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22

저승으로 안내하는 탈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22 <저승으로 안내하는 탈>




숲을 지나자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발아래로 비탈길을 따라 멀리까지 들판이 펼쳐져있고 그 가운데 논둑길을 따라 상여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다.”


뺑이가 외치자 아이들은 산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초라한 상여행렬이었지만 아이들은 행렬 꼬리에 따라가 붙었다. 행렬 앞쪽에서는 상여꾼들의 상여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논둑길이어서 앞쪽을 보고 싶어도 큰길이 나올 때까지 마냥 뒤에서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뺑이의 친구 가운데 한 녀석이 상여소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뺑이와 나머지 친구들은 상여소리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키득거렸다. 바람이 불면 손으로 쓰다듬고 가듯이 행렬 옆 논에서는 푸른 벼들이 일렁거렸다.


뺑이가 있는 곳에서도 행렬 앞쪽의 화려한 색으로 칠해져있는 상여가 보였고 그 너머로 만장이 보였다. 뺑이는 만장에 쓰여 있는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글을 배우고 있지만 만장에는 아직 모르는 글자가 꽤 있었다.


‘지난번 참판댁 상여행렬에는 만장이 참 많았는데…….’


뺑이와 친구들은 나름 재미있었지만 여느 상여행렬보다 이 상여행렬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다. 지난번 참판댁 초상에서의 재밌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뺑이에게는 특히 이번 상여행렬이 초라해 보였다. 참판댁 초상은 먹을 것도 넘쳐났고 사람도 무척 많았다. 또래 아이들도 많아서 먹고 뛰어놀기 참 좋았다. 상여가 나갈 때도 상여꾼들과 상주 사이에 주고받는 흥정 같은 것이 몇 번이고 이어졌었던 기억이 있었다. 상여소리꾼의 소리도 그땐 참 구성지고 장례 행렬이 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상여소리에 멍하니 이끌려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이번 행렬에는 참판댁 초상 때나 여느 때와는 달리 규모도 작고 장난치며 상여행렬을 따르는 동네 아이들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뺑이는 행렬 앞쪽 만장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행렬은 논둑을 따라 난 길이 벗어나 강변에 접어들었다. 이제 강을 건너갈 모양이다. 뺑이는 친구들에게 턱으로 신호를 하고는 앞쪽으로 뛰어나갔다. 녀석들은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가로질러 강으로 앞 다투어 뛰었다.


강가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섶다리가 강 건너편까지 놓여있었다. 섶다리는 Y자형 나무를 다리의 기둥으로 사용한다. Y자형 기둥을 강 이쪽에서 반대쪽까지 강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놓고 그 위에 길게 다른 나무를 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뿌리에 흙이 잔뜩 붙어있는 잡초를 올리고 꾹꾹 눌러준다. 그 위에 한 번 더 흙을 깔면 섶다리가 완성이 된다. 만들기 쉬운 만큼 견고하지 못해 간혹 다리에서 사람이 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여름철에 홍수가 나면 언제 있었냐는 식으로 떠내려 가버린다. 그때가 농사일로 주민들이 바쁘면 한동안 다리 없이 멀리 돌아서 여울목으로 강을 건너다니다가 농부들이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여럿이 모여서 다리를 놓았다. 간혹 높은 분들의 행차 때에는 다리가 무너질까하는 걱정에 농부들을 불러 다리의 기둥을 잡게 하고 건너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섶다리를 건너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왜냐하면 상여는 시신을 보호하는 관을 싣고 가기 때문에 앞뒤로 길쭉하고 상여꾼들은 양옆에서 어깨로 상여를 멜 수 있게 되어 있어 보통 각각 한쪽에 두 명씩 상여를 메며 양쪽이면 네 명이서 상여를 메게 된다. 그렇게 네 명씩 앞뒤로 쭉 늘어서서 마치 지네같이 이동을 하는데 그런 식으로 섶다리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널 때의 상여를 멘 상여꾼들의 모양이 역삼각형을 이루니 아이들에게는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상여행렬이 좁은 섶다리를 건널 때와 가파른 산을 올라갈 때가 아이들에게는 무척 신기한 구경꺼리이며 이야기꺼리이다.


