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27

폭우가 쏟아지는 밤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27 <폭우가 쏟아지는 밤>



긴 수염의 사내가 섶다리 가운데에서 반쪽만 남아있는 문(門)자 모양 침을 뽑았다. 사내는 침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 세상 물건이 아니군.”


라며 혼잣말을 하고 강물을 바라봤다. 도깨비 일행이 저승으로 넘어간 곳이지만 강물의 흐름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있질 않았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강물도 검은 빛을 띠고 흘러 강물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흐린 서쪽 하늘에서 매 한 마리가 크게 원을 그리며 빙글 빙글 날고 있었다. 긴 수염의 사내가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냈고 매는 휘파람 소리가 난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사내가 팔을 뻗자 가죽으로 된 팔 보호대 위에 매가 내려앉았다. 매의 다리에는 작은 원통이 묶여있었다. 사내는 원통에서 쪽지를 꺼내고 매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사내는 쪽지를 다 읽고 나서 섶다리 가운데에서 물가로 되돌아왔다. 사내는 말을 묶어 놓은 곳으로 가서 붓과 먹을 꺼내 종이 두 장에 글을 적었다. 그리고 휘파람으로 매를 불러 좀 전의 원통에 쪽지 한 장을 넣고 날려 보냈다. 매는 다시 흐린 하늘로 날아올라 북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잠시 응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데리고 왔느냐?” 긴 수염의 사내가 묻자 그를 따르는 4명이 뒤에서


“네! 데려왔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긴 수염의 사내가 돌아서며 좀 전에 쓴 나머지 한 장의 쪽지와 섶다리에서 뽑은 침을 막내에게 건네줬다.


“이것을 가지고 대장간에 가서 나머지 반쪽을 만들어라. 만드는 방법은 이 종이에 적어두었다.”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막내는 말에 올라 논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막내가 떠난 자리에는 세 명의 사내와 며칠 전 돌이 아버지 장사 때 운구행렬 가장 앞에서 상여소리를 하던 소리꾼이 있었다. 긴 수염의 사내는 끌려온 상여소리꾼에게


“그날 일을 설명해봐라.”라고 말했다. 소리꾼은 위축되어 두 어깨를 앞으로 모으고 양손을 앞쪽으로 잡고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예, 나으리! 그날 논둑을 따라 상여행렬이 별 이상 없이 다리에 도착할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상여행렬과 만장사이에 끼어들었죠. 제가 상여위에서 소리를 하니 앞에 움직임을 가장 잘 알 수 있습죠. 제가 보아하니 장사 때 음식이라도 얻어먹으러 놀러온 아이들로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끼어들고 곧 아이 하나와 방상시탈이 함께 강으로 떨어졌지요. 그런데 이상점이 있습니다.”


“그래 뭐가 이상하였느냐?”라고 긴 수염의 사내가 상여소리꾼의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예, 다름이 아니라 먼저 아이가 떨어지고 그 다음에 방상시탈을 가지고 풍산아재가 강으로 뛰어들었는데, 뒤에 동네로 돌아와 보니 풍산아재는 그날 배탈이 나서 방상시탈을 가지고 상여행렬을 따라 가지 않았다더군요. 누군가가 방상시탈을 가지고 상여행열의 앞에서 걸어갔지만 아무도 누가 방상시탈을 옮겼는지 모릅니다. 방상시탈과 함께 물에 뛰어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거죠. 물에 빠진 아이는 저 아랫동네 박노인의 손자 뺑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참 착실하기로 유명한데…….”


긴 수염의 사내는 안동 관아에 처음 들어설 때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박노인이 머리에 떠올랐다.


“관아에 일을 했던 그 박노인을 말하는 것이냐?”


“네, 바로 그 박노인입니다. 열 살 때 관아 일을 시작해서 몇 해 전까지 평생을 관아 일을 했죠. 관아 일해서 혼인하고, 관아 일해서 아들 장가보냈죠. 그리고 그 장가간 아들도 어려서부터 관아에서 일을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손자인 뺑이라는 아이도 열 살이 되면 관아에서 일을 하겠죠. 그런데 이번에 그만……. 아무도 아직 박노인에게 손자가 물에 빠져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답니다. 만일 나이 많은 노인이 그리도 귀여워하던 손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으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의 시체는 찾았느냐?”


