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서리
벽돌탑의 도깨비 - 29 <닭서리>
달이 구름에 가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구름에 달이 가려지자 몸을 담에 붙이고 최대한 낮춰서 개구멍을 통해 담 안으로 숨어들었다. 담 안으로도 탱자나무를 심어 목적지까지 움직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풀벌레소리가 멈추면 자신들의 숨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뒤따라오던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밟아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모두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조심해"라고 가장 앞에 있는 사내가 말을 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발을 내딛었다.
"에이 괜찮아. 이 재미에 하는 거지?"라고 좀 큰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몇몇이서 "쉿", "쉿"거리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몇 발짝을 움직였을까? 돌연 달이 구름을 헤치고 나왔다. 마당 한쪽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는 모습이 달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 순간 어찌 할 줄 몰라 하다가 한 사내가 잔걸음으로 뛰기 시작하자 사내들은 줄줄이 마당 한쪽에 있는 거대한 회화나무 아래 그늘로 잔걸음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몇은 사랑채의 인기척을 감시하고 몇몇은 하늘의 달과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다시 구름이 달을 덮쳤다. 사내들은 구름의 움직임을 따라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는 닭장으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닭들은 닭장 안 나무위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들어있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닭장 안으로 두 명이 들어갔다. 닭장 안으로 들어간 둘은 서로 어느 닭을 선택할 것인지 눈짓 손짓으로 서로 신호를 보내 상당히 통통해 보이는 닭으로 둘은 결론을 맺고 닭을 껴안았다. 순간 닭이 잠에서 깨어 퍼덕거리며 사내의 품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닭장 속의 닭들이 울어대고 난리가 났다. 닭장 안에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장닭이다. 장닭이 사내들을 발견하고 한참 주시하더니 결국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닭장 안을 밖에서 보던 나머지 사내들은 일단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마당을 가로질러 탱자나무 옆을 지나서 개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아휴~, 그걸 못 잡아서. 닭은 날갯죽지 밑을……. 그러니까 겨드랑이 아래를 꽉 잡으면 찍 소리도 못하는데."라고 한탄을 하자
"그럼, 자네가 들어가지 그랬나?"라고 답이 날아왔다.
"그러니까 내가 첨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참나? 그런데 모두 담 밖으로 빠져나왔나?"
"닭장에 들어간 둘은 아직인데."
잠시 후 담 안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참을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럽게 소동을 일으킨 뒤에 두 명이 닭을 한 마리 안고 개구멍을 빠져나왔다. 개짖는 소리는 그러고도 한동안 계속 들렸다.
"괜찮아?" 밖에서 기다리던 무리 중 하나가 묻자
"아이쿠 장닭한테 얼마나 당했는지 말도 말게. 어디 밝은 곳에 가서 봐야겠어."
"난 개한테 거의 물릴 뻔했네. 십년감수했어."
"안 들켰나?"라고 묻자
개에게 물릴 뻔했다는 사내가
"안 들킨 것 같아. 사랑방에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럴 리가 분명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어른한테 걸리면 아주 혼 줄이 나는데. 그런데 그 닭다리에 그건 뭔가?"
장닭에게 당했다는 사내가 안고 있던 닭의 다리를 살피며
"다리에 뭐? 어! 천을 묶어뒀네."
한편 사랑방에서는
"할아버지 개가 왜 저렇게 짖죠?
"뒷집에 사위가 오랜만에 처가 다니러 왔다는구나. 아마 동네 또래들끼리 닭서리 온 모양이다."라고 할아버지가 대답을 하자 손자가
"서리 왔으면 왜 가만히 두세요?"
"사위들이 와서 서리를 할 때는 우리 동네는 왠만하면 그냥 둔단다."
"왜요? 할아버지."손자는 고개를 갸우둥 거리며 의아해했다.
"사위된 사람이 같은 동네에 함께 살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로 정이 생길 일이 없단다. 저렇게 서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누가 어렵거나 죽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하면 서로 소식도 전하고 돕기도 하고 하는 거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인을 했다고 해도 남이나 마찬가지란다. 같은 마을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서로 정을 나누기 위해 옛날부터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단다. 특히 사위에게는 특별히 더했지. 이 할애비도 장가가서 처음에는 너희 할매를 빼앗아갔다고 그 동네 청년들에게 발바닥도 많이 맞고 했었지."