뺑이가 무리의 선두로 사람들을 앞질러 상여의 뒤쪽을 지날 때 상여 뒤를 따르는 상주를 보았다. 상주가 신기하게도 아주머니 한명이었다.


‘보통 상주는 남자가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뺑이는 상여 앞쪽으로 달려갔다. 뺑이의 친구 몇은 상여가 섶다리로 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섶다리 아래 강가에 쪼그리고 앉았고 뺑이와 나머지는 상여를 추월하여 만장행렬과 함께 섶다리 올라갈 생각이었다. 만장행렬이 길게 한 줄로 섶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 섶다리는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새치기를 하여 뺑이 일행이 급하게 섶다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상여가 섶다리에 위태롭게 올라오자 잠시 상여는 멈추고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아직 제대로 섶다리에 올라서지 못한 상여꾼들이 서로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세를 잡으려고 했다. 섶다리에는 한 줄로 쭉 올라간 만장행렬 때문에 출렁거림이 이어졌다. 만장이 다리의 일정부분까지 건너면 상여가 섶다리로 진입 할 것 같았다.


뺑이는 다리의 출렁거림에 익숙해질 무렵 뒤를 돌아봤다. 순간 뺑이의 입에서


“으악~!”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뺑이는 강물로 떨어졌다. 곧 풍덩 소리와 함께 강물이 튀어 올랐다. 뺑이 바로 뒤에 따라온 것은 거대한 방상시탈이었다. 눈이 네 개 달린 큰 탈이 자신의 바로 뒤에 따라 오는지 몰랐기 때문에 놀란 나머지 섶다리에서 떨어졌다. 방상시탈은 원래 사방을 모두 다 볼 수 있다하여 눈이 네 개 달린 탈로 알려져 있으며 궁중이나 장례 때 악귀를 쫓아준다고 알려져 예로부터 상여행렬의 가장 앞에 서서 죽은 자의 마지막 길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반 탈춤에 쓰이는 탈보다 크기가 크며 죽은 자의 신분에 따라 그 크기와 재료가 달라졌다. 주로 장례행렬 가장 선두에서 수레에 싣고 이동하며 묘 터의 악귀를 퇴치하고 저승길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탈이다.


“뺑이야!” 앞서 가던 친구가 풍덩 소리를 듣고 외쳤지만 물속으로 떨어진 뺑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뒤 이어 물에 빠진 뺑이를 찾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도깨비는 나무위에서 돌이 어머니가 목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었다. 돌이 어머니가 목수에게 탈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목수는 풍산아재를 불러 손가락으로 마당 구석 거적때기에 덮여있는 것을 가리켰다. 사람 키보다 큰 커다란 물건이 거적때기에 덮여 지게위에 묶여있었다.


“저걸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돌이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풍산아재는 지게를 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생각만큼 지게가 무겁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대문 앞에서 목수와 인사를 나눴다. 목수가 좀 전에 두 사람이 온 것과 다른 길을 손가락으로 알려주었다. 돌이어머니가 앞에서 등을 들고 풍산아재가 뒤에서 지게를 진채 넓은 길로 내려갔다. 도깨비는 목수의 정체가 신기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탁하던 것을 목수에게 대신하게 된 것도 이상하다 생각했으며 지난번 만났을 때 목수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도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도깨비가 저녁에 돌이 어머니에게 몰래 탈을 만들라고 일렀는데 벌써 돌이 어머니가 올 것을 알고 집 마당에 기다린 것도 수상하며 이미 탈을 만들어서 지게에 올려놓은 것도 수상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돌이 어머니의 불빛이 안보이자 목수는 몸을 돌려 도깨비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도깨비는 흠칫 놀라 몸을 숨겨 나무 아래로 들키지 않게 내려왔다.


