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20

다시 찾은 집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20 <다시 찾은 집>



돌이어머니가 최면향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지자 도깨비는 문을 열고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돌이야 내가 너희 어머니 꿈속으로 들어갔다 올테니 방 문고리를 잠그고 잠시 여기를 지켜다오.”


라고 도깨비는 돌이에게 부탁을 했다. 고문으로 쇠약해진 돌이 어머니를 이불에 눕혔다. 그리고 도깨비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붉은 색 끈을 꺼내 돌이 어머니의 손목에 그 끈의 한쪽 끝을 묶고 나머지 한쪽 끝을 잡아 팽팽하게 당겼다. 그리고 정신집중을 하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돌이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하지만 흐느낄 여유도 없었다. 도깨비가 시킨 대로 다른 사람이 방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문고리를 잠그고 방 밖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눈물을 훔쳤다.




“돌이 어머니! 돌이 어머니!”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다잡자 앞에 사람의 형체가 다가왔다. 사람인 것은 같은데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선한 사람의 느낌이 들었다.


“돌이 어머니 정신 차리시고 제 말을 잘 듣고 대답을 해주세요. 돌아 아버지 시신이 어디 있죠?”


라는 물음이 다시 돌이 어머니에게 들려왔다. 돌이 어머니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대답했다.


“마루, 병풍 뒤, 관에 있어요.”


“돌이 어머니 무당이 뭐라고 하던가요?”


라고 도깨비는 자신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무당이 돌이 어머니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고 물음이 끝나자 돌이 어머니는 다시 한곳으로 정신을 모아 말을 이었다. 도깨비는 무당이 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돌이는 무사하니 걱정하지마세요. 조만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라고 말했다. 돌이 어머니는 최면향의 영향으로 또렷한 정신은 아니지만 흐릿하게 느껴지는 사람의 형태가 하는 말을 명확히 인식했다. 자신에게 나타난 형체가 돌이가 아닌 것은 알았으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님도 알 수 있었다.


마당에는 등이 환하게 켜져 있고 동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기우리며 이서방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관아에서 있었던 일을 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사이라서 문상을 온 것이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늘 동네에선 초상이 나면 서로 도왔으므로 문상을 하고 초상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엔 좀 꺼림칙한 부분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아에 끌려갔고 그 가운데에는 고문당한 사람도 있었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아직 뭔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며 또 상주인 돌이도 도깨비에게 끌려가버렸기 때문에 문상하러 오는 것도 꺼림칙하고 오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한동네 살고 있는 사이라 조심스럽게 모두 모여들어서 상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돌아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두 입조심을 하고 있다. 사람 좋은 이서방이 죽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며 돌이 외할머니와 돌이 어머니만 놔둘 만큼 지역 인심이 야박하지 않았다.


돌이는 방안에서 바깥 상황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도깨비는 혼자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고 돌이 어머니는 감긴 눈의 눈동자가 눈꺼풀 안쪽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돌이가 문밖을 감시하다 고개를 돌려 도깨비 쪽을 돌아보는 순간 도깨비와 돌이 어머니를 연결하고 있던 붉은 끈이 느슨해졌다. 그리고 곧 도깨비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돌이야 너희 아버지를 살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잠시 방에서 기다려라.”라고 말하고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서 검은 물체를 꺼냈다. 돌이에게는 낯익은 물건이었다. 관아에서 뚱뚱한 사내에게서 빼앗으면서 그 능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돌이가 예전에 외할머니한테서 듣던 바로 도깨비 감투가 그것이었다. 도깨비가 감투를 머리에 쓰자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루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닫혔다. 도깨비는 병풍 뒤로 몰래 돌아가 관을 열어 시신을 확인했다. 이서방의 시신은 염을 했지만 고문 흔적과 화살을 맞은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온몸에 핏기와 생기가 아직 느껴졌다. 도깨비는 이서방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잘라 주머니에 넣었다. 방으로 돌아온 도깨비가 감투를 벗자 낮은 천장 때문에 구부정히 서있는 도깨비의 모습과 함께 구부정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이야 이만 가자. 할 일이 많다. 먼저 나가 있어라.”


라고 도깨비는 말을 던지고 뒷마당으로 난 문을 열고 돌이에게 먼저 나가라고 눈짓을 했다. 마당에서 술을 마시던 풍산아재는 방안에서 움직이는 큰 그림자를 보고 이상해서 몸을 일으켜 방 쪽으로 향했다. 돌이가 홀로 누워있는 어머니를 잠시 쳐다보고 방밖으로 나가는 순간 방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돌이 어매~ 돌이 어매~”


풍산아재가 방안에서 움직이는 수상한 그림자 때문에 걱정이 되어 문밖에서 돌이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혼자 있는 방의 문을 불쑥 열어 볼 수 없는 노릇이니……. 부르는 소리가 끝나는 순간 방안에서 큰 그림자가 휙 하고 움직였다. 풍산아재는 이상하다 싶어서


“방안에 누구냐?”


라고 소리를 쳤다. 대답이 없자 동네 아낙이


“돌이 어매~”


하며 돌이 어머니를 부르며 문을 열어봤다. 방 가운데에는 불이 일렁이며 방을 밝히고 있고 아랫목에 돌이 어머니가 누워 자다가 눈을 떴다.


“무슨일이에요?”


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키자 마당에 서있던 풍산아재가


“방안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일렁거려서…….”


라며 말꼬리를 흐린 후 괜찮은지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돌이 어머니는 별일 없다고 이야기 한 후 방금 전에 꾼 꿈이 기억났다. 누군가가 자신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걸었던 것과 돌이가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리고 잠자는 동안 이 방에 자신 이외에 두 명의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해냈다. 마당 쪽 방문에 돌이가 앉아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있어 돌이 어머니는 아픈 몸을 움직여 방문 쪽 방바닥에 손을 가져가보았다.


‘방바닥이 따뜻하다. 돌이가 왔다간 것이 분명하다. 돌이가 무사하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방문 밖 아낙이


“돌이 어매 괜찮아요?”


“돌이가 왔다 갔어요!”


라고 돌이 어머니는 조용히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순간 방문의 아낙이


“돌이 어매 방바닥에 저게 뭐에요?”


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돌이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종이가 놓여있었다. 종이를 들어 펴보자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백지였다. 그런데 붓글씨가 써지듯이 글자가 한자 한자 생겨나기 시작했다.


‘돌이 아버지의 목숨이 달려 있소. 목수를 찾아가 오리나무로 사람의 키보다 큰 장군 탈을 만드시오. 상여가 나가기 전까지 완성해야하오. 탈을 만드는 것을 누구도 봐서는 안되며 탈이 완성되면 아무도 못 보도록 천으로 싸서 수레에 실은 채 집 마당 밖에 세워두시오.’


풍산아재는 문 옆에 서있는 까막눈 아낙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축담으로 뛰어올라 문으로 다가가 방안을 훔쳐봤지만 이미 글이 저절로 써진 종이를 돌이 어머니가 접은 뒤였다.

매거진의 이전글벽돌탑의 도깨비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