"할아버지도요?" 손자는 눈을 동그랗게 해서 관심을 보였다. 노인은 말을 이어
"남자들끼리는 저렇게 서로 추억을 만들고 누가 누군지 기억을 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가 못하단다. 장가를 와서 남의 가문 여자들에게 말을 걸기가 참 어색하거든."라고 말한 뒤 노인은 옛 생각이 났던지 짧게 웃고 말을 이었다.
"허허. 사위가 처가에 오면 송편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장모는 정성을 다해서 사위를 챙겨주지만 동네 여인네들은 송편 속에 먹물, 고춧가루, 간장 등을 넣어서 사위를 감쪽같이 속이는 경우도 많단다. 이런 걸 문객속이기라고 하지."
"할아버지 문객이 뭐에요?"
"아~ 문객은 사위를 말하는 거란다."
"그런데 왜 할머니가 오늘 닭다리에 붉은 천을 묶어두셨나요?"
"허허 별걸 다 봤구나. 우리 동네는 먹고 사는 것이 풍족한 집이 몇 집 안되니까. 사위들이 와서 서리를 하러가는 집이 정해져있단다. 사위가 와서 동네에 인사를 다니면 그 몇 집은 미리 그들이 잡아갈 닭을 표시해둔단다. 사위들이 동네 또래들과 서리를 다닐 때 피하는 집이 생기면 그 집으로써는 아주 서운해 한단다. 이게 우리 동네 미풍이라 할 수 있겠지. 사람 사는 곳에는 인정이 있어야지."
사내들은 닭을 손질해서 가마솥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방안에 모두 모여 앉아서 서로가 아는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닭과 술이 들어오고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여보 일어나세요. 식사 하셔야죠?"
풍산아재는 부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많이 늦게 들어오셨죠? 뭐가 그리 재밌으셨어요?"라고 부인이 묻자
"아휴`, 어제 개한테 물릴 뻔하고……. 허허, 당신 동네 사람들 참 짓궂어. 서당골 형님이 어제 닭한테 많이 당했는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네."
"여보 빨리 씻고 사랑방에 들어가세요."
풍산아재는 세수를 하고 사랑방으로 들어가 장인어른께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밥상이 들어왔다. 안채로 난 문을 통해 방상을 각각 두 개 받아서 장인어른 앞에 하나 놓고 자신의 앞에 놓았다. 밥상이 나올 때 풍산아재는 아내가 보이지 않아 잠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장인어른이 먼저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손을 숟가락을 잡는 순간 뜨거움에 깜짝 놀라
"앗! 뜨거워."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부엌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동네 여자들이 숟가락을 불에 달구어서 상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옮겨오는 동안 식어서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을 놀라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풍산아재는 도깨비로 엉망이 되어버린 동네일을 잊고 처가인 풍산에 와서 또래들과 잊지 못할 재미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당골네는 돌이 어머니와 함께 20여리를 걸었다. 고개를 넘고부터 한동안 계속해서 내리막길이 이어져 그나마 걷기 수월했다. 자신을 찾아온 돌이엄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한 당골네의 해결책은 자신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당골네는 돌이 엄마와 산을 얼마간 오르자 외딴집이 나타났다. 당골네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
"계십니까?"라고 사람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둘은 저녁 해가 떨어질 때쯤 되어 산을 올라오는 집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당골네와 돌이 어머니가 찾아간 집은 목수의 집이었다.
"마루로 오리시지요."라고 목수가 두 사람을 안내하였다. 세 사람이 마루에 앉자 당골네가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이집이 너무 딱해서 모시고 왔어요. 일전에 도깨비가 나타나 후로 돌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돌이는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점괘에는 돌이 아버지는 아직 완전히 죽은 사람은 아닌 걸로 나오고 돌이도 살아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저도 신경이 무척 쓰이는 일입니다. 돌이는 도깨비와 함께 아마도 방상시탈을 가지고 저승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탈은 아직 무사하니 큰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목수가 이야기하자
"성주신을 모시는 분이시니, 돌이와 돌이 아버지를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눈물을 흘리며 돌이 어머니가 부탁을 하였다.
"제가 두 사람을 구해드릴 정도의 힘이 있지는 않습니다. 작은 힘이지만 도울 수 있는 것은 돕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산 넘어 절에서 저녁을 드시고 절에서 주무시도록 하세요."
돌이 어머니와 당골네는 목수를 따라 산 넘어 절에 찾아갔다. 절에서 준비해준 저녁을 먹고 돌이 어머니는 절 옆에 있는 석불에 가서 밤늦게까지 남편과 아들을 위해 빌고 또 빌었다. 석불은 갓을 쓰고 있는 거대한 불상으로 석불 위로는 목수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누각이 날아갈 것처럼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