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박힌 별자리
벽돌탑의 도깨비 - 38 <강물에 박힌 별자리>
처녀는 강물과 밤하늘을 번갈아보며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부터 신기하게도 밤하늘의 별 가운데 움직이지 않은 별자리가 보였다. 별자리가 나무에 걸린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늘의 별도 움직이질 않고 강물에 비친 별자리도 그곳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강을 오가면서 매일, 밤하늘을 보며 날씨를 읽는 방법을 배웠었다. 그녀의 부모는 소금 배를 끌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정착했다. 그녀의 부모는 자신의 부모들이 대대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배를 타고 바다와 하늘을 보고 길을 찾아서 떠돌아다니며 살던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하늘을 읽는 방법을 부모가 자식에게로 대대로 계속해서 전해줬었다. 하늘을 통해 물길과 날씨를 읽어내지 못하면 바다에서는 죽은 목숨과 같다. 그들의 전통으로는 배는 늘 어머니에게서 막내딸에게로 전해지는 재산이었다. 둘은 혼례를 치르고 친척이 사는 뭍에서 사람들의 일을 도우며 살아 보려했었다. 둘에게는 땅이 없으니 땅을 가진 사람이나 배를 가진 사람을 도와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혼례를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친척의 유산으로 작고 좋은 배가 하나 받았다. 당시 둘은 육지가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그래서 뭍에서 살아볼 생각이었다. 둘은 며칠 고민 끝에 강을 따라 육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육지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모험이라 소금장수들처럼 배에 소금 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가 마을에 소금을 팔아 그것으로 먹을 것을 해결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둘은 배에 소금을 가득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낙동강 하류에는 이미 다른 소금장수들과 오랜 세월 거래를 하던 고객들이 있어 소금을 팔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점점 상류로 올라가자 산세도 달라지며 하늘이 점점 좁아졌다. 함께 출발한 소금장수들의 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류로 올라오자 소금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둘은 소금을 빨리 파는 것 보다 더 상류로 올라가고 싶었다. 며칠에 한 번씩 강가 마을에 소금을 팔고 상류로 상류로 올라갔다. 강물의 양이 줄어들고 강의 폭도 많이 좁아졌다. 사람들의 말투도 많이 달라졌다. 여울을 만나면 배의 밧줄을 당겨 배를 몸으로 끌고 올라갔다. 도중에 비가 오는 날에는 소금을 비에 젖지 않도록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또 며칠을 이동해 상류로 올라가고 큰 마을이 있으면 배를 강가에 숨겨 놓고 둘이서 마을 구경도 하고 장이 서는 곳에까지 가서 장을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간혹 나루를 지키는 관원들에게 소금을 뺏기는 일도 있었지만 여행은 계속되었다.
한 달여 만에 안동에 도착했다. 700리를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부부는 앞으로 태백까지 600리가 남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태백 황지에 도착하면 낙동강이 끝이 난다. 낙동강은 태백에서 부산까지 1,300리가 이어져있다. 안동에서 낙강과 동강이 만나 낙동강이 되고 부산까지 700리이다. 부부는 낙강과 동강이 만나는 곳까지 도착했다. 물이 만나는 곳 가까이에 왼편에 개목나루라는 나루가 있었다. 개목 나루 쪽을 따라가면 태백이 나오는 낙동강 본류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반변천이며 영양 일월산으로 이어진다. 부부는 개목나루에서 개목나루 뱃사공의 소개로 마지막 소금을 팔았다. 이제 더 상류로 가고 싶어도 팔 소금이 없으니 여행을 계속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 내년에 또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 동안 소금을 팔아 모은 돈을 챙겨 강물을 따라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그만 둬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하늘을 통해 보는 앞으로의 날씨가 영 수상했다. 아무래도 아주 큰 비가 내리거나 태풍이 몰려올 날씨였다. 그나마 큰 고을인 안동 어딘가 안전한 곳에 배를 메어놓고 며칠 두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개목나루 뱃사공에게 큰비가 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함께 배를 안전한 산 중턱까지 끌어올려 메었다. 그리고 뱃사공을 도와 배를 띄울 수 없을 때까지 사람들을 태워날랐다. 며칠을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렸다. 그 가운데 갑자기 긴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아내가 병이나 누웠다. 큰비로 홍수가 났다. 그로인해 안동이 물바다가 되었다. 산은 사태가 나고 무너진 집과 강물에 떠내려간 집들도 많았다. 강물의 물길도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런 가운데 남편은 아내를 업고 의원을 찾고 몇날며칠을 간호하여 보름 만에 아내가 병에 나아 일어났다. 정말 남편과 개목나루 뱃사공은 아내가 죽는 줄로만 알았다. 보름동안 의원을 찾아다니고 약을 사 먹이고 하느라 소금을 팔아 모아둔 것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리고 생사를 헤매다가 겨우 정신을 찾는 아내를 데리고 다시 배를 타고 하류로 가려하니 개목나루 뱃사공이 한사코 말렸다. 함께 큰 홍수를 견뎌내며 남편의 사람됨이 맘에 들었다.
“이보게, 큰 홍수가 났으니 무너진 곳도 많고 고쳐야할 곳도 많고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네. 여기 나루를 지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저런 부탁을 하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네. 아픈 아내를 데리고 어딜 간단 말인가? 아내가 건강을 완전히 찾을 때까지는 내가 소개해주는 곳에서 일을 하며 지내시게.”라며 뱃사공과 그의 부인이 손을 잡고 부탁을 하였다. 부부는 그렇게 하여 안동에 살게 되었다. 남편은 한동안 남의 집일을 도왔고 얼마 후 개목나루 뱃사공의 소개로 성성산의 늙은 뱃사공이 죽어 뱃사공을 구한다며 같이 가보자고 하여 개목나루 뱃사공의 소개로 청성산 뱃사공 일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아내는 옛날처럼 건강을 되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가져 그녀를 낳았고 그 후론 다시 바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요양하며 살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를 따라 내륙 깊이 들어와 살게 되었지만 매일 밤 다음날의 날씨를 읽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늘의 모든 별은 북극성을 제외하고 동산에서 올라와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다시 서산으로 내려앉는 것이 이치인데 서북쪽에 있는 별자리가 계속해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별이 하나만 그렇게 떠있는 것이 아니라 가늘게 길쭉한 병 모양을 하고 있는 별자리였다.
'시간이 나면 별자리를 향해 가봐야겠어. 분명 하늘이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이 틀림없어.'
날이 밝자 소녀는 오전 내 배를 몰아 나루터를 건너다녔다. 배에 사람이 어느 정도 타면 배를 몰아 강을 건너는데 소년하나가 배에 아직 탈 자리가 있는 데에도 배에 타질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야! 너 안 탈꺼야? 그냥 건너간다. 혹시 뱃삯이 없니?”하고 묻자
소년은 잠시 옆을 돌아보며 뭔가 혼자 중얼 중얼 거리더니
“뱃삯있어요.”하며 배로 다가왔다.
“혹시 허씨라는 뱃사공 할아버지를 찾는데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라고 소년은 배로 다가와 물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인데, 무슨 일로 그러니?”
“아! 할아버지 뱃사공일꺼라고 생각했는데 누나가 배를 몰고 있어서 잘못 왔나했네요. 뱃사공 할아버지를 뵐 수 있겠죠?”
“무슨 일로 그러니?”처녀는 고개를 꺄웃 거리며 소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