‘내가 지켜보는 것을 들킨 걸까? 대체 녀석의 정체는 뭐냐? 평범한 목수가 아닌 것 같은데.’ 도깨비는 계속 목수에게 신경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나무아래의 돌이를 데리고 돌이 어머니 일행이 움직인 방향으로 따라 가야했기 때문이다. 돌이 어머니가 풍산아재에게


“많이 무겁죠?”라고 묻자


“무겁긴 하지만 생각보다 가볍네요.”라는 답이 풍산아재에게서 돌아왔다.


돌이 어머니가


“당골네까지 못 갈 것 같으니 그냥 집으로 가죠.”라고 하니 풍산아재는 무거운 지게를 지고 당골네 갔다가 다시 돌이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걸음이 가벼웠지만 이상하게 계속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어머니가 조금만 앞쪽에 가도 으스스한 느낌에 종종 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둘은 집 마당에 있는 수레에 거적때기로 덮여있는 탈을 옮겨 싣고 혹시 누가 보지 못하도록 새끼줄로 다시 꽁꽁 묶었다. 뒷산에서 도깨비와 돌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 방해꾼이 끼어들면 돌이 아버지를 다시 살릴 기회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날이 밝아 상여가 나갈 때까지는 지켜봐야했다.


날이 밝아오자 상여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가지고 돌이네 집으로 왔다. 관을 옮겨 상여에 놓고 어깨에 멜 끈을 조정하느라 동네사람들이 분주하다. 초상집의 마지막 아침밥이 나왔다. 상여꾼들은 먼저 들마루와 멍석에 나눠 앉아서 든든히 밥을 먹었다. 풍산아재도 멍석에 앉아 밥을 국에 말아놓고 한술 뜨는데 돌이 어머니가 잠시 불러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상에 놓고 안방 문 앞으로 갔다. 그사이 어느 누구도 모르게 작은 발자국이 마당에 작게 흔적을 만들어갔다. 도깨비감투를 쓴 돌이의 걸음은 풍산아재의 국 그릇 앞에서 멈췄고 잠시 후 공중에서 똑똑 거리며 두 방울의 약이 국그릇으로 떨어졌다. 풍산아재는 돌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로 돌아오다가 들마루 모서리에 다리를 쿵하고 부딪쳤다.


“으~~아, 아, 아” 한쪽 손을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 무척 아파 보여 인상을 찌푸렸다. 쩔뚝거리며 자리로 돌아와 아픈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아놓은 밥을 든든히 먹고 난 후, 마당의 수레를 밀어 대문 밖에 자리를 잡아 놓았다. 풍산아재는 오늘, 수레 담당이다. 아침 일찍 뒷산에서 나무를 잘라 만든 칼과 방패도 수레에 실어놓았다. 방상시탈이 작을 때는 사람이 직접 탈을 쓰고 칼과 방패를 들고 간간 휘두르면서 상여행렬을 앞장서지만 이번에는 탈이 너무 커서 칼과 방패를 수레에 실어만 놓는 것이다. 풍산아재는 나무칼을 몇 번 붕붕 소리 나게 휘둘러보고 수레에 실어 두고 나서 상여꾼들의 어깨끈 길이를 맞추는 것을 봐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좀 전에 상 모서리에 부딪친 것이 생각보다 많이 아팠지만 차마 부끄러워 아픈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가 살살 아파왔다. ‘내가 뭘 잘 못 먹었나?’라고 생각하며 풍산아재는 배를 잡고 집 뒤쪽으로 쩔뚝거리며 걸어갔다. 잠시 후 상여꾼들이 상여를 들어 올리고 어깨끈을 어깨에 멨다. 상여 뒤에서는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돌이 아버지의 시체가 실려 있는 상여가 집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상여앞에는 소리꾼이 종을 흔들며 상여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방상시탈이 실려 있는 수레와 만장이 앞장을 서고 상여도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방상시탈을 미는 사내는 규칙적으로 수레를 앞으로 밀어갔다. 수레를 밀고 있는 사내는 귀를 솜으로 막고 있었다. 풍산아재는 곡소리, 종소리, 상여소리가 들었지만 집 뒤쪽 변소에서 배를 잡고 쪼그려 앉아 끝없이 볼일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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