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OPS 히터, 강견의 좌타거포 심재학
주식 시장에는 가지고 있는 가치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저평가 우량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스포츠 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로 스포츠의 스타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상품들이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 활동하거나 했던 스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상품으로서 하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은 이들이 평가받고 있는 가치가 결코 100% 성적 순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유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적 이외에도 외모, 성격, 경기에 임하는 자세, 그들의 폼 등으로 인해 제각각의 가치를 가진다.
반대로 이들을 지켜보며 가치를 평가하는 팬들 역시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인간'이다. 그렇기 떄문에, 본인이 기억하는 순간의 '임팩트'와 당시의 시대배경으로 인해 선수들의 실제 가치와는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본 글에서는 과거 KBO리그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중 안타깝게도 자신의 가치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들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처음 소개하는 선수는 LG와 현대, 두산, KIA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던 심재학 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다. 그는 굳이 야구를 좋아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스포츠뉴스 영상에서 스치듯 이름을 들어본 이가 더 많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다.
야구 팬 중에서는 당연히 그를 모르는 이를 찾기가 더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저평가된 선수를 소개하는 글의 취지에 어긋나는 선수가 아닐까?
하지만, 심재학을 기억하는 이들이 선뜻 떠올렸을 그의 별명만 생각해도 그는 충분히 저평가된 선수라는 것을 알 수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심재학을 기억할 때, '먹튀' 혹은 그의 이름을 좋지 않은 의도로 꼬아서 부른 '심죄악'이라는 별명으로 기억한다.
그는 정말 죄악과도 같은 선수일까? 그의 기록을 한번 살펴보자.
확실하게 그가 빛났던 순간은 2번째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옮긴 직후인 2001년 두산에서 보낸 시즌이다. 117경기에 출전해 0.344의 타율을 기록하며, 2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중심타자로 확실하게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좌타자인 심재학은 타이론 우즈, 김동주라는 무지막지한 두산의 우타거포들과 기록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중심타선을 위시한 타선의 위력을 앞세운 두산은 10승 투수 한 명 없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마 심재학을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아마도 2001년 당시 두산의 중심타자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심재학을 기억하기론 2001년에 유독 잘했던 선수, 커리어내내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다가 2001년에 반짝한 '원히트 원더' 로 기억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심재학은 2001년만큼의 타격을 보여준 시즌은 단 한번도 없다. 2001년 기록인 24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시즌도 없었으며, 3할을 기록한 것 역시 0.344의 고타율을 보여준 2001년이 유일하다. 커리어내내 한 방은 있지만 3할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공갈포' 이미지가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는 KBO 은퇴선수 기록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타율과 홈런 안타 타점 등의 누적기록뿐이기 때문이다. 누적기록만으로는 심재학의 가치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심재학의 진짜 가치는 그의 출루율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려대 시절부터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명성을 날리며 LG에 입단했던 심재학은 기대치에 밑도는 활약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심재학은 매 시즌 타율보다 평균적으로 1할 정도가 높은 출루율을 보였다. 보통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1할에 가까우면 타율 대비 매우 생산성이 높은 타자로 평가받는다. 심재학은 신인 시절부터 출루율에 있어서는 좋은 생산력을 보인 셈이다.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꾸준하게 적은 갯수의 삼진을 기록하고 그이상의 사사구를 얻었다. 두 자릿수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는 거포 유형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렇게 커리어 내내 좋은 '눈야구' 실력을 보인 심재학의 통산 출루율은 0.378이다. 단순하게 지난 시즌 KBO리그에서 LG의 이천웅이 0.378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리그 18위에 올랐다. 심재학은 커리어내내 LG의 톱타자 이천웅의 커리어하이와 같은 출루율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다.
