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의 버드나무 가지
벽돌탑의 도깨비 - 26 <관세음보살의 버드나무 가지>
관세음보살이 정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돌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곧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며칠간 견디기 힘든 일을 꿋꿋이 견뎌낸 돌이지만 참을 수 없었다. 울음소리가 이젠 원망 섞인 중얼거림으로 변했다.
“너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너만 아니었으면 우리 아버지도 죽지 않았을 꺼고, 동네사람들도 다치지 않았을 꺼야. 다 너 때문이야. 우리 아버지 살려내~. 제발 우리 아버지 쫌 살려줘.”
돌이의 한 맺힌 울음소리가 도깨비를 향해 쏟아졌다. 돌이의 울음이 어깨의 들썩거림으로 변하자 관세음보살이 돌이에게 다가갔다.
“돌이야.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란다. 너희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울고 싶을 땐 우는 것도 참 좋아. 하지만 포기해선 안됀단다. 아직 널 옆에서 돕는 이도 있고 방법도 있으니까. 자 일어나렴.”
관세음보살이 돌이에게 손을 내밀어 돌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돌이의 손을 이끌어 정자 난간으로 데리고 갔다. 관세음보살은 난간 아래 연못을 가리키며
“물속을 한번 보렴.”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들고 있던 버드나무 가지를 부채를 부치듯이 바깥쪽으로 살짝 한번 흔들었다. 순간 살랑바람이 일어나 연못가의 버드나무가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잎 몇 개가 연꽃과 연잎사이 물로 떨어졌다. 버드나무 잎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물결이 일어나면서 주위의 연꽃과 연잎이 서서히 흩어지고 물속에 형체가 떠올라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네 집이 눈에 보였다. 집 마당에 수염이 긴 사내의 일행이 돌이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집밖으로 나가자 돌이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뒤뜰로 통하는 문을 열고 집을 빠져나갔다. 뒤뜰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을 막기 위해 심어둔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자라있었다. 돌이엄마는 그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옆집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밭을 가로질러 산 아래로 난 길을 통해 당골로 잔걸음으로 걸어갔다. 당골네(무당집)를 찾아가 당골네(무당)를 부르자 당골네가 방문을 열고 놀란 듯 돌이엄마를 대한다. 그리고 급하게 방안으로 돌이엄마를 끌어들이고 돌이엄마의 짚신을 방안으로 가져들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동안 울고 또 이야기를 나누기를 계속했다. 그 모습을 연못을 통해 보고 있던 돌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돌이야, 너희 어머니도 포기하지 않고 너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너도 힘을 내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러 돌아가야겠지? 내가 방법을 알려 줄 테니 힘이 들더라도 한번 해보렴.”
라고 관세음보살이 말하며 돌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정자 가운데에 있는 탁자 쪽으로 데리고 갔다. 탁자 위에는 벼루, 붓, 종이가 놓여있었다. 바람이 가볍게 불어오자 종이 끝이 살짝 들렸다.
관세음보살은 손에 들고 있던 버드나무 잎 몇 개를 뜯어 탁자위에 놓여있던 하얀 모시수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 잎을 몇 개를 가져가 아이에게 먹이고 상처에 붙이면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모시수건을 접어서 도깨비에게 건네줬다.
도깨비는 모시수건을 받으며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알렸다. 관세음보살은 곧이어 붓에 먹을 찍어 닥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를 다시 접어서 봉투에 넣고 돌이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여기에 내가 정병을 잃어버린 장소가 적혀있단다. 그곳에 가서 생명수로 아버지를 구하거라. 단, 관세음보살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하진 않는다. 모든 것은 너희의 노력에 달려있단다.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를 구하여라. 봉투 속에는 내가 적어 놓은 문제를 풀면 정병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돌이도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둘이 정자 아래로 내려가자 관세음보살도 따라 내려와 배웅해주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둘을 모두 구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네요. 빨리 떠나세요.”
라고 관세음보살은 말하고 도깨비를 행해
“이번 여행은 무척 긴 여정일겁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거예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당신에게도 큰 깨달음을 줄 여행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다시 한 번 관세음보살에게 인사를 하고 둘은 나무에 묶어둔 새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도깨비에게는 마지막 관세음보살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한참을 한 방향으로 날던 머리 둘 달린 새가 방향을 바꿨다. 노부부의 집이 눈에 보였다. 해가 천천히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승에서 보는 노을보다 훨씬 붉은 빛이 진하게 드리웠다. 도깨비와 돌이는 새에게서 내려 새를 냇가에 묶었다. 새는 먼 길을 날아 목이 마른지 연신 냇물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반복했다.
“뺑이의 상태는 어떤가요?”라고 돌이가 노부부에게 물었다.
“약효가 듣지를 않아. 지금 아주 고통스러울 꺼야. 생명수는 구했니?”
“생명수는 구하질 못했소. 하지만 관세음보살께서 이걸 아이에게 먹이고 상처에 붙이면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하셨소.”
