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렸던 자식(자신) 책임지기

by 큐원

가정폭력이 있는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와 아들은 피해자였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피해자로, 약자로 있으며 아버지에게 복종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할 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지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아들은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 하루가 다르게 상처 입어 갔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있었다.

아들은 노력했으나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과 함께 살이갈 수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상처를 입는 것뿐이었다.

아들이 자신을 위해서 처음으로 낸 용기는 생을 끝내는 것이었다.

아들은 야산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삼킨 채로 의식을 잃고 발견되었다.

그때 어머니는 알게 되었다. 아들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고.

처음으로 남편이 두렵지 않았다.


겨우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남편은 복에 겨운 놈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남편의 멱살을 잡고 맞서 싸웠다.

결국 남편에게 심하게 맞았지만,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을 했고, 양육권을 가져갔다.


남편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삶은 고단했지만 폭력은 없었다.

그 속에서 어머니도 아들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깊은 상처였다.

아들의 마음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원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었던 엄마를 믿지 않았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조금이라도 간섭이 있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자, 숨겨왔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동안 밀린 마음의 숙제들이 밀려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자주 다투었다.

서로에게 화내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분노와 원망은 있어도, 폭력은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껏 싸웠다.

최소한의 안전 속에서 최소한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언제라도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들의 분노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슬픔이 찾아왔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자신을 내버려 두었냐고.

왜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냐고.

왜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냐고.

언제든 힘든 상황이 또 오면 자신을 또다시 버리지 않겠냐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아들의 상처를 직면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들을 진정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처음 마주하게 된 아들은 상처투성이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어머니는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미안했고,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었다.

아들과 함께 울던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는 버리지 않겠다고.

무슨 대가를 치르던 책임지겠다고.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그들은 애도했고, 위로했고, 약속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규칙보다 우선시되는 규칙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던 함께하기'


아버지는 가끔 어머니와 아들을 찾아와 깽판을 부렸지만,

어머니는 예전의 그 피해자가 아니었다.

맞을 각오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맞서 싸웠다.

그 서슬 퍼런 기세를 느낀 아버지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아들은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아버지가 이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도망치지 않고 용기를 냈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처음으로 보호자가 생겼다.

아들은 처음으로 집이 안전한 곳으로 느껴졌다.

집은 그에게 안락한 재활시설이 되었고,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았다.

언제라도 집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점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은 자신의 상처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었고, 어머니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언제든 기댈 수 있고 안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들의 슬픔은 줄어들었다.

아들은 이제 피해자이자 상처 입은 자로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들도 때로는 어머니의 보호자로서 함께했다.


그렇게 그들은 점차 하나가 되었다.

지금 그들은 아들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내가 되었다.

어느 때는 아이로, 어느 때는 어머니로서

나는 나에게 기대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때는 치고 박고 욕하며 싸우기도 한다.

그때 정했던 '어떤 규칙보다 우선시되는 규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무슨 일이 있던 나와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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