장타력 역시 재평가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심재학은 183cm의 신장과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를 가진 탓에 입단 당시부터 차세대 거포로 주목을 받았지만, 기대만큼의 장타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커리어 최다 홈런도 2001년의 24홈런이 전부였고, 거포의 상징인 30홈런이나 홈런왕에는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뛰었던 구장이 드넓은 잠실야구장임을 감안해야 한다. 심재학은 LG와 두산에서 총 8시즌을 잠실야구장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더군다나 대졸로 프로에 입문한 그는 신체 능력이 가장 왕성한 20대 시기를 모조리 잠실야구장에서 보내고 말았다. 지금도 잠실야구장이라고 하면, 드넓은 크기 탓에 야구판에서는 투수 친화적 야구장 혹은 타자들의 악몽으로 불리는 곳이다. 과거에는 더욱 심했다. 잠실야구장을 제외하면 인천, 대구, 대전, 전주 등 대부분의 야구장의 크기가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은 편에 속하는 사직야구장이 당시에는 큰 축에 속할 정도다. 심재학은 그런 와중에도 96년에 18개의 홈런 중 14개를 잠실에서 기록하며 당시 기준 한 시즌 잠실야구장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타율만 낮을 뿐 좋은 선구안으로 인한 출루 능력과 펀치력을 지닌 높은 생산력이 기대되는 타자인 심재학이었지만 타율과 홈런 갯수를 중요시하던 시대상 탓에 저평가를 받아버린 비운의 선수가 되고 만 것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방송인 김구라가 과거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에 심재학에 대한 '썰'을 푼 기억이 있다.
기억을 빌려 김구라의 말을 전하자면 이렇다.
"아니, 심재학이가 팬한테 포X쉐를 받았대. 글쎄. 미친거지. XX, 심재학이가 뭘 잘한다고 포르쉐를 줘? 올해나 좀 한거지.(아마 시기상 2001년으로 추정된다.) 예전에는 4번타자가 2할 7푼치고 홈런 열 몇개 치는 XX는 그 XX밖에 없어!"
물론, 방송의 성격상 재미를 주기 위해 과장한 부분은 있었겠지만, 어쨌든 김구라는 심재학의 팬이 그에게 외제차를 선물했다는 '썰'을 듣고 이같이 일갈했다. 육두문자가 섞이기는 했지만, 김구라의 의견은 당시 타율과 홈런 갯수를 매우 중시하던 90년대 야구판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거친 입담이지만 김구라는 남을 까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배경지식을 조사하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만일 타율은 운이 크게 좌우되는 기록이고 높은 출루율을 통해 타자의 가치를 새롭게 산출하는 현재의 기준이 당시 야구판에도 적용됐다면, 김구라는 저런 멘트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방송의 성격상 다른 부분으로 음해를 했겠지만...
심재학의 저평가는 그의 투수 전향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재학은 99년 시즌을 앞두고 투수로 깜짝 전향을 한 기억이 있다. 당시 천보성 LG 감독은 좌완에 강견인 심재학을 부족한 투수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결과가 말해주듯 어처구니 없는 계획이었다. 심재학이 아마추어 시절부터 강견의 외야수로 소문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외야수로 송구 능력이 좋을뿐 투수를 제대로 해본 선수가 아니었다. 또, 아무리 투수로 가능성이 있다고 한들 심재학은 당시에 이미 두 자릿수 홈런과 높은 출루율이 보장되던 타자였다. 아마 지금 이런 선수를 투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향을 시킨다고 하면 해당 팀의 팬덤은 불이 날 것이다.
심재학이 저평가를 받은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그가 가장 돋보였던 부분을 크게 쳐주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 배경 때문이다. 당시 프로야구 팀에 어느 코치가 출루율에 대한 가치를 일찍이 깨닫고 감독에게 조언해도 이정도의 대화로 끝났을 것이다.
"감독님, A 선수의 출루율이 0.370 정도로 좋으니 비어있는 1번 타자로 기용해보심이 어떨지요?"
"김코치, 자네 정신이 있어? A 그놈 타율이 얼마인지나 알아?"
"아, 타율은 0.250으로 좀 낮아도 이 친구는 볼넷을 많이 얻어서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습니다. 더군다나 타율이 오르게 되면, 출루율은 더..."
"아니, 자네 그 놈한테 돈이라도 받았나? 2할 5푼 짜리를 세상에 1번에 쓰자는게 말이 돼? 더군다나 걔 발도 느리다고! 그만하고 저리 가있게."
심재학은 다시 생각해보면, 낮은 타율에도 높은 출루율과 장타율을 보장하는 원조 OPS 히터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대가 맞지 않아 그 정도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현재, 심재학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히어로즈 코치를 거쳐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으로 친근하게 야구 팬들에게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