라고 돌이를 대신해 도깨비가 대답을 하며 관세음보살에게 받은 버드나무 잎을 전해주었다. 노파는 모시수건에서 버드나무 잎을 꺼내서 뺑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돌이가 가져온 봉투를 받아 탁자에 놓고 노인과 함께 둘러 앉아 내용을 보았다. 봉투 안 종이에는 자미원과 태미원 그리고 천시원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방향이 삐딱하게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미륵전,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순으로 절의 가람배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 정병모양 속에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뭔가요?”
라고 돌이가 물으니
도깨비가 종이를 기다란 손톱으로 가리키며
“이건 하늘의 지도야. 여기 가장 중심에 있는 자미궁은 옥황상제께서 사는 궁궐이야. 그리고 그 바깥에 태미원이 있고 천시원이 있지. 그리고 이건……. 이상하네. 왜 삐딱하게 쓰셨을까? 그리고 순서가 반대인 것 같은데.”
라고 도깨비가 말하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렇군. 반대로 배치가 된 것 같네. 극락전은 과거불인 아미타불이 계시는 곳이고 대웅전은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이지.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계시는 곳이 미륵전이니까. 원래 순서대로라면 빛을 뜻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이 가장 위에 위치해야하고 그리고 극락전, 대웅전, 미륵전 순이 되어야지. 나도 방향을 이렇게 쓰셨는지 모르겠군.”
이라고 노인이 말하자 돌이가 다시 궁금함을 물었다.
“마지막에 세 개는 뭔가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은 우리 같은 신선들이 사는 산의 이름이란다. 아마도 정병 속에 물을 마시면 신선이 된다는 뜻인 듯한데…….”
라고 노인이 말했다. 순간 돌이가
“여기에 이상한 것이 있어요. 자미원과 태미원사이에 글자가 있어요.”
“뫼산(山)가 두 개 있군. 그럼 나갈 출(出)을 뜻하는 것 같은데.”
라며 도깨비가 눈을 반짝였다. 이어서 노인이
“여기 보이는 가람배치가 땅을 뜻하는 것 같군. 그럼 시간이 나오지. 이런 지금인데 지금 저 별자리로 가면 된다는 뜻인 것 같은데.”
라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이 시간이 없다고 하셨어. 그 말씀이 이 뜻이군.”
도깨비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세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노파가 뺑이를 데리고 왔다.
“이 아이는 이제 걸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다행이군. 시간이 없으니 지금 출발해야겠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
도깨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노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노부부가 뺑이를 챙기는 사이 돌이가 도깨비에게 말했다.
“아까 관세음보살님에게 갔을 땐 미안했어요.”
도깨비는 돌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힘들어도 우리 힘을 내자.”
일행은 집밖으로 나가 서로 인사를 나눴다. 도깨비는 머리 둘 달린 새 등에 아이들을 먼저 태웠다. 노파가 먹을 것을 보따리에 챙겨서 건네주었다.
“이번엔 우연히 만났는데 이렇게 많이 도와주셔서 고맙소.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어떻게 사례도 못하고…….”
라고 도깨비가 인사말을 전하자
“인연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나? 다시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지.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가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무쪼록 저 아이들을 잘 챙기게.”
라고 노인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노인은 잠시 도깨비의 손목을 잡아서 당기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자네 카노가 지옥을 탈출했다는 이야기 들었나? 그 무당말일세.”
“그놈이 소멸되지 않고 지옥에 있었습니까?”
“모르고 있었군. 지금 저승의 경비가 삼엄한 것도 그 때문일세. 그놈이 자네를 찾아갈 수 있으니 조심하게.”
라고 노인이 말을 하자 도깨비의 눈동자에 어둠이 드리웠다. 도깨비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새등에 올라탔다.
‘카노…….’
도깨비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노파가
“시간이 없어요. 이제 출발해야죠.”
라고 말을 하며 고삐를 건너자 새가 날개를 퍼덕이더니 날아올랐다.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새는 깜깜한 밤하늘로 높이높이 날아 올라갔다. 도깨비가 관세음보살에게 받은 종이를 펴서 가람배치를 땅바닥으로 맞추자 하늘의 별자리가 비슷하게 맞아들어 갔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종이의 출(出)자를 향하고 있었다.
“뺑이야 좀 괜찮아.”
돌이가 묻자
“많이 좋아졌어.”
라며 씨익 웃는다. 도깨비도 뺑이를 보며 안심하는 눈치다.
“아저씨 이제 어디로 가는 거에요? 집으로 가는 건가요?”
라고 뺑이가 도깨비에게 물었다.
“저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나도 모른단다. 일단 돌이 아버지를 구할 생명수를 찾으려면 저쪽으로 계속 날아가 봐야해.”
하늘을 바라보며 도깨비가 말했다.
도깨비가 다시 땅의 위치와 별자리를 맞춰봤다. 별자리의 움직임과 땅의 위치가 딱 들어맞았다. 순간 번쩍하며 세상이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