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의 미소
벽돌탑의 도깨비 - 33 <노스님의 미소>
뺑이가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는 곳에는 방금전 돌이가 삼천배를 한 무량수전이 있었다.
"여기가 극락이야. 아미타불은 극락에 계시는 분이시래. 그러니까 아미타불이 계시는 곳이니까 이 건물이 곧 극락이야. 무량수전이라는 것이 극락전의 다른 이름이야."
그리고 뺑이는 다시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석양을 가리켰다. 태양이 산봉우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기가 비로전이야"
뺑이의 말을 들으며 돌이는 석양을 바라봤지만 어디에 비로전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에 비로전이 있는거야?"
라고 돌이가 뺑이에게 물었다. 뺑이는 고개를 돌려 돌이를 바라보고 씨익하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저기 해가 떨어지는 저 산봉우리가 비로전이야."라고 말하고 소리내 웃었다.
"비로자나불은 빛을 뜻한데, 저기 태양이 곧 빛이잖아.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건물이 비로전이야. 그런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이 비로봉이라고 하셨어. 저기 태양이 걸려있는 저 산봉우리의 이름이 바로 비로봉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빛이 깃드는 곳,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비로봉이 바로 비로전이야.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의상대사는 중국에서 새로운 부처님을 모시고 오셨데 그분이 바로 비로자나불인데, 그분을 이땅에 모시고 와서 첫번째 지은 절이 바로 이절, 부석사야. 그런데 이절 어디에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 없잖아. 이 절에 비로자나불과 연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잖아. 여기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이 무량수전이 가장 중심 법당이야. 대신에 부처님의 계시는 서방세계에서 비로봉을 통해 빛이 비칠 때 바로 저곳이 비로전이 되는 것이지. 비로전이나 비로봉이나 결국 같은 말이야. 그리고 소백산에는 연화봉도 있어. 연꽃도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피는 꽃이잖아. 분명히 저기가 비로전이야."
돌이는 멍하니 뺑이와 석양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그때 노스님이 안양루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소리내 웃었다. 돌이와 뺑이는 웃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 머리를 멋으로 달고 다니는 밥만 축내는 밥통은 아니구나. 돌뺑이인줄 알았더니……. 허허허"
노스님은 돌이와 뺑이의 이름을 붙어 돌뺑이 즉 돌맹이라고 놀린 것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뺑이가 문제를 풀었구나. 저기 보이는 세상과 같이 부석사에는 많은 전설과 비밀에 숨겨져있단다. 뺑이가 그 가운데 하나를 풀어냈구나. 의상대사가 삼국통일이 이루어지던 때에 당시 중국의 당나라에 가서 화엄경을 공부했단다. 화엄경은 경전이야. 경전 알지? 책! 그 책은 비로자나불이라는 부처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면 쉽겠구나. 비로자나불은 세상을 비치는 빛같은 존재란다. 삼국이 통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쟁이 있으니 백성들은 목숨이 왔가갔다하는 암흑기에 살았던 거란다. 그때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불교가 필요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들을 위해 이곳에 극락전을 만들고 태양이 지는 저곳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이란다. 비로자나불은 석양이 질때 빛을 등지고 이곳 극락을 바라보시는 것이란다. 아까 뺑이가 말했듯이 이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화엄종을 배우고 신라로 돌아와 첫번째로 지은 절이란다. 의상대사가 중국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한다는 정보를 당시의 왕인 문무왕에게 알려 당나라와 신라의 전쟁에서 신라가 이기고 완벽한 삼국통일을 이루어낸단다. 그렇게 공을 세운 의상대사가 자신이 새로 들여온 사상으로 처음 짓는 절에 화엄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노스님은 뺑이를 도와 함께 돌이를 일으켜 요사채로 옮겼다. 둘에게 저녁을 챙겨 먹였다. 돌이는 삼천배를 하여 지쳐있었다. 노스님이 환약을 건네줘서 먹었더니 돌이의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도깨비는 낮부터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아이들은 노스님께 도깨비가 어디갔는지 아냐고 물어봤지만 노스님은 미소만 지었다. 어둠이 깔리고 풀숲에서 벌래들이 울기시작하자 하늘에선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요사채 밖에서
"스님! 스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대답 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돌이는 스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무척 귀에 익었다. 노스님은 잠시 후 방문을 열고 아이들을 불렀다. 돌이와 뺑이는 밖으로 나와 신을 신었다. 방안과 달리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둠 사이로 두개의 불빛이 반짝였다. 불빛의 주인은 도깨비였다. 도깨비의 눈빛은 온화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깨비는 어둠 속에서 노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스님과 도깨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얘들아, 너희들이 문제를 풀었구나."
하고 씨익 웃었다.
"이제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린 길을 떠나자. 스님 감사합니다."
라고 도깨비가 말하자 노스님이 입을 열었다.
"자, 비로전도 찾았고 극락전도 찾았으니 이제 현세불이 있는 대웅전을 찾아가거라. 자네가 가지고 있는 지도가 너희를 인도해줄 꺼야. 그 지도를 이래 주게."
