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30

무량수전의 노스님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30 <무량수전의 노스님>

계속 소백산 주위를 날며 절을 찾고 있다.

'이번이 몇번째 절일까?'

돌이는 6번째 절에 내렸다 날아오른 후론 몇번째 절을 헤는 것인지 잊어버렸다. 계속 절에 내려 건물의 현판을 봤지만 찾고 있던 비로전은 없었다. 몇몇 절에는 비로전이 있었지만 지도와 위치가 맞지 않았다. 절 가운데 비로사도 있었지만 별자리와 달랐다. 서쪽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찾다보니 처음에 찾아갔던 절에서 동쪽으로 꽤 멀리 온 것 같다.

뺑이는 산속에 절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려시대까지 불교를 믿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양반들이 중을 괴롭혀서 종도 중은 되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께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안동 관아 가까이에 있던 법흥사도 옛날에는 엄청나게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벽돌탑만 덩거렇게 서있고 작은 건물 한두채만 남아있다. 그리고 절 주위의 양반들이 귀찮은 일만 있으면 중들을 불러서 이일 저일 시키니 대우가 종보다 못했다.

"이번 절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다시 처음 별자리로 돌아가자."

도깨비는 머리 둘 달린 새의 방향을 아래로 바꾸며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다. 새가 절 법당에서 좀 떨어진 마당 구석에 내려앉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착지가 매끄럽지가 않다. 새도 무척 지친 기색이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왔으니 지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법당 앞에는 석등에 불이 켜져있었다. 도깨비는 새를 나무에 묶었다. 돌이와 뺑이가 먼저 석등쪽으로 뛰어갔다. 도깨비는 감투를 쓰고 아이들을 뒤따랐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법당 안에서는 염불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이가 꽤 느껴지는 음성이었지만 염불이 아주 듣기 좋게 들렸다. 석등에서 건물 앞으로 걸어가 현판을 올려다봤다. 현판에는 글자가 두자씩 네자가 적혀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달빛에 글씨가 흐리게 보였다.

무량수전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두자씩 두줄로 힘 있게 쓰여 있었다. 돌이는 실망하며

'이번에도 잘 못 왔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비로전을 찾아야하는데 무량수전이라니……. 이러다가 못 찾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저승문으로 통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것도 힘들지만 찾고 있던 비로전을 못 찾을 것 같은 생각에 힘이 빠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뭐가 잘 못 된 걸까?" 돌이는 배고픔과 피로함에서 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뺑이에게 반말로 말했지만 실제 도깨비에게 묻는 물음이었다. 도깨비도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 때 법당 안에서

"거기 뉘시오? 이 야심한 밤에"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이가 지긋이 든 늙은 스님이 무량수전의 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 어린 아이들이 이 늦은 시간에 이 산속까지 어떻게 왔느냐?"라고 노스님이 물어왔다. 돌이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몇끼를 굶은 것 같으니 이리로 오너라."라고 말하며 왼손에 등불을 하나 붙여 들고 석등 옆을 지나쳐갔다. 노스님은 석등을 지나 안양루 아래로 걸어내려가며

"아직 배가 덜 고픈게로구나."라고 말하며 돌이와 뺑이를 종용하고

"거기 등치 큰 분도 따라오슈." 노스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감투를 써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도깨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스님을 따라 석등 옆을 지나 안양루 아래로 내려갔다. 둘은 안양루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며 도깨비는 덩치가 커서 이길로는 아래로 내려갈 수 없겠다고 잠시 걱정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깨비는 아이들이 노스님의 인도에 따라 건물로 들어가자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아랫쪽 마당으로 펄쩍 뛰어내렸다. 도깨비는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건물 앞에 서서

'과연 이 문안으로 들어가야하나?'라고 생각했다. 문은 컸지만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들어가면 조금만 움직여도 뭔가 문제가 생길지 몰라서였다.

"그렇게 계속 문을 열어두면 모기 들어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노스님의 말에 어깨를 좁혀가며 방에 들어가 앉았다. 노스님은 돌이 일행에게 기다리라고 한 후 잠시 밖에 나가 먹을 것들을 가져왔다. 돌이와 뺑이는 노스님이 건네준 음식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도깨비 앞에도 음식을 놓아주었다. 도깨비는 손톱으로 음식을 찔러 먹으며 천천히 스님의 모습을 훌터 보았다. 무량수전에서 나올 땐 잘 몰랐는데 코 밑과 턱에 이상하게 수염이 나있었다.

