 로봇이면 가능하겠지만 매를 드는 사람조차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엄마의 폭력 패턴을 보면 뺨을 때리는 행위부터 시작해 결국 자기감정을 못 이겨 눕혀놓고 발로 온 몸을 밟거나 고무호스, 삽자루, 대걸레, 쇠 파이프 같은 마치 고문기구와도 같은 도구를 이용해 때리는 지경까지 가곤 했다. '매' 에는 때리는 사람의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맞으면서,
아, 엄마가 날 사랑해서 때리시는구나. 내가 잘못한 거구나. 다신 이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다.
날 때릴 때마다 엄마의 눈빛에는 살기가 어려있었다.
엄마는 절대 날 사랑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내 아이들에게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큰 소리가 나도 몰래 나와도 사과하고 꼭 안아주고 있다.
고맙다, 미안하다 라는 말에 인색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이런 나라도 언젠가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