하며 노스님이 도깨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깨비는 품속에 지도를 꺼내 노스님께 드렸다. 지도를 받아 든 노스님은 능숙한 손 놀림으로 지도를 접기 시작했다. 지도는 노스님의 손안에서 모습이 새로 변해갔다. 노스님은 지도를 접어 종이 봉황새를 만들었다. 그리곤 두손바닥에 종이 봉황새를 올려놓고 입을 가져가 입김을 불어넣었다. 순간 종이 봉황새는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노스님이 다시 한번 더 깊게 입김을 불어넣자 종이 봉황새는 날개짓을 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노스님의 긴 입김에 봉황색가 손바닥에서 파닥거리며 날아올랐다. 빛나는 종이 봉황새는 날개짓을 할 때마다 날개 끝과 꼬리 깃끝에서 빛부스러기가 부서져 내렸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눈이 휘둥거래졌다.
"자네가 아이들을 잘 돌보게. 이번 여행에서 자네의 생명은 이 아이들을 통해서 영원한 죽음과 삶으로 이어질 걸쎄. 자네의 미래에 어둠이 보이네. 미래를 잘 헤쳐나가기 바라네. 그 뒤에 반듯이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아이들아 너희는 절대 포기 하지 말고 이번 모험을 무사히 마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 편이 많다는 것을 잊지말아라. 어서 떠나거라. 봉황새가 너희의 길을 인도할 것이다."
도깨비이와 아이들은 노스님께 인사를 하고 새를 묶어둔 숲으로 뛰어갔다. 셋은 머리 둘 달린 새의 등에 올라탔다. 새는 가볍게 어둠운 하늘 속으로 날아올랐다.
셋은 하늘 위에서 땅위의 무량수전 쪽을 바라봤다. 무량수전 앞 석등이 은은하게 빛나고 그 옆에는 노스님이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노스님도 손을 흔들어보였다. 셋도 노스님에게 손을 흔들어 답하였다. 머리 둘달린 새는 다시 한번 크게 부석사를 선회했다.
도깨비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너희들 문제를 풀어내다니 대단하구나."하며 다시 칭찬을 하였다.
"뺑이가 문제를 풀었어요. 뺑이는 정말 많은 것을 알아요."라고 말하며 돌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뺑이를 치켜세웠다.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어요. 저희 할아버지는 역사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해주세요. 그러며 늘 역사를 알면 그 속에 미래로 가는 길이 보일꺼라고 하셨어요. 부석사는 이번에 처음 왔지만 할아버지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부석사는 정말 재밌는 절설이 많아요. 의상대사 전설, 당나라 미녀 선묘낭자 이야기,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나무가 된 이야기. 그거 이외에도 엄청 많아요."
"우리나라 절에 왜 당나라 미녀 이야기가 있어?"
돌이가 궁금한 듯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계실 때 당나라 미녀 선묘낭자를 만났는데, 선묘낭자가 의상대사를 무척 사랑했데. 의상대사가 급하게 당나라에서 떠나올 때 선묘낭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묘낭자가 용으로 변했다고 해.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는 의상대사가 탄 배를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했어. 또 그 용은 지금 무량수전 아래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등에 지고 있는 돌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그리고 부석사라는 이름도 선묘낭자 덕분에 생긴거야. 여기 절을 지을 때도 산적들이 의상대사를 방해했는데 선묘낭자가 나타나서 엄청나게 큰 바위를 들어서 던졌는데 그 돌이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한동안 떠있다가 지금 자리에 내려앉았는데 아직도 떠있다고 해. 그걸 본 산적들은 무서워 도망을 갔고 그 덕분에 이자리에 부석사를 지은거야. 지금도 명주실을 바위 아래로 통과시켜보면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데. 그 돌이 떠있다고 해서 부석사야. 한자로 뜰부(浮) 돌석(石) 절사(寺). 이렇게 해서 부석사야. 그리고 선묘낭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기리기 위해 선묘각을 만들었어. 저기 있는 건물이 선묘각이고 저기 저 돌이 부석이야."
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무량수전 옆 선묘각(동쪽)과 부석(서쪽)을 가리켰다. 그 때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량수전 서쪽 문 아래에서 돌로 된 거대한 용이 기어나왔다. 그러자 노스님이 느 돌로 된 용의 등에 올라탔다. 돌용은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셋은 놀라 그 모습을 계속 바라봤고 돌용이 날아오르면서 노스님과 세명의 서로 눈이 딱 마주쳤다. 노스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용에 탄채로 손을 흔들며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저 스님 뭐야? 저 용은 또 뭐야?"
라고 돌이가 놀라 입을 열자 뺑이가
"아무래도 저 스님은 아미타불같아. 저 용을 탈 수 있는 것은 내가 알기로 아미타불과 의상대사 밖에 없어. 의상대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돌아가셨어. 그러니 아미타불 아닐까? 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계시는 곳의 이름이 무량수전(無量壽殿)이거든. 저 스님 이상했어. 노인 같으면서도 아저씨같고 전혀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이잖아."
"그래, 나도 사실 스님의 나이가 무척 궁금했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라고 도깨비가 말을 받았다.
"분명! 스님, 아니 아미타부처님은 관세음보살과 아주 친해요.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보좌하거든요. 그래서 지도로 봉황도 만들고 우리에 대해서 아신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 스님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라고 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다시 한번 아미타불과 석용이 날아간 서쪽하늘을 바라봤다. 은하수가 안개와 같이 깔려있는 하늘 속으로 석용이 날아가고 있었다.
도깨비는 앞서 날아가는 빛나는 종이 봉황새를 따라 방향을 잡았다. 머리 둘 달린 새도 날개 짓을 힘차게 하며 빛나는 봉황새를 뒤따라 별들이 박혀있는 하늘 속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