"밤이 깊었고 아이들이 지쳐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길을 떠나시오. 혹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며 편하게 말하시오."라고 노스님은 도깨비에게 말했다.

도깨비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노스님이 무척 이상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함이 몸 전체에 감돌았다. 나이가 무척 많아 보였지만 대략의 나이를 추측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스님! 저희는 비로전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근처에 비로전이 없는가요?" 뺑이가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비로전을 찾고 있니?"라고 스님은 답 대신에 질문을 하였다.

"관세음보살님이 알려주신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관세음보살님이 주신 지도를 보고 찾고 있었는데 길을 잃었어요."라고 돌이가 답하자

노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관세음보살님이 가르쳐주신 길이라……."라고 돌이의 말을 되내었다. 그리고 나서

"이미 자네들이 그곳을 지나쳐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여긴 두번째 목표지인걸."이라고 말하며 다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도깨비는 노스님의 알 수 없는 미소가 맘에 걸렸다. 분명 비로전을 찾으려고 많은 절을 뒤졌지만 별자리와 맞는 곳에 비로전은 없었다. 분명 이 산 어딘가에 비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다녔는데 이미 지나왔다고 하니……. 별자리 아래에 있는 산에 도착해서 세번째 지난 절이 비로사였지만 그곳도 별자리와 맞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일까? 비로전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뜨거운 기운이 문풍지를 뚫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에 수염이 긴 사내까지 몸을 날려 달려들었다. 거대한 부적이 된 문짝을 잡고 다섯이 버텼지만 저승에서 온 불덩어리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저승의 문과 부적 사이로 불이 뿜어져 나와 집의 일부가 이미 불에 무너져가고 있었다. 불덩이가 날아오기 전에 저승의 문인 문(門)자 모양 침을 뽑았다면 불덩어리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넘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의 흔적을 찾아야하는 이들로써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흔적도 놓쳤고 저승으로부터의 불덩어리 공격에 목숨이 위험한 상태다. 부적이 있어 다행히 아직 버티고 있지만 뜨거운 열기에 온몸에서는 땀이 물 흐르듯 하고 손과 팔에는 화상을 입었다. 다섯은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느꼈다. 수염이 긴 사내는 부적이 제 힘을 발휘할 때 불덩어리의 힘에 몸을 맡겨 멀리 날아가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얘들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다. 불기운을 이용해 문짝을 하나씩 잡고 방패연같이 하늘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어."

모두 수염이 긴 사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수염이 긴 사내는

"하나, 둘, 셋!"이라고 수염이 긴 사내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다섯은 몸을 불덩어리가 날아가려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불덩이는 집을 완전히 박살내고 동쪽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불덩이를 따라 검은 연기가 길게 하늘에 선을 그렸다. 잠시 후 검은 연기 사이에서 부서진 문짝과 다섯명이 땅으로 떨어졌다.

막내가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발이 보였고 그 아래로 한참 밑에 땅이 보였다. 하늘에서 나무로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한동안 나무에 걸려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신이 들자 동료들의 걱정이 앞섰다. 일단 손발을 움직이며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땅으로 뛰어내렸다. 품에서 피리를 꺼내 길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각각 다른 방향 두곳에서 "삑- 삑-" 하고 답신이 왔다. 가깝게 느껴지는 곳으로 다시 신호를 보내고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잠시 후 뚱뚱한 사내가 합류했다. 짧게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고 신호를 해도 답이 없는 둘을 찾아 나섰다. 막내는 긴 수염의 사내가 답신을 하지 않는 것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긴 수염의 사내의 귀에 "삐익- 삐익-"하는 동료들의 피리신호가 들렸다. 몸이 풀밭에서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들려오는 신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자신 머리를 내려 보고 있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자신이 동료가 아니었다. 큰 갓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왼손에 책을 들고 기분 나쁘게 큰 입으로 씨익하고 소름이 돋는 미소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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