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32

기분 나쁜 미소의 저승사자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32 <기분 나쁜 미소의 저승사자>

긴 수염의 사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형상은 사람과 같았지만 표정과 얼굴빛 등 어느 것 하나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사내는 위험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이놈은 저승사자임에 틀림이 없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군.'

사내는 저승사자와 거리를 두고 섰다. 온몸에 통증이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날아와 떨어졌으니 보통사람이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사내는 저승사자의 나타남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저승사자는 다시 한 번 긴 수염의 사내를 향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잤나? 무리해서 일어날 필요가 없는데, 그 잠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잠이야.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온몸이 쑤시겠지만 그 고통도 잠시 후에는 느끼지 못할 것이니 조금만 참께. 자는 동안 자네의 기억을 조금 읽어봤는데, 자네와 함께 저승을 훔쳐보는 금지된 장난을 한 자들이 더 있더군. 짐시 후 그들도 함께 데려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그럼 그들도 곧 만나게 될 걸세. 그럼 우선 자네부터……."

라고 말 한 후 손바닥을 사내를 향해 내 보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과 땅으로 자신의 기가 빨려나가고 그리고 정신이 저승사자의 손바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묘하게 흔들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대항할 수 없었다.

막내는 일행들과 함께 숲이 끝나는 곳에서 들판 한 가운데에 홀로 넋이 빠진 사람 같이 묘한 자세로 몸을 지탱하며 서 있는 긴 수염의 사내를 발견했다. 긴 수염의 사내의 몸이 계속해서 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끈에 매달려있는 인형 같기도 하고 땅바닥에 추가 달려있는 오뚜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도 비슷했다. 순간 일행은 무엇인가 수상한 일이 전개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오라버니들, 마치 혼백이 천지로 빠져나가는 듯 한 느낌이에요. 누군가 큰 오라버니를 공격하고 있는 듯 하니 흩어져서 동시에 공격해 오라버니를 구합시다."

라고 말을 끝내기 무섭게 뚱뚱한 사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혹시 큰 형님을 미끼로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모두 그것에도 대비하도록……."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네 사람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소리 없이 민첩하게 들판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한참을 달려가자 긴 수염의 사내 앞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형체가 흐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모습이 뚜렷해졌다. 모두 그 존재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 적으로 직감했다. 그 존재가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주술을 긴 수염의 사내에게 걸고 있다는 생각에 일단 막내는 사내를 구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다. 그녀는 거리가 가까워지자 표창을 그 존재에게 던졌다. 표창은 정확히 그 존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헌데, 표창은 그 존재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관통하여 날아가 버렸다. 막내는 표창에 상대가 반응이 없자 수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 뚱뚱한 사내가 그 존재를 칼로 내려치며 베었다. 순간 넷은 당황하여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할지 몰랐다. 칼이 그냥 사내를 몸을 뚫고 지나갈 뿐 아무 영향을 비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곧 그 존재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인간이 저승사자를 공격하려고 하다니 가소로운 것들. 난 이승의 존재가 아닌 저승의 존재이므로 너희가 날 그런 방법으로 해칠 순 없다.”라고 말하며 큰 입으로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뚱뚱한 사내를 향해 들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내가 갑자기 멍하니 서서 묘한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편 박노인은 며칠째 고민에 빠져있었다. 종이 안동에 다시 나타난 것이 너무나 수상했다. 50년 전 그들은 종을 옮기기 위해 안동을 떠났다. 사또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박노인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다.

하루는 얼굴에 점이 수북하게 박혀있는 최씨가 찾아와서 젊은 시절의 박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명출이. 소식 들었나? 관아에 걸려있는 종을 오대산으로 옮기는데 사람을 모은다는군. 다녀오면 두둑이 챙겨준다고 해서 난 갈 생각인데 자넨 어떤가? 함께 갈텐가? 왠만하면 같이 가세."

