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만남
벽돌탑의 도깨비 - 21 <심야의 만남>
돌이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고문을 당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혼자 목수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누군가에게 부탁했을 때의 위험성도 돌이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목수가 사람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나있으니 부탁을 하면 분명 탈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음을 정한 돌이어머니는 방문을 열었다. 마침 마당에서 문상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풍산아재가 보였다. 풍산아재라면 적어도 함께 목수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집에서 말을 꺼낸 후 거절을 당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다른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어야했다.
“풍산아재 저 좀 봐요.”라고 풍산아재를 부르자 문상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풍산아재가 마당에서 축담위로 올라와 댓돌에 한쪽 발을 걸치고 방안의 돌이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같이 당골네 좀 갔다 와요. 돌이아버지 굿을 좀 부탁해야겠어요.”
“이 밤에요? 몸도 안 좋으신데……. 날 밝으면 같이 가시죠?”
“급해서 그래요. 내일 당장 굿을 해야 한다고 해서…….”
풍산아재도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돌이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돌이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며칠 전 돌이아버지가 쌓아놓은 장작더미 옆에 세워져있던 지게작대기를 들고 나왔다. 고문으로 인해 혼자 걷기 힘들었기에 지게작대기를 지팡이로 쓰며 마당을 가로질러 사립문을 나섰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풍산아재는 등불을 들고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었지만 돌이어머니와 풍산아재 사이에 오고간 대화는 풍산아재가 돌이어머니에게 걸을만하냐고 물은 것뿐이었다. 당골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돌이어머니가 풍산아재를 불러 세웠다.
“잠시 목수한테 들렀다갑시다. 목수한테도 급히 부탁할 것이 있어요.”
풍산아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한 후 방향을 바꿔 목수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출발할 때 돌이어머니가 풍산아재에게 목수집으로 가자고 했으면 풍산아재는 쉽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에 무당인 당골네가 다녀갔으며 돌이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대충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장섰던 것이다. 관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이때에 돌이어머니와 밤길을 간다는 것도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계획에 없던 목수의 집으로 간다는 것은 더욱 탐탁치 않았지만 이미 당골네 가는 갈림길까지 와서 목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니 꺼림직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바꿨다. 둘은 비탈길을 한참 걸어올라 산 아래로 돌아가자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이 비치는 곳에는 외딴집 한 채가 어둠속에 홀로 있었다. 점점 다가가니 마당에 한 사내가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십니까?”풍산아재가 집 싸리나무 담 밖에서 묻자,
“네. 뉘시오?”라고 마당 안에서 사내가 대답을 하였다.
뺑이는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틀 전 내린 비 때문에 마당은 질퍽질퍽하고 개 발자국과 새 발자국만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사립문에서 축담(기단)까지는 평평한 돌로 징검다리가 이어져있었다. 이런 날 새신을 신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새신의 바깥 면만 진흙이 묻는 것이 아니라 안까지 버리게 된다. 새신을 신고 질퍽거리는 마당에서 걸음을 걸어보면 마당 흙이 신을 꽉 잡아 놓아주질 않는다. 분명 신을 신고 내딛었는데 다음 걸음은 맨발이 되고 만다. 맨발 발가락 사이로 이내 진흙이 꼬물거리며 미끄덩 미끄러져 발가락 사이로 쏘옥 빠져 올라온다. 발바닥전체와 발가락사이사이에 진흙이 묻는다. 다시 신을 신으면 신이 더러워져 버리고 다음 걸음을 걸으면 묘한 미끄덩거림이 계속된다. 신이 조금 클 때는 걸음을 때면 두말 할 것 없이 맨발이 된다. 다시 신을 신으려면 발에 붙은 진흙을 때어내기 위해 발을 씻고 다시 신어야한다.
올 봄에 아버지가 마당에 황토를 옮겨와 깔아놓을 때 일이 생각났다. 그날 동네 아이들과 산에서 나무를 잘라 칼을 만들어 옆 동네 아이들과 칼싸움을 했다. 신나게 “동군이여”, “서군이여”를 외치고 또는 “우리는 신라군이다.”, “우린 백제군이다.”라고 외치며 들판을 가로지르며 몰려다녔다. 쫓고 쫓기다가 한 번씩 맞붙어 칼싸움하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패하면 패한 쪽은 다시 모여서 “우리는 고구려군이다.”라고 외치며 다시 칼싸움을 했다. 뺑이는 칼싸움을 무척 잘한다. 다른 아이들 보다 움직임이 빨라서 제일먼저 아이들의 몸에 나무로 만든 칼이 도달한다. 주로 다른 아이들은 목검과 목검이 서로 부딪치는 것에 재미를 느껴 그것을 반복하는 데에 비해 뺑이는 실재로 아이들의 몸을 노렸다. 상대편이 밀어붙이자 뺑이는 혼자 가장 후방에 남아서 상대편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했다. 뺑이가 버티자 도망친 뺑이네편 아이들은 쟁기로 뒤집어 놓은 밭에서 흙덩이를 주어 상대편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흙덩이 싸움이다. 상대편도 밭으로 뛰어들어 흙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밭을 가운데 두고 밭고랑에 몸을 숨겨가며 밭에서 흙덩이를 옮겨와 눈싸움 하듯이 흙덩이를 던졌다. 흙덩이는 몸이나 머리에 맞아도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간혹 안쪽에 돌맹이가 들어있는 흙덩이를 맞으면 엄청 아프다. 하필이면 돌맹이가 들어가 있는 녀석이 뺑이의 이마에 부딪쳤다. 순간 머리에서 “딱”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띠잉’한 느낌과 함께 머리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주위에서 아이들이 뛰어와 괜찮냐고 물어왔다. 이마를 만진 손에는 붉은 피가 꽤 묻어있었다. 이로써 칼싸움으로 시작해 흙덩이 던지기까지의 재미났던 놀이도 끝났다. 뺑이는 친구가 주워준 커다란 오동나무 잎으로 상처를 지혈했다. 그 상태로 집에 도착하자 마당 한 쪽에 황토가 잔뜩 쌓여있었고 아버지는 황토를 마당에 깔고 있었다. 뺑이의 모습을 보고 놀란 아버지가 물었다.
