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전의 비밀
벽돌탑의 도깨비 - 31 <비로전의 비밀>
몇 시간을 잤을까? 돌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편안한 방과 이불에서 잠을 잤다. 그나마 여름이라 밖에서 잘 수 있었지만 어디 집만 했을까? 돌이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옆에 뺑이가 곤히 자고 있었다. 뺑이가 깨어나지 않게 조심해서 이불을 개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뜨거운 여름의 햇살을 내려쬐고 있었다. 그곳을 아랫단에 8개의 주름이 잡힌 장삼이라는 옷을 걸친 스님들이 바삐 가로지르며 걸어 무량수전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돌이는 방을 나와 극락전과 도깨비를 찾기 위해 절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돌이는 자신의 앞에 네 개의 기둥이 쭉 뻗어있고 거대한 지붕이 그 기둥들을 누르고 있는 건물 앞에 섰다. 건물은 독특하게도 벽이 없고 가장자리로 14개의 기둥만이 지붕을 받치고 있어 사방이 뚫리어 있는 이상한 누각 건물이었다. 이 범종각이라는 건물 누마루 바닥에는 통로가 하나 뚫리어있고 아래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었다. 방금 자신의 앞을 지나간 스님들도 그 통로를 지나 무량수전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범종각의 누마루 북쪽에는 목어라고 하는 통나무 속을 파서 괴물 모양으로 요상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 물고기가 걸려있고, 건물 서편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구름 모양으로 만들어진 운판이라는 금속판이 걸려있었다. 건물 가장 가운데에는 커다란 가죽으로 만들어진 법고라는 북이 놓여있었다. 돌이는 그 이상한 건물 북쪽에 걸려있는 요상한 목어를 잠시 쳐다봤다. 목어와 돌이의 사이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물고기야? 용이냐? 묘하게 생겼네. 뭘 하려고 달아놓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푹 잤니?”
도깨비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도깨비 감투를 쓰고 있어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도깨비는 감투를 쓴채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절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침 돌이가 목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어디에 계세요?”
돌이는 도깨비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쪽이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쿵쿵하고 뭔가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도깨비가 잠시 감투를 벗어 자신의 몸을 보여주곤 다시 감투를 썼다. 돌이는 큰 키의 도깨비가 범종각 옆 마당에 서서 누마루 위쪽의 기둥을 두드린 것을 알았다.
돌이는 자신의 발 앞에 있는 통로 계단으로 내려가 누마루 아래를 지나 범종각 서쪽 공터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좀 전에 도깨비가 보인 방향으로 말을 걸었다.
“우린 이제 어떻하죠?”
“일단, 노스님이 길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궁금한 것을 좀 여쭤보고 출발하자. 아직 뺑이는 일어나지 않았니?”
돌이가 도깨비를 향해 고개를 끄떡이는 사이 노스님이 회전문 앞 동쪽과 서쪽으로 대칭으로 배치된 두 개의 삼층석탑 사이를 지나 범종각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노스님이 걸어오는 길은 점점 좁아져 범종각 안으로 이어졌다.
“여기 모여 있군. 잘 잤니?”
노스님이 범종각 아래로 들어왔다. 돌이가 범종각 누마루 아래로 들어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여름날의 오전 햇볕이 범종각 아래로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시원했다.
“꼬마야! 넌 극락을 본적이 있느냐?”
갑작스러운 노스님의 질문에 깜짝 놀라
“네?”
잘 못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허허, 자 위로 올라가자.”
노스님은 돌이의 되물음에 답하지 않고 누각 위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갔다. 돌이는 범종각 북쪽 마당으로 올라가는 노스님의 뒷모습이 빛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누마루 아래로 내려올 때는 몰랐지만 누각 아래 어둠속에서 빛이 쏟아지는 위쪽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보니 무척 아름다웠다. 순간 돌이는 잠시 전 노스님의 말한 극락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했다. 노스님은 안양루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아가고 있었다. 돌이도 뒤따라 걸어갔다. 도깨비는 펄쩍 펄쩍 무량수전 앞마당까지 뛰어올라가며
“왜 건물을 저렇게 좁게 만든거야? 무슨 계단 달린 구멍이 저리도 많아?” 라고 생각했다. 덩치가 큰 도깨비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건물의 통로가 답답했다.
