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
벽돌탑의 도깨비 - 19 <죽은 자와 산 자>
아이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뺑아?”
“예! 할아버지”
“예전에 말이다. 아주 착하고 성실한 두 형제가 살았단다. 두 형제는 착하고 성실한 것으로 고을 전체에 이름이 나있었어. 그런데 착한 형과 동생의 차이가 있었단다. 형제가 다른 집에 가서 일을 할 때면 형은 어디에서 밥을 주던 밥을 감사히 잘 먹었어. 일이 바쁜 날에는 마당에 있는 멍석에 상을 펴고 밥을 주면 그곳에서도 밥을 맛있게 먹고 마루 끝에 밥상을 차려주면 마루에 걸터앉아서 먹기도 했어. 하지만 동생은 방이 아닌 곳에 차려주는 밥을 절대로 먹지를 않았단다. 사람들은 동생이 참 착하고 성실하지만 밥 먹는 것은 아주 별나다고 이야기를 했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둘은 혼례를 치루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지. 자! 뺑이야, 이 형과 동생 가운데 누가 성공했을까?”
“마음씨 착한 형이겠죠?”
뺑이에 대답에 박노인은 손을 들어 흔들며
“아니란다. 동생이 성공을 했어.”
“왜요?”
뺑이가 동그란 눈으로 묻자
“형은 자기의 가치를 높일 줄 모르는 그냥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란다. 밥 하나를 먹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알겠니?”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 하나 더 해주세요.”
뺑이는 신이 났다.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날 잡고 할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낼 작정이다. 박노인도 오늘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힘들지 않은 듯 열심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박노인은 관아에 다녀온 것이 조금 맘에 걸렸다. 다음날 소문을 통해 접한 내용은 관아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고 상했다는 내용이었다. 민심은 흉흉하고 많은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도깨비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마을 사람가운데 도깨비에게 홀려 관가에까지 도깨비를 불러들인 사람이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도깨비가 아이를 인질로 납치해 달아났다는 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관가 밖으로 실려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소식을 접한 뒤라 박노인은 손자가 집밖에 다니는 것이 걱정되고 해서 집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자를 무릎에 앉혀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할아버지! 빨리 이야기 해주세요.”
“그래! 자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뺑이야 니 이름이 뭐지?”
“히히 뺑이에요.”
“오늘은 니 이름이 왜 뺑이인지 알려주마.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마련이란다. 태어날 때는 삼신할미가 점지해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저승사자가 명부에 있는 이름을 보고 데려갈 사람을 찾아가는 거란다.”
“할아버지 명부가 뭐에요?”
“명부라는 것은 이름이 적혀있는 명단이야. 세상의 모든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이야. 명부에는 저승사자가 데려갈 사람들의 이름하고 수명, 그리고 사는 곳이 한자(漢字)로 적혀있어. 그래서 저승사자가 그걸 보고 사람을 데려가는 거지. 저승사자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올 때는 반드시 이 명부라는 책을 들고 오는데, 이 책은 모두 한자(漢字)로 되어 있어서 한자 발음이 없는 뺑이라는 사람은 잡아갈 수가 없단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박노인의 물음에 뺑이는 고개를 꺄우뚱거린다.
“그러니까 우리 뺑이를 저승사자가 못 잡아가게 한자에 없는 발음으로 이름을 만든거란다. 허허허”
“우와! 할아버지 제 이름 이외에도 이런 이름이있나요?”
“어디보자! 그래 좀 다르지만 있지. 너무 좋은 이름을 지어놓으면 저승사자가 금방 찾아내서 자꾸 잡아가니 어린아이들의 이름을 일찍 만들지를 않아. 일찍 만들면 저승사자의 명부에 이름이 빨리 올라가게 되니까. 그리고 이름을 개똥이나 도야지, 또는 돌같은 것으로 지어두면 저승사자가 명부에 적힌 주소를 보고 대문 앞까지 왔다가 집 마당에 있는 개똥을 가져가야하는지 또는 도야지나 돌을 가져가야하는지 고민하다가 돌아 가버린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그런 이름의 아이들이 많아.”
“히히 재밌어요. 전 저승사자가 못 찾겠네요.”
뺑이의 눈이 빤짝이며 재밌어하자 박노인은 분위기를 바꾸어
“하지만 조심해야 된다. 저승사자는 모든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임무라서 명부에 이름이 빠져있는 사람들을 지금도 찾고 있단다. 그리니까 언제나 조심 조심해야한다. 알았지?”
“네!”
박노인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도깨비에게 잡혀간 아이의 이름이 돌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자신의 손자 뺑이와 비슷한 또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린 것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도깨비에게 죽임당하고 인질로 잡혀갔다니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속의 볕바른 공터, 아이는 멍하니 울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아이는 이젠 눈이 부어 눈이 잘 뜨이질 않는다. 그날 이서방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며 도깨비의 부적을 떼어 내버렸다. 움직일 수 없었던 도깨비는 이서방의 덕분에 다시 자유롭게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깨비는 싸움대신 땅바닥에 구슬을 던졌고 이내 흰 연기가 피어올라 사방이 흰 연기에 둘러싸였다. 도깨비는 자신의 도깨비 감투를 쓰고 있는 돌이만을 찾아 안고 관가에서 사라져버렸다. 긴수염의 사내가 도깨비를 쫓으려고 지붕위로 뛰어올라 사방을 살폈고 도깨비가 도망간 방향만 확인하고 관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피해가 너무 커서 지금 쫓아가는 것 보다 날이 밝은 후 부상자를 제외한 추격대를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추격대는 사방을 뒤졌지만 도깨비와 돌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 아버질 살려주세요.”
도깨비는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내고 숲속에서 약초를 찾아와 자신과 돌이의 상처를 치료했다. ‘아무래도 이 고을을 떠나야할 것 같군.’ 도깨비는 돌이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고 북쪽으로 가 태백산으로 숨어들 생각을 하며 날이 어두어지길 기다렸다. 서산으로 해가 내려가자 도깨비는 돌이를 데리고 마을로 향했다.
돌이네 집은 불이 환하다. 이서방이 죽어 상례를 치르고 있었다. 도깨비는 돌이를 데리고 집 뒷마당으로 숨어들었다. 앞마당에는 문상을 온 손님과 손님 대접을 하고 있는 동네사람들로 분주하지만 뒷마당은 어둠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도깨비와 돌이는 방안의 상황을 살폈다. 방안에는 돌이의 어머니와 무당인 당골네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돌이 어메! 돌이 아버지가 아직 저승에 못 가고 구천을 헤매고 있어 상여가 나가기 전에 굿을 해서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네.”
돌이 엄마는 눈물만 훔칠 뿐 대답이 없었다. 당골네는 말을 이어
“구천을 헤맨다는 것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야. 아직 저승사자도 못 만나고 귀신이 되어서 돌아다니니 극락왕생할 수 없다는 말일세. 돈 걱정을 하지 마시게. 내일 아침에 굿을 해서 편하게 보내드리세.”
돌이엄마는 고개만 끄덕였다. 밖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깨비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꺄우뚱거리더니 손가락으로 간지를 세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당골네가 방에서 나가자 도깨비는 방 문구멍으로 최면향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돌이를 데리고 방문을 열고 방으로 성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