“뺑이야 괜찮냐?” 아버지가 물어오자 울지 않으려던 뺑이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뺑이 이마의 오동나무 잎을 치우고 상처를 봤다. 피는 많이 났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상처에 박혀있는 작은 흙부스러기와 돌맹이를 때어냈다. 그리고 방안에서 오징어 뼈를 들고 나와 칼로 그 뼈를 갈아 상처 위에 뿌려주었다. 뺑이는 자기 상처에 뿌려지는 흰 가루가 신기해
“아베요! 이게 뭐에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지혈되는 것을 보며
“오징어 뼈야. 이걸 갈아서 뿌리면 지혈이 빨리되고 빨리 낫는단다.”
“아베요! 오징어를 먹어보면 분명히 뼈가 없는데 이건 뭐지요?”
“갑오징어 뼈란다. 갑오징어는 뼈가 있어. 앞으론 조심해서 놀아라.”
응급처치가 끝나자 뺑이는 툇마루에 앉았다. 호기심이 많은 뺑이는 마당에 황토를 깔고 있는 아버지에게
“왜? 황토를 마당에 까는 거예요?”
“음~. 황토를 이렇게 깔아놓으면 여름에 더 시원하고 가을에 타작할 때 좋단다.”
“네?” 뺑이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황토를 앞마당에 깔아놓으면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마당이 엄청 뜨거워진단다. 뜨거워진 앞마당의 공기는 위로 올라가지 그럼 앞마당에 공기가 많겠니? 적겠니?”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공기가 적겠죠.”
“그럼 우리 뒷마당에 자두나무랑 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아래는 여름에 덥니? 시원하니?”
“히히히 시원하죠.”
“자 그럼 그 찬 공기는 위로 올라가니 아래로 내려가니?”
“히히히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죠.”
“그래 좋다. 그럼 아래의 찬 공기는 공기가 많을까? 적을까?
“따뜻한 공기는 하늘로 가니 도망갈 곳이 많지만 찬 공기는 아래로 도망갈 곳이 없으니 많지 않을까요?”
“그래 뒷마당 나무아래에는 찬 공기가 많이 모여 있겠지.”라고 말하며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은 산 밑에 지어져 뒷마당이 높고 앞마당이 낮단다. 그럼 앞마당이 뜨거워져 공기가 위로가면 뒤마당과 산에 있는 찬바람은 아래로 가려는 성질과 공기가 적은 곳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마루 안쪽 창문을 가르치며
“저 마루 뒤쪽 문을 열면 그 찬바람이 어디로 가겠니?”
“그거야 이 앞마당으로 불어오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 집이 여름에 시원한 것이란다.”
“아~~.”
신기한 나머지 뺑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황토는 물을 뿌리면 어떻게 되지?”
“질퍽질퍽 해지죠.”
“그래 질퍽해지지. 그럼 덩어리진 채로 마르면 어떻게 되니?”
“그야, 돌덩어리 같이 딱딱해지죠.”
“이렇게 황토를 깔아두면 장마철에는 아주 질퍽해지지만 가을 타작할 때는 마당이 아주 딱딱해져서 타작을 마친 뒤에 빗자루로 낱알을 쓸어 모으면 곡식의 낱알을 잃어버릴 일이 없단다. 알겠니?”
“우와 신기해요!”
뺑이는 툇마루에 앉아 비 때문에 질퍽해진 마당을 바라보며 봄날의 아버지 설명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 마당 한쪽에 있는 개똥을 발견했다. 순간 할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똥을 보고 저승사자가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 때
“뺑이야 노올자~.”라는 목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또래 동네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래”라고 대답하고 짚신을 발에 대충 끼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징검다리 같이 깔려 있는 평평한 돌을 밟아야하는데 급한 나머지 그만 진흙을 밟아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의 흙을 밟자마자 신발이 빠져 다음 걸음은 맨발이 되었다.
“아이씨”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진흙 묻은 신을 손에 쥐고 사립문 밖으로 나섰다.
“뭐하고 놀게?”라고 친구들에게 물으니
“오늘 상여 나간데, 거기 가면 먹을 것도 얻어먹을 수 있고 재밌을 거야.”
“어느 집에 초상났니? 누가 죽었어?” 뺑이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왜? 며칠 전 관아에 도깨비가 나타나서 사람을 죽었잖아. 그 집이야.”
“그 집이 어딘데? 멀지 않니?”
“우리 고모네 동네야. 그 동네는 내가 잘 알아. 한 십리정도 걸으면 돼.” 얼굴에 버짐이 피어있는 태복이가 자신 있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거기 가서 놀자.”
녀석들의 눈에서 장난끼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