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호박 Dec 01. 2022

자, 이제 진짜 산도 넘어볼까

내 인생의 첫 오름, 고내봉

 예뻐지고 싶어서 시작한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밤에 목이 말라 깨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밤새 주방을 들락날락 거리며 물을 마시는 통에 그만큼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어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방금 식사를 마쳤는데도 뒤돌아서면 느껴지는 허기만큼이나 한밤중의 갈증 또한 날 힘들게 했다.

 그것이 당뇨병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무서워서 병원도 가지 않았고,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가정용 혈당체크기도 지 않았다.

 살이 한참 쪄올 동안 체중계를 피했던 내가 이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병 마저 피하고 있었다.

 보나 마나 내 예감 이상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을 한 나는 병원에 가는 대신 독하게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이다.

 날씬해져서 예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싶어서가 아니다.

 건강해지고 싶어서였고, 그렇게 나는 '나'와 싸우며 첫 번째 고비인 홈트를 무사히 넘겼다.

 홈트로 기초체력이 올라오고 체중계 숫자가 내려가는 게 눈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다들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졌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바로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한 순간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 이제 됐다~ 하며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나태함이 다시 고개를 들기 쉬운 단계이기 때문이다.






 난 등산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한라산 백록담 등반을 한다는 거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강렬하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 너무 숨이 차서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다리는 너무 아파오고... 결국 난 그날 중간에 선생님과 함께 하산했다.

 그 뒤로 고등학생 때도 학교에서 백록담 등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난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거짓 핑계를 대며 중간에 선생님과 하산했다.

 그 두 번의 기억을 계기로 난 등산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었다.

 집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등산으로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매일 아침 고내봉 등반으로 운동을 하는 언니 두 명을 알게 되었다.

 그날을 내 인생의 아주 큰 터닝 포인트였다고 여기고 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두 언니는 늘 활기찬 모습이었다.

 조금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두 분이 매일 아침 동네에 있는 고내봉 오르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하는데 처음에는 크게 망설였다.

 난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집에서 홈트라는 고비를 넘은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이제는 산도 거뜬히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두 언니와 매일 고내봉에 오르기로 약속을 하였고, 쇠뿔도 당긴 김에 빼야 한다며 당장 다음 날 아침부터 합류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뻥뻥 치고 말았다.





 자신감 있게 약속을 잡고 집에 와서는 걱정이 앞선 나는 토털 사이트에서 '고내봉'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높이가 135m 밖에 되지 않는 동네 뒷산이었다.

 왕복 1시간 내외라는 정보를 접하고는 괜히 걱정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편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바로 고내봉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내가 검색해서 미리 정보를 알아봐 두었던 정식 등산로가 아닌 길로 가는 것이다.

 언니들은 정식 등산로는 운동이 안된다며 정말 짧고 굵은 코스를 알고 있다 말하며 날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짧고 굵은 코스 시작점에 다다른 나는 언니들과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입 지점을 지날 때 즈음, 엄청난 수의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계단 앞에 처음 서던 그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어떡하지? 그냥 몸이 좀 안 좋다 하고 돌아갈까?


 나는 또 이 상황을 피할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동안 기초체력이 많이 올랐다는 걸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었는데, 정말 어느 정도로 기초체력이 오른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 가보자!!! 힘들어봤자지 뭐! 죽기야 하겠어!


 언니들은 나를 배려해 내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계단을 올라주었다.

 나도 호흡을 조절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총 112개의 계단을 오르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추어 섰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폐만큼이나 허벅지도 터질 것 같았다.

 숨은 가득 차오는데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112개의 계단 지옥이 끝나고 나서 좀 편안해지나 싶더니 그 뒤로는 평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길이었다.

 오로지 오르막만 계속되는 길이었는데 경사가 상당했다.

 상체를 앞으로 숙여 올라가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른 곳이었다.

 그런 경사가 정상까지 계속 반복이 되는데 정상까지 다다르는 전체 길의 60% 정도를 차지하니 호흡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정말 쓰러지겠다 싶었다.

 결국 112개의 계단도 넘었던 나였지만, 그 경사길에서 세 번을 주저앉았다.

 첫 번째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나를 기다려주는 언니들에게 그냥 먼저 가시라고 했으나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며 같이 올라가자고 힘을 주셨다.

 두 번째는 주저앉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양 쪽 손으로 땅을 짚어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언니들, 저 도저히 못 가요. 여기 까지만 와도 저는 괜찮으니 언니들 얼른 올라가세요. 전 내려갈게요.


 하지만 언니들은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조금만 더 힘 내보라며 계속 내가 일어설 때까지 날 기다려 주었다.

 응원에 힘입어 힘겹게 일어나 한 발 , 한 발 내딛다가 몇 분후 다시 앞으로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 번째 주저앉았을 때는 현기증마저 났다. 얼굴에 홍조까지 심해지고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나 이제 정말 못 간다고, 정말 나 기다리지 말고 그냥 올라가 주시면 안 되느냐고 거의 울면서 이야기했지만 언니들은 절대 날 두고 가지 않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못 봤어?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도 전우를 구하기 위해서 그 고생하는 것 좀 봐.

 우리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너 데리고 정상으로 간다!!! 넌 이제부터 라이언이야!


 그날부터 내 별명은 '라이언 일병'이 되었다.

 결국 두 언니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로 고내봉의 정상에 내 두 발로 우뚝 섰다.



 


 추운 겨울이었다.

 몸 움직이는 걸 싫어했던 초고도비만이었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정상'까지 완주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는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거봐!!!! 할 수 있다고 했지?


 고작 135m 밖에 안 되는 동네 뒷산인 고내봉이었지만 난 그렇게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었다.

 정상에서 언니들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귤을 주면서 잘했다고, 잘 참아냈다고 격려해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일부러 익살스러운 농담을 해가며 말을 돌렸다.

 내 평생 해낼 수 없으리라 믿었던 것을 해냈다.

 남들에게는 마실 삼아 오르는 정말 낮은 동네 뒷산이지만 나에게만큼은 태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난 고내봉의 정상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날씨도 춥고, 너무 무리한 탓에 내일 아침은 올 수 있을지 모르겠노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야자수 매트가 예쁘게 깔린 고요한 하산길을 내려오면서 내일 또 와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고내봉과의 강렬한 첫 만남 이후로 난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아침마다 고내봉을 찾았다.

 



 날이 좀 풀리면 풀리는 대로 날이 풀렸으니 고내봉으로 가자며 집을 나섰고,




 추우면 추운대로 끝내주는 바다 뷰를 보기 위해 또 집을 나섰다.


 그렇게 주말을 제외한 주 5일 매일 아침, 언니들과 고내봉을 오르다 보니....



 



 바다에서 솟아오른 두 개의 무지개를 보는 날도 있었다.






 고내봉은 내게 첫 오름이다.

 처음으로 내가 정상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첫 등산이었다.

 사실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동네 뒷산 수준의 낮은 오름이지만 , 내게는 정말 큰 의미를 가진 고내봉이다.

 

 난 최근까지도 시간이 나면 고내봉을 간다.

 고내봉의 그 계단 지옥과 경사 지옥은 매번 가는데도 적응이 안 될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듦이 있어서 계속 찾게 된다.


 내게 처음으로 '성취감'을 가르쳐준 고내봉은 내 인생 오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홈트, 그 넘기 힘든 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