박노인의 이름은 명출이다. 명출은 두둑이 챙겨준다는 것과 관아일하는 것이 좀 따분했던 까닭에 세상구경 해볼까하는 생각에 덥석 종을 운반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 수가 30명이었다. 사람 키 크기의 종을 수레에 싣고 길을 떠나던 날 종을 운반하는 책임자인 운종도감이라는 스님이 앞장서고 관아의 관원들과 병졸들이 따라 나섰다. 안동에서 영주의 죽령을 넘어 단양에서 남한강의 물길을 거슬러 오대산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안동 관아에서 출발하여 영주로 향하는 첫 번째 고개를 넘어 제비원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안동부의 관원들과 병사들은 돌아가고 그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다.

얼마 후 산모퉁이를 돌자 대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앞장서던 운종도감과 대군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인사를 나누고 그 대장의 지휘에 따라 행렬과 대군은 함께 죽령을 향해 이동했다. 병사들이 많아 분위기는 삼엄하였지만 그들이 종을 옮기는 것까지 도우니 일은 훨씬 수월했다. 명출은 이미 대군을 만날 때부터 이 행렬이 수상했다. 사람 키만 한 종을 하나 옮기는 것에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첫째 수상했다. 그리고 이 병사들이 안동 관아에서 함께 출발하지 않고 도중에 숨어서 합류한 것이 더욱 수상했다. 이것은 분명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병사 이외에도 이상한 옷을 입은 무리가 있었다. 그 무리 속에는 스님들도 많았다.

명출의 예상대로 첫날 밤 전투가 벌어졌다. 싸움이 붙자 명출은 그 이상한 옷을 입은 무리가 도사들과 무당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종을 지키기 위해 갖은 술법과 도술을 부렸다. 스님들도 염불을 외며 술법을 써서 종을 지켰다.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엄청난 싸움이 계속되었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어 죽령에 도착했다. 많은 병사들이 죽고 인근지역에서 많은 병사들이 지원을 왔다.

아직 안동에서 함께 출발한 종을 옮기는 일꾼들은 한명도 죽지 않았다. 죽령에 도착할 때까지 일꾼들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이상해진 일꾼이 몇 나타났다. 극도의 공포감에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저들을 데리고 계속 가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이른 저녁을 두둑이 먹고 얼마 안 되어 병졸들의 집합 북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고 병사들은 정해진 위치에 배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명령도 없었고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일꾼들은 수레 옆에서 몸을 낮추고 앉아 오늘도 공포의 밤을 지새워야한다.

"난 이런 일인 줄 몰랐어. 괜히 내가 한다고 했네. 내가 괜히 자네더러 같이 가자고 했네. 이봐! 명출이, 우리 살아갈 수 있겠지?"

얼굴에 작은 점들이 수북하게 박혀있는 최씨가 명출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오늘 밤 싸움이 시작되면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그때 저기 바위 아래에 숨읍시다. 죽은 듯이 있으면 분명 살 수 있습니다."

명출은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명출은 오른손으로 작은 장도를 만지작거렸고 그의 눈빛에는 초조함이 서려있었다.

사방을 살피던 명출은 산위에도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연습 삼아 불빛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명출의 초조한 눈빛은 병사들의 움직임을 쉼 없이 쫓고 있었고 그의 손은 계속해서 장도와 장도에 달려있는 붉은 끈에 집착하고 있었다.

"저……. 아버지."

박노인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장도와 붉은 끈을 만지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사랑방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겨우 말을 걸자 정신이 들어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은 뭔가 고민이 있는 듯 한 얼굴로 말을 걸었지만 아무 말을 못하고 있었다. 박노인은 만지작거리던 장도에서 손을 때고

"애비야! 무슨 일이냐?

라고 묻었지만 아들은 먼저 말을 박노인에게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

아들의 모습을 보던 박노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요 며칠 사또가 예전일과 여러 가지 들추어내서 답하러 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었는데, 어찌 뺑이가 안보이는 구나?"

라고 박노인이 묻자 뺑이 아버지는 갑자기 눈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아버지 다름이 아니오라. 뺑이가……."

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박노인은 눈썹이 아래로 축 쳐지면서 뭔가 불행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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