노스님과 돌이가 안양루를 통과하자 석등이 앞을 막고 있었다. 석등을 피해 오른쪽으로 움직여 무량수전으로 걸어갔다. 무량수전에서는 법회를 진행하는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노스님은 계단으로 올라가 무량수전 기단 댓돌에 멈춰서 돌이를 돌아보며
“아이야! 저 아래 누각 아래를 통과할 때 이곳이 어떻게 보이더냐?”
“아~! 네!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라고 돌이가 대답했다.
“그래, 이곳이 극락처럼 보이라고 만들어 놓아서 그렇단다.”
“너는 답을 찾고 있을텐데, 답을 찾았느냐?”
“네?”라고 되물었지만 그 뒤 말을 잇지 못했다.
“너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 저희는 비로전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선 극락전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 극락전은 찾았느냐?”라고 노스님이 묻자 돌이는 머리를 떨어뜨리며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음~, 아직 못 찾은 게로구나. 오늘 저녁 먹기 전에 답을 얻게 될 것이다. 허나 그냥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라. 답을 찾지 못한 채 해가 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허사가 되느니라. 넌 무량수전 안에 들어가서 3,000배를 하여라. 그냥 절을 3,000번 한다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너 스스로 답을 찾아야한다.”
돌이는 노스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노스님의 눈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노스님을 만났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다시 머리를 스쳐갔다.
‘이 스님은 연세가 어떻게 될까? 아이 같기도 하고 청년 같기도 하고 노인 같기도 하고 이상하네.’
“답을 찾을 수 있겠느냐?” 노스님이 다시 묻자 돌이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무량수전의 동쪽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 절을 하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둘의 대화를 무량수전 기단에 기대 앉아 듣고 있었다. 돌이가 무량수전 안으로 사라지자 도깨비가 노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누구십니까?”
뺑이는 절의 부엌을 몰래 뒤지고 있었다. 늦잠에서 일어난 뺑이는 배가 고팠다. 아침밥을 놓친 것만이 아니라 점심도 못 먹고 잠을 잤다. 어제는 노스님이 미리 배가 고픈지 물어보고 알아서 음식을 주어서 먹을 수 있었지만 늦잠을 자고나니 고픈 배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가마솥엔 밥풀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절에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먹을 것이 없을지는 몰랐다. 그래도 식재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이것저것 열어보는데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여기로 오는 건 아니겠지? 아직 저녁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데, 저녁을 만들러 올 것도 아닐꺼고…….’
사람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몰래 들어 왔기 때문에 몸이 저절로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었다. 순간 부엌문에서 발자국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부엌 나무문이 끼~익 길게 소리를 내며 열렸다.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부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뺑이의 숨소리가 멈췄다.
“이놈 거기서 뭐하느냐? 냉큼 나오너라.”
뺑이는 자신이 들킨 것을 알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자신을 부른 사람이 어제의 노스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휴~~~.”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 보게, 허허허."
뺑이는 뒤통수를 극적이며 빛이 쏟아지는 부엌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스님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서있었다. 손에는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다.
“자! 이걸 먹어라. 한참 먹을 때 아니냐?”라고 말하며 그릇을 잡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뺑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두 손으로 그릇을 받았다. 바로 옆 마루에 앉아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부엌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있는 부지깽이 같은 막대를 집어 들었다.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에 받쳐두는 부지깽이 겸 막대인데 뺑이가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문 옆 벽에 기대어 놓았다. 그리고 뺑이 옆에 앉아 막대로 마당에 이리저리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음식이 손을 거쳐 입으로 몇 번 전달되자 여유를 되찾은 다른 목적으로 뺑이가 입을 열었다.
“스님 여기 부석사죠? 히히히,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첨 와보네요. 아까 보니까 저쪽 위에 있는 바위가 부석인 것 같던데요. 그리고 법당 이름도 무량수전이고 하니…….”
