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들이 '당연히' 나에게 쏟아지는 것
사실 비정상적으로 살이 찌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잘 맞던 옷들이 작아지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빅사이즈 여성의류'를 검색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외면하던 현실을 잔인하게 일깨워주는 것은 세상의 무례함이었다.
아이고, 저 여자 근(斤) 수 좀 나가겠는데?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예정일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였을 것이다.
낮에 혼자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집 앞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내 뒤에 걸어오던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던진 말이었다.
난 사람이다. 고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그 좁은 골목길에서 나에게 들릴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근 수가 좀 나가겠다는 말을 뱉었다.
뒤를 돌아 그 말을 한 할아버지를 가만히 노려보니 본인도 민망했는지 애써 내 시선을 외면하면서 발길을 재촉하셨다.
살을 좀 빼. 살이 찌니까 몸이 아프지.
첫 아이를 출산하고 몸이 좀 풀리자마자 계약직으로 입사했던 회사 이사님께 들은 말이었다.
내가 자주 아파서 회사에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딱 한번, 환절기를 못 이긴 내 목이 부어 고열로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이사님께 전화를 드려 하루만 쉬겠노라고,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데 전화를 끊기 전 그 이사님은 나에게 살이 찌니까 몸이 아픈 거라며 살을 빼라고 했다.
사실 남들보다 더 한건 가족들이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100일도 안 됐을 때, 40도가 넘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을 했다.
119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눈을 떴고, 내 옆에 같이 타고 계시던 여자 구급대원의
" 정신이 드셔요?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몸이 상했어요?"
라는 말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은 당시에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늦은 새벽에 들어와 곤히 자는 남편에게 차마 신생아를 맡길 수 없어 하루 24시간 동안 2시간 간격으로 젖을 물리며 둘째를 돌보았다.
그러다가 몸에 탈이 난 것이었다. 병명은 신우신염이었다.
그러니까 살을 빼라고!!! 살이 그렇게 찌니까 몸이 남아나냐?
구급차에 실려간 후 입원 수속을 밟는 바람에 100일도 안된 둘째를 올케언니에게 맡겼다.
구급차에 실려간 그다음 날, 잠투정 심한 둘째를 봐주고 있는 올케언니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자 전화를 했는데 그때 들은 말이다.
가족들은 내가 아프면 모두 그 원인을 비만으로 돌렸다.
난 감기가 걸려도, 신우신염에 걸려도, 편도염에 걸려도, 심지어 요로결석에 걸려도 그 모든 원인이 비만 때문이라며 살을 빼라고 난리를 쳐댔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던 때여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참을 수 없었다.
올케언니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결국 올케언니는 나에게 울면서 사과를 했지만 그 사과는 내 마음에 닿지 못했다.
거울 좀 봐라. 네가 사람이냐?
오늘 사위한테 용돈 줘야겠다. 룸살롱에 가서 여자들이랑 놀라고 돈 줘야겠어. 네가 그렇게 살이 뒤룩뒤룩 찌니까 내가 사위한테 미안해서 그런다.
모두 친정엄마가 나에게 뱉은 말들이다.
친정엄마는 심지어 살이 찐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하니까 집에 손님이 오면 나에게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어떤 때는 딸인 나를 부를 때 " 야, 뚱돼지." , " 야, 흑돼지." 등등의 호칭을 사용했다.
도대체 남들보다 살만 쪘을 뿐인데 왜 나를 죄인 취급하느냐, 내가 무슨 남의 음식 도둑질해서 먹었냐,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살이 찐 게 죄는 아니지 않으냐라고 엄마한테 대들 때 옆에 가만히 있던 새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살찐 거 죄 맞지. 네가 니 몸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거잖아.
그러면서 나에게 죄인 맞다고, 너는 지금 죄를 짓고 있는 거라고, 살이 찐 건 죄라고 비난했다.
살이 쪄가니 성격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난 원래 외형적인 사람이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살이 쪄가면서, 살이 쪘다는 이유로 남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마저 자존감을 짓밟히는 무례함 들을 경험하다 보니 점점 밖에 나가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 몸에 붙은 체지방들이 나를 점점 죽여가는 것인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날 죽여가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신우신염 판정을 받고 입원해있는 시누이에게 살 빼라고 소리 지르는 올케언니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뭐라고 나를 짓밟냐고, 내가 너희들에게 뭘 그리 잘못했냐고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외치며 목놓아 울었다. 병실에서 너무 울어서 간호사들이 달려와 어디가 아프냐 물어봤지만 그냥 하염없이 울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초고도비만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건 세상의 오물 같은 무례함들이 아주 당연스럽게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