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불덩어리
벽돌탑의 도깨비 - 28 <저승의 불덩어리>
빛을 통과하자 변함없이 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박혀있었다. 좀 전까지 힘차게 날아오르던 새가 놀라서인지 날개 짓을 하지 않고 바람을 타고만 있다. 빛을 통과하기 전과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있었다.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것이다. 도깨비는 관세음보살에게 받은 지도를 꺼내서 별자리와 맞춰보았다. 지도를 펴자 지도의 별자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바람 때문에 지도를 보는 것이 어려워지자 고삐를 당겨 새를 제자리에서 날게 하고 지도를 폈다.
"음……." 도깨비는 유심히 지도 속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돌이가 도깨비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다른 세상으로 넘어와서인지 지도의 별자리가 변하고 있어. 아래의 건물들도 위치가 변하고 있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절의 가람배치가 일렬로 한줄 위에 있던 것이 이제 줄을 이탈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 자리를 잡자 도깨비는 별자리와 지도를 맞춰봤다. 가운데 북극성을 중심에 두고 자미궁, 태미원, 천시원의 자리가 맞아 들어갔다.
"그런데 왜? 비로전은 지붕만 있는 거죠? 다른 건물들은 모두 지붕과 아랫부분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비로전만 삼각형 지붕만 있잖아요?"라고 뺑이가 꺄우뚱거리며 물었다.
"뺑이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처음 받을 때부터 저 모양이었는데 지금까지 별 의심을 못하고 있었네.
돌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의 천시원 끝에 있는 별과 지도 속 천시원의 별, 그리고 비로전을 연결해서 말했다.
"비로전 위에 있는 별을 찾아서 가보면 다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돌이의 말이 끝나자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접어 옷 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새의 고삐를 잡고 지도에 그려진 별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의 은하수를 건너서 새는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촛불이 하나 켜져 있는 어두운 방 가운데에 긴 수염의 사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사내를 꼭지점으로 하여 부하 4명이 ㅅ형태로 앉아 있었고 사내의 앞에는 작은 종지 몇 개와 나무로 만든 작은 새,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있었다. 작은 종지 가운데에는 지난번 관아에서 흘린 도깨비의 굳은 피가 담겨있었다. 사내는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왼손 아래에 둔 칼을 들어 오른손 검지에 상처를 내어 무릎 앞에 있는 작은 그릇에 피를 받았다. 4명의 부하들도 사내를 따라 소리 내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작은 그릇에 피가 모이자 노란종이에 피 묻은 검지로 부적을 그리고 불을 붙였다. 타고 남은 부적의 재를 사내의 피가 담긴 종지에 넣고 검지로 저어 잘 섞었다. 그리고 검지에 붙은 피 한 방울을 도깨비의 굳은 피가 담긴 종지에 떨어뜨리자 도깨비의 굳은 피가 다시 액체 상태로 서서히 변해갔다. 도깨비의 피가 완전히 액체상태가 되자 사내는 문(門)자 모양의 침의 끝부분을 핏속에 넣었다 뺀 후 자신의 양쪽 무릎 앞 방바닥에 침을 꽂았다.
순간 눈앞에 저승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5명의 주문을 외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사내는 나무로 만든 새를 들어 새 날개에 도깨비 피를 발랐다.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자그마한 나무새는 붉은 날개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내는 종지에서 자신의 피를 찍어서 새의 눈에 발랐고 사내는 눈을 감은 후 그 피를 다시 자신의 눈꺼풀에 발랐다. 사내는 다시 눈을 뜨고 준비해둔 화살에 촉 대신 새의 뒷부분을 끼워 넣고 다시 노란종이에 피로 부적을 그려 화살과 새의 연결부분을 감쌌다. 사내의 뒤에 앉아 있던 부하 한명이 긴 수염의 사내에게 활을 건네주었다. 또 다른 한명이 향로에 향을 피웠다. 이내 향로에서 많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향의 연기가 저승으로 연결되는 문과 사내 사이에 벽처럼 피어올랐다. 사내들의 주문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사내는 왼손에 활을 들고 오른 손에 화살을 들어 화살촉을 향로 위에 올려 향의 연기가 화살촉을 감쌀 때까지 기다렸다. 화살촉에 연기가 모여들어 새가 안보일 정도가 되자 활에 화살을 메겨 저승 문을 겨냥했다. 그리고 화살을 잡은 오른손 검지의 피가 화살의 깃에 묻은 것을 확인하며 손가락을 살짝 비비며 살을 날렸다.
휙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저승으로 날아갔다. 연기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화살이 날아간 틈으로 계속해서 저승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한참을 도깨비가 움직였던 방향으로 날아갔고 그 뒤를 따라 연기가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긴 수염의 사내가 눈을 감자 피 묻은 눈꺼풀에 붉은 눈이 생겨났다. 사내는 그 눈을 통해서 연기 위에 나타나는 저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살촉에 달려 있는 새의 피 묻은 눈을 통해서 저승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사내의 뒤쪽에 있던 부하들이 종지의 피를 사내가 했던 것처럼 눈꺼풀에 발랐다. 5명은 새의 시야만큼 저승의 사방을 보면서 도깨비의 흔적을 찾았다.
