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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Dec 03. 2022

다이어트, 그 이상의 무엇

금오름에 올라 분화구를 따라 걷다 보면

 약 6개월간 주 5일을 고내봉에 올랐다. 

 몸이 너무 아파 쓰러질 것 같지 않은 이상, 꾸준히 올랐다. 

 고내봉의 숨은 매력인 급격한 경사의 오르막길은 올라도 올라도 매일 힘들었다. 

 어떻게 그 오르막길은 익숙해지지를 않는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도전 욕구를 불태우게 하는 녀석이었다. 

 

 꾸준히 오름에 오르면서 점점 몸이 더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남들 눈에 여전히 나는 고도비만 여성이었다. 

 이전에 초고도비만에서 고도비만으로 내려오는 것도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고, 나 자신은 하루하루 성취감에 뿌듯해하며 살고 있었지만 지나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타인의 눈에 나는 그래도 고도비만 여성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움츠러들었던 내가 더 이상 그 사실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던 건 오로지 '오름' 덕분이다. 

 타인들의 눈에 내가 여전히 고도비만이든 어떻든 간에 난 하루하루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누가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어머, 저 여자 좀 봐.'라고 하는 듯한 눈길을 건네도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마음속으로 '어쩌라고'를 외치며 나도 똑같이 상대방을 훑어봐줄 정도로 나 자신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넘쳐나고 있었던 그때, 다른 오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코스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심한 경사의 오르막과 100여 개가 넘는 계단을 매일 올랐으니 다른 오름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바로 그때 선택한 나의 두 번째 오름이 바로 금오름이다. 


 금오름은 비고 178m의 작은 오름이다. 

 비고 135m의 고내봉과 비교하면 조금 더 높은 정도인데 분화구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고내봉 보다 조금 더 높은 오름이라는 이유로 내 도전 욕구는 활활 타올랐다. 

 내친김에 바로 다음 날 아침 나는 금오름으로 향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오름을 향해 섰을 때, 너무 예쁜 모습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너무 예쁜 금오름의 모습에 반하여 파이팅을 외치며 오름 초입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오름에는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름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라는 것이 금오름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장점으로도 작용했다. 혼자 오름을 오르고 싶을 때는 아무래도 사람의 왕래가 많은 금오름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금오름을 등반하는 초입 부분은 나무들로 우거져있는 숲길이기 때문에 풀냄새, 나무 냄새가 향긋하다.

 게다가 늘 그늘이 져있는 곳이어서 여름에 가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문제는 그 숲길 코스가 끝나고 시작되는 시멘트길 코스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금오름 정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장비들을 싣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기에 오름 정상까지 시멘트를 깔아놓았다. 

 처음 금오름에 갔을 때 그 시멘트길을 보며 실망감이 들었다. 

 고내봉처럼 투박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오름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는데 정상까지 깔려있는 시멘트가 그런 날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숲길이 끝나고 시멘트길이 시작되기 시작하면 그늘이 없다. 경사는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등산하시는 분들이 흔히 말하는 '깔딱' 구간은 대체 언제 오려나 하면서 계속 올라가는데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역시!!!!

 몇 개월간 굉장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허벅지가 터질 뻔했던 그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다. 

 처음 금오름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내가 처음 뱉은 말은,


 뭐야? 벌써 끝이야? 


였다. 그런 나에게 금오름 분화구가 인사를 건넸다. 



 정말 멋진 분화구다. 

 백록담 등정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내가 백록담이 이런 모습일까 생각할 정도로 금오름 분화구는 너무 예뻤다. 

 경치도 좋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도 너무 좋았지만 정상에 올라오면서 슬슬 기분 좋게 오르던 몸의 열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이 영 개운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분화구에 내려가거나 분화구 앞에 서서 사진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 더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분화구의 둘레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분화구를 따라 걷다 보니 억새와 하늘이 이루는 조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정상에 도착하여 분화구를 관찰했을 때 분화구 둘레를 왼쪽으로 도는 것보다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조금 더 힘들 것 같아 보여서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의 경사가 고내봉의 경사와 조금 닮았기 때문이다. 

 

 금오름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분화구의 모습만 보고 하산을 한다. 

 난 꼭 분화구를 따라 오름을 한 바퀴 걸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분화구 둘레길은 숲길 구간도 있고, 탁 트인 구간도 있는데 정말 조용해서 내 발자국 소리와 산새 소리만 들려온다. 거기에 제주의 바람소리까지 더해지면 그만한 힐링이 없다. 


 금오름 정상에 처음 올랐던 그날, 난 나 자신을 더 믿게 되었다. 

 몇 개월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과 더불어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말이다. 

 주변에서는 자꾸 나에게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서 먹어보라, 위 절제술도 있다던데 의학의 도움을 받아봐라 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의학적인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그렇게 살이 쪘는데 어떻게 오름에 오르냐, 그러다 관절 망가진다, 나중에 다리 못쓰게 된다 등등.....


 주변의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했고 결과가 좋음에도 여전히 고도비만이었던 나는 그래도 오름에 오르는 것이 너무 좋았다. 

 무릎 통증? 처음 고내봉에 적응이 안 되었을 때만 느꼈을 뿐이다. 

 주말을 제외한 주 5일을 그렇게 오르니 나중에는 무릎의 통증보다 터질 것 같은 허벅지의 당김이 더 느껴졌다. 그 당김과 폐가 터질 듯 숨이 차올라 올 때면 뭔가 내가 지금 정말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고도비만인 나에게 온갖 간섭과 무시의 말이 쏟아져도 그걸 이겨내는 내면의 힘이 생겨났다. 

 처음에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 목표는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름에 오르는 그 행위 자체를 너무나 즐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오름을 오르면서 허벅지가 터질 듯 당기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걱정과 근심도 사라지는 걸 느낀다. 오히려 내가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힘들어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특히 금오름 정상에 올라 분화구 둘레길을 걷다 보면 금오름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뭘 그리 힘들어하느냐고 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 


 오름을 오르는 건 이제 나에게 있어 '다이어트' 그 이상의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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