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식을 반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한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가장 많이 고생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충격받은 가족이, 하루 종일 감정노동하고 사진 옆에서 밤을 새우거나 딱딱한 바닥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것.
나는 이것이 다소 자학적이라고 느낀다.
내가 원하는 장례식은 이렇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은 가장 편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손난로를 쥐고 인형을 안고 있는다.
그러면 그의 친우들이 와서 그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따뜻한 핫초코를 건네는 것이다.
문상객들이 상주가 목이 마르면 물을 가져다주고, 배고프면 밥을 차려주고, 울면 휴지를 뽑아주는 것이다.
장례식의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는 것'에 있지 않고,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장례식은 내가 보기에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해서 벌을 서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큰 상실을 겪은 채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날을 3일이나 보낼 이유가 있는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평생 나를 못마땅하게 보셨던 분이고, 친밀감을 느껴보지도 않은, 남보다 못한 분이셨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주위에서 아주 참견이 많다.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 봬야 한다는 둥, 이제 미움과 원망은 털털 털어버리라는 둥...
결국 돌아가시자, 와서 문상객 맞을 준비를 하라고 성화다. 나와 할아버지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많이 고민하다가 집안 어른들께 말씀드렸다.
나를 장례식 보조 인력으로 보지 말라고.
난 못된 옛 직장상사의 부고를 들은 느낌일 뿐이라고.
나는 평생 할아버지를 분노하고 원망할 자유가 있다고.
사실 집안 어른들의 허락은 필요 없다. 난 이미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허용 속에서 감정도 녹아내릴 것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밉보이기 두려워서,
원망하는 할아버지 식장에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으면 내 안에서 뭔가가 죽어갈 것 같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면을 죽일 수는 없다.
난 결국 느지막이 장례식 둘째 날에 가서 하루 종일 형제자매친척들과 실컷 수다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새벽 3시이다. 날이 밝으면 사랑하는 아내품으로 가려고 한다.
(아내는 진작에 조의하고 바로 올려 보냈다.)
자학적인 장례식은 철수하라!
의무와 도리가 아닌, 사랑과 관심이 있는 장례식을 시행하라!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밤새며 먹는 육개장은 정말 맛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