화살은 도깨비 일행이 개 몰이꾼과 싸운 저승의 문으로 날아갔다. 뺑이가 저승의 개들에게 물렸던 곳에 화살이 도착할 때 막대 하나가 붕붕거리며 회전하며 날아와 화살을 반 토막으로 부러뜨려버렸다. 개 몰이꾼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들고 있던 지팡이를 던진 것이다. 화살이 떨어진 곳으로 세눈박이 개 두 마리가 뛰어가 떨어진 화살 두 개를 물어왔다. 반토막이 난 화살 앞에는 부적이 붙어있었다. 개 몰이꾼은 화살 깃에 묻어있는 피를 발견한 후 화살을 물고 온 개에게 다시 물리고 귀에 속사이 듯이 명령을 했다. 그리고 개를 몰 때 쓰는 피리를 꺼내서 삐익삐익하며 신호를 수차례 보냈다. 잠시 후 저승 문 옆 언덕위에 있던 망루에서 집채만 한 불덩어리가 휙하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날아갔다. 피리를 불던 개 몰이꾼이 불덩어리가 날아간 방향을 보며 기분 나쁘게 씨익하고 웃었다. 녀석의 귀가 유난히 길었다.
화살은 부려졌지만 나무새는 계속해서 도깨비의 행방을 찾아서 날아다녔다. 저승 문 근처의 창고에서 거대한 방상시탈을 발견하였다. 새는 방상시 탈을 세세히 살폈다. 그리고 다시 도깨비 일행이 거대한 새에게 낚아채인 채 잡혀간 구름을 행해 날아갔다. 새의 꼬리에는 여전히 연기가 가늘게 따라붙고 있었다. 새의 날개에 묻어있는 피가 도깨비가 날아간 방향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가느다란 연기가 창고 근처에 이어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새가 계속 파닥거리며 방상시탈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새라? 저승을 정탐하려고? 음……. 새의 목적지를 쫓아야겠군.' 귀가 길게 늘어진 개 몰이꾼이 피리를 삐익삐익 불었다. 곧이어 머리 둘 달린 새 몇 마리가 병사들을 태우고 날아왔다. 귀가 긴 개 몰이꾼이 이번에는 직접 새에 올라타고 연기를 따라 작은 새를 쫓기 시작했다.
새의 눈을 통해 보던 저쪽 세상이 갑자기 뒤집히며 돌기 시작했다.
'화살이 부러졌다.'긴수염의 사내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들켰다. 저승에서 공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해라."라고 부하들에게 외쳤다. 뒤쪽의 네 명의 부하들은 자신들의 눈에 발라놓은 피를 지우고 눈을 떴다. 뚱뚱한 사내가 나머지 세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집에 문짝을 떼어와라. 그리고 막내는 저승 문을 통해 저승의 움직임을 계속 살펴라."
순식간에 문풍지가 발린 문짝을 네다섯개 모아왔다. 네 개의 문짝을 끈으로 묶어서 펼쳐놓고 연결된 문짝위에 거대한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직사각형의 거대한 부적이 생겨났다.
"이 부적이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꺼야. 형님은 도깨비의 행방을 보셔야하니 우리가 공격을 막아 형님을 보호해야한다. 모두 정신을 집중해! 공격은 한 번에 막아야한다. 우리는 저승의 문 이쪽에서 부적을 잡고 손은 저쪽 세상에 있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라고 뚱뚱한 사내가 말하니 나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명은 수염이 긴 사내를 들어 뒤쪽으로 옮기고 저승의 문과 사내 사이에 공간을 마련하였다. 연기가 자욱한 속으로 네명이 문으로 만든 부적을 옮겼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막내의 눈에 연기 속 저쪽에서 붉은 기운이 보였다.
"오라버니. 공격이에요!"라고 외치자
"공격이다. 대비해! 하나, 둘, 셋에 막아내야해!"라고 뚱뚱한 사내가 말하고 이네
"하나"라고 외쳤다.
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인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집을 살펴보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는 한참을 하늘을 맴돌다가 다시 노부부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군. 왜? 도깨비의 피가 길을 인도하지 못하는 걸까? 뭔가 아주 강력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군.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음……. 저쪽에 흔적이 한줄기 더 있군. 하늘을 향해 날아갔는데.'
긴 수염의 사내는 도깨비의 흔적을 어떤 강력한 힘의 작용에 의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는 순간 다른 흔적을 발견하였다. 나무새는 계속해서 도깨비의 흔적을 따라 하늘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가다가 순간 도깨비의 흔적이 사라졌다. 새는 한 곳을 계속 통과하고 다시 돌아와 통과했다. 수 십 번을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군. 다른 세계로 날아 가버렸거나, 거대한 놈에게 먹혔거나. 누가 도깨비를 사라지게 만들었을까?'라고 긴 수염의 사내가 생각하는 사이 무서운 속도로 머리 둘 달린 새가 나타나 작은 나무새를 부리로 낚아채갔다.
머리 둘 달린 새는 하나의 머리를 돌려 작은 나무새를 개 몰이꾼에게 건네주었다. 개 몰이꾼은 새의 눈을 자신에게 향하게 한 후
"어이. 크크크 선물은 받았나? 자네들은 금지된 장난을 하는군. 크크크."라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긴 수염의 사내는 작은 새의 눈을 통해 저승의 개 몰이꾼을 보고 있었다. 개 몰이는 꾼은 새의 눈에 칠해진 피를 닦으며
"이보게! 자넨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갔어. 그것도 두 곳에……. 첫 번째 선물은 받았다면 두 번째 손님이 잠시 후 들릴 꺼야?"라고 말하며 기분 나쁘게 혀를 내어 피를 맛 봤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서 종이에 피를 묻혔다. 그러자 피가 묻은 곳에 수염이 긴 사내의 이름이 붉게 저절로 그려졌다. 사내는 눈의 피를 닦고 앞을 봤다.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네 개의 그림자가 서있고 그 너머로 붉은 기운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