긴 수염의 사내가 소리꾼에게 물었다. 긴 수염의 사내는 소리꾼의 대답을 듣는 것 보다 방상시탈을 쓰고 뛰어든 존재가 도깨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겨 소리꾼의 이야기에 귀 기우리지 않았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집으로 돌아오질 않은 걸로 봐서는 분명 죽었을 겁니다. 이 다리에서 조금 내려가면 물귀신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해마다 거기에서 사람이 죽어요. 그리고 비오는 날이면 그곳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귀신 머리를 봤다는 거죠. 이제 며칠 내로 저 아래 하류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시체가 발견되면 가족을 찾으러 사람을 보내니까요. 작년에도 우리 옆집사람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 논둑 무너질까봐 논물 보러 가서 물에 빠져 죽었지요. 그때도 그 사람이 집에서 나간 지 며칠 뒤에 저 아래 동네에서 사람이 올라왔죠. 저 아래에 물살이 아주 약하고 물이 깊은 곳이 있습니다. 보통 거기서 시체들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귀신이 며칠 잡아뒀다가 보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때 그 사람 부인이 아들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참 많이들 안타까워했죠. 그리고 남편은 초여름에 그렇게 죽고, 그 죽은 사람 부인도 작년 가을 비오는 날 물에 빠져죽었어요. 죽은 남편이 물귀신이 되어서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한참 났죠. 다행히 갓난아이는 두고 갔는데 친척들이 겨우 살려서 키우고 있죠. 그때도 우리가 며칠 지난 뒤에 그 시체를 아래 마을까지 가서 가져왔는데 그 부인이 눈을 뜨고 죽었더군요. 눈을 감겨주고 시체를 그 집 안방에 눕혀두고 관을 준비했는데 그 동안에 다시 눈을 뜨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아기 울음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저승사자가 죽은 아기엄마 혼령을 데려가는데 엄마 혼령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저승사자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아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고 하네요. 그때 저승사자가 말을 듣지 않는 아기 엄마를 철퇴로 내리치며 머리채를 잡아끌고 저승으로 간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엄마는 계속 피를 흘리고 철퇴를 맞으며 아기가 있는 쪽을 향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예로부터 죽은 엄마 시체 근처에 아기가 못 있도록 한다는군요. 그 때는 우리 동네에 삼신 빌어주는 할매가 오셔서는 아기를 집밖으로 데리고 나가도록 시켰죠.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아기의 고모가 아기를 데리고 집밖으로 나갔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곧바로 아기엄마 귀를 솜으로 막아버리더군요. 그렇게 하자 신기하게도 시체가 눈을 감더라고요. 참 어미의 사랑이라는 것이 대단하죠.”


소리꾼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긴 수염의 사내는 소리꾼의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끊기 위해 풍산아재에 관해 물었다.


“그 풍산아재라는 자는 지금 어디 있나?”


풍산 아재의 행방을 물어 겨우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예, 지금은 처가에 가 있습니다. 배탈 때문에 며칠 고생했는데 나으면 처가에 며칠 다녀온다고 하더군요.”


소리꾼은 사람들의 내력을 많이 알고 있지만 너무 수다스러웠다. 다시 소리꾼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긴 수염의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그 자의 처가가 어딘가?”


“허허허, 풍산아재의 처가는 풍산이지요.”


혼례를 치른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결례로 여겨져 동성마을이 많은 지역에서는 주로 처가의 지명을 택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시험 중 소과의 생원시나 진사시를 통과하는 경우 택호 대신에 O생원 또는 O진사로 부르거나 벼슬을 붙여서 참판댁 또는 도사댁 등으로 부르지만 무지렁이인 풍산아재는 처가의 지명을 택호로 쓰고 있었다.


“고맙네.”


라고 말하고 긴 수염의 사내가 턱으로 신호를 보냈다. 뚱뚱한 사내는 그 신호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엽전 꾸러미를 꺼내 소리꾼에게 건네주었다.


“약속한 돈일세. 아이가 돌아오거나 다른 소식이 있으면 꼭 알려주게. 그럼 다시 후사하겠네.”


라고 긴 수염의 사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참! 제가 잘 못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분명 아이가 떨어질 때 아이가 둘이었습니다. 물이 튀는 것이 분명 한 아이가 떨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흐린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긴 수염의 사내 일행은 막내를 제외하고 산속 빈집에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있었다. 비 때문에 모든 것이 젖어있어 집의 부서진 곳에서 나무를 뜯어 불을 피우고 있었다. 모닥불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나며 불의 흔들림에 따라 그림자도 일렁거렸다. 문을 열고 막내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야심한 밤에 폭우를 뚫고 온 것이다.


“말씀하신 것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품속에서 두루마리 천을 꺼냈다. 그 천을 펼치자 문(門)자 침이 한 쌍 나왔다.


“적어주신대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막내가 말하자


“그래 수고했다. 불 가까이 가서 몸을 녹여라.”


긴 수염의 사내는 침 한 쌍을 들고 둘을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천으로 싸서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그리곤 주위를 주목시켜


“오늘 한양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 도깨비 집에서 발견한 것이 성수청*에서 찾던 것이라는 답변이다.”라고 말했다.


“그럼 도깨비 감투와 같이 나온 것이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죠?”


라고 막내가 상기되어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성수청의 존립이 달려있다. 우리 쪽에서 정보가 새어나가 소격서 녀석들이 눈치 챈 모양이다. 소격서**도 우리와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도사 다섯을 벌써 급파한 상태다. 서로 협조는 해야지만 우리가 먼저 찾아야한다. 그리고 절대 실패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소격서에 빼앗겨서도 안된다. 우리가 실패하면 성수청과 함께 우리의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숙적을 처단할 기회임을 잊지 말아라. 단서를 놓치지 말고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임무를 완수하여야한다. 명심 하여라!”


사내의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목숨을 받쳐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네명도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성수청* 조선시대 궁궐안에 있던 무속을 관장하던 관청


소격서** 조선시대 궁궐안에서 도교를 관장하던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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