“녀석, 머리를 그냥 멋으로 달고 다니는 것은 아니구나.”하며 노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스님 궁금한 것이 있어요. 여긴 의상대사께서 지은 절이라고 하던데요. 그것도 삼국통일하고 의상대사가 처음 지은 절이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요. 왜 하필 여기 지으셨데요?”
“허허허, 이놈 참 맹랑할세. 터가 좋으니 이곳으로 정했지.”
“에이 스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 찾아오기 힘든 이 산속에 왜 이렇게 큰 절을 지으셨데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은 망한 거나 다름 없는 안동의 법흥사 같은 곳이 더 좋죠. 사람들 찾아가기 쉽고 좋잖아요.”
“요놈아, 여긴 극락이야.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극락말이다. 극락이 그렇게 세상 가까이 있으면 되겠냐?”
“아~”라며 뺑이는 이해한 듯 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에이, 뭐가 그래요? 그런데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께서 같이 중국에 가시다가 원효대사는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아서 신라로 돌아왔고 의상대사는 다시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시잖아요. 뭘 공부하러 가신 거에요?”
“허어~, 허허허 그때까지 이 땅에서 모르던 부처님을 찾아가신 거란다. 부처님은 한분만 계신 것이 아니야. 극락에는 아미타불, 현세에는 석가모니부처님, 미래에는 미륵불인데, 의상이 알려준 부처님은 빛을 뜻하는 비로자나불이란다. 어렵지?”
“에이, 어렵네요. 그럼 저 무량수전 안에는 누가 계신거에요?”
“아미타불”
“스님!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돌아와서 여기에 첨으로 절을 만들었다면서요? 그럼 이절에 비로자~~, 그……, 빛을 뜻하는 부처님을 모셔야하는 것 아닌가요?”
순간 노스님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녀석, 먹을 것만 좋아하는 멍청인 줄 알았더니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돌이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처음 무량수전을 들어왔을 때 다른 절과 달리 불상이 절 가운데 없고 서쪽에 앉아서 동쪽을 바라보는 것이 신기했다. 다른 절은 부처님이 여러분 앉아 있는데 이절에 부처님이 한분만 앉아계시는 것도 이상했다.
장삼을 입은 스님들이 아미타불을 향해서 법회 진행하는 가운데 법당에 들어가 구석에서 삼천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절을 했지만 도중에 팔다리가 무거워지고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흡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힘들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러나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못 먹고 계속 절을 하니 오후가 되면서 점점 괴로워졌다. 더운 여름날 법당 안에서의 삼천배는 온몸의 땀을 쥐어짰다. 처음에는 횟수를 세면서 절을 했지만 어느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고 지난 며칠간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고 다시 사라졌다. 이미 돌이는 너무 힘들어 절하는 것을 포기 했지만 몸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눈앞에 아미타불이 자신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
‘삼천배를 했을까? 아직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뜨니 뺑이의 눈이 보였다. 그리고 지붕이 보였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절이 계속되는 것 같아 확인하러 갔던 뺑이는 쓰러지는 돌이를 보고 데리고 나와 안양루 마루에 눕히고 돌이의 뺨을 때렸다. 돌이가 고개를 살짝 들자 뺑이의 등 뒤에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가운데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다. 이제 아버지는 못 구하는 걸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돌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야! 정신 차려! 힘든 건 알지만 울 것까지는 없잖아.”
“아냐, 모든 것이 끝났어. 해가 지고 있다고 난 답을 못 찾았어.”
“무슨 소리야?”라고 뺑이가 몸을 돌려 석양을 바라보았다.
순간 뺑이의 눈이 빛났다.
“돌아!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뭐지?”
“뭐? 비로전이잖아.” 돌이가 힘없이 대답했다.
“찾았어! 내가 찾았다고! 그래! 그래! 극락전도 찾았어. 아~~ 그걸 왜 몰랐을까? 저게 비로전이고 저게 극락전이야. 하하하”
뺑이가 정신이 이상한 듯이 웃었다.
“어디가 비로전이고? 어디가 극락전이란 말이니?”
“바로 저기!”라고 말하며 뺑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돌이의 눈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