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야 반가워

by 큐원

안녕, 부모님

안녕, 형동생

안녕, 하나뿐인 친구

안녕, 아내

안녕, 직장 동료


너희들의 아들, 동생, 오빠, 친구, 남편, 직장동료는 이제 가려고 해.

나를 잃어가는 역할극은 이제 안녕.

그런 역할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순간들마저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대체할 거야.

그는 이름이 없어.

성별도 없고.

학력도 가족도 인격도 성격도 없어.

지지하는 당도 없지.


그는 널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거야.

네가 어떻게 숨 쉬는지, 어떤 눈빛을 보내고 있는지, 몸이 긴장해 있는지,

목소리가 떨리는지를 볼 거야.

그리고 네 속에 있는 이름 없는 누군가를 찾을 거야.


그것은 생물체와 생물체의 만남이 될 거야.

그들은 교양 없게 만나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거야.

그리고 아주 편안하고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쉴 거야.


그러니까, 안녕..

죽음의 역할극이여 안녕.

이제는 이별이야.


그리고, 안녕!

생물체야. 반가워.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

그렇지만 너와 함께 있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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