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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Nov 18. 2022

홈트, 그 넘기 힘든 산

나를 한 발짝 뛰어넘다

 신우신염으로 일주일을 병원에서 보낸 후, 굳은 마음으로 퇴원을 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바로 뭔가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둘째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갑자기 외벌이로 살아야 했던 까닭에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던 남편에게 운동 다녀올 테니 매일 아침에 아기를 봐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식사를 조절하는 첫 일주일은 너무 힘이 들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았다.

 왜 배는 밤에 더 고픈 걸까. 밤마다 잠자리에 누우면 울려대는 꼬르륵 소리가 너무 야속하고 짜증 났다.

 더구나 밤늦게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간단하게 야식이라도 챙겨주려고 할 때면 나 자신과 엄청난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다.

 하지만 버텼다.

 심야의 배고픔을 참아내면 다음 날 아침의 내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날을 철저하게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식욕은 정말 참기 힘든 본능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나만의 작은 규칙을 만들었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저녁에 주문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먹었다.

 모든 음식을 식사 시간 외 시간에 섭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아침식사인지, 점심식사인지, 저녁식사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시간대에는 일절 섭취를 하지 않았다.

 내가 세운 이 작은 규칙 덕분에 삼시세끼 정해진 식사시간 외의 군것질도 자연스레 없어졌고, 치킨이나 족발 같은 음식이 먹고 싶으면 최대한 아침식사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꽤 오랜 시간을 운동 없이 식단 조절만 했고, 너무 어렸던 둘째가 3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만이라도 맡길 수 있게 되었을 때 드디어 운동에 욕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걷기 운동을 하던, 헬스를 하던 어디든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다들 건강한 사람들, 날씬한 사람들만 있을 텐데 내 모습이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가 너무 무서웠다.

 

 나에게 근수가 꽤 나가겠다고 말했던 동네 이름 모를 할아버지.

 거울을 보라고, 네가 사람이냐며 살 좀 빼라던 엄마.

 내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수군거릴 것을 왜 모르냐며 쏘아붙이던 남동생.


 그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 때문에 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 하거나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면 다들 수군댈 것만 같았다.

 

 그때 즈음에 알게 된 유튜버가 있었으니, 바로 "땅끄 부부"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부부가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되찾고, 본인들만의 루틴으로 만든 운동법을 세상에 공유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부였다.

 첫째와 둘째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면 바로 TV로 땅끄 부부를 검색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신나게 영상 속 부부를 따라 했다.

 

 처음에는 30분 남짓 되는 영상을 끝까지 따라 하지 못하고 10분도 안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헉헉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얼굴은 열기로 붉게 달아올랐다. 10분도 채 안된 시간 동안 조금 움직였다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살이 찐 뒤로 고질병인 족저근막염을 얻었기에 발바닥은 또 얼마나 아픈지...

 처음에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운동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바로 그 점이 큰 단점이기도 했다.

 하루 정도 운동을 건너뛴다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홈트를 하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잘 조절되고 있던 식단도 운동을 하기 시작하니 입맛이 확 올라와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든 고비였다.

 집에서 혼자 홈트를 하다가 너무 지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쉴 때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왜 살이 쪄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난 왜 남들처럼 살 수 없는 거야?


 날 더 사랑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날 자책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은 포기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래, 내가 이 나이 먹고 모델을 할 거야, 연예인을 할 거야?

 난 어차피 애 둘 있는 아줌마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온갖 생각들이 들었지만 그 모든 생각들의 끝은 하나였다.


 오늘 홈트 하지 말까?





 그렇게 한 달동안 꾸역꾸역 홈트를 주 5일 동안 했다.

 내가 날 자책하는,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 못난 마음들을 꾹 참고 하루에 30분 ~ 40분 정도의 영상을 꼭 틀어놓았다.

 하기 싫어도 꾹 참고 했다.

 하루 24시간 중 30분 ~ 40분도 못 참아낸다면 훗날 내 아이들이 살아가다가 숱하게 만날 고비들 앞에서 힘들어할 때 넌 할 수 있다고, 너의 힘을 믿으라고 응원할 자격이 내겐 없어지는 거라며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힘들어도 이겨내고 뭔가를 쟁취해내는 모습을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버티며 매일 아침 9시 ~ 9시 40분까지 혼자 TV 앞에서 낑낑 거리며 땀을 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바닥을 밟는데 발바닥이 아프질 않은 것이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변화였다.

 분명히 어제 아침까지는 아팠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부터 전혀 아프지 않아 너무 신기했다.

 체중을 줄이면 자연히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정형외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발바닥 통증이 없어지니 홈트를 하는데 너무 신이 나는 것이다.

 석 달쯤 되어가니 내 기초체력은 서서히 좋아져서 40분짜리 운동 영상 하나를 마치고 20분가량의 에어로빅 댄스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바닥을 밟아도 발바닥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그날,

 난 나 자신을 한 발짝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즈음에 정말 큰 변화가 내 안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나에게 쏟아졌던 독설들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자책하고, 복수심에 가득 차 이 악물고 운동했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간 마트에서 " 어? 자기 뒤태가 좀 달라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남편, " 와! 엄마, 배가 많이 들어갔어요!" 라며 내 배를 만지는 아들, " 아니, 얼굴살이 다 어디 간 거야?"라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그들이 해준 긍정적인 말들을 떠올리며 즐겁게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쏟아졌던 무례함 들이 더 이상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못할 만큼 내 마음도 단단해지고 있었다.

 홈트라는 큰 산을 넘으며, 나 자신을 한 발짝 뛰어넘으며 겪었던 내면의 변화는 나 자신마저도 놀랄 정도로 날 외향적이고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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