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씨 뱃사공
벽돌탑의 도깨비 - 39 <허씨 뱃사공>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알고 있니?”라고 처녀가 묻자
“제비원의 목수 아저씨가 허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 뱃사공을 만나라고 했어요.”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무슨 일로 우리 아버지를 만나려고 그러니?”처녀는 다시 물었다.
“제비원 목수 아저씨가 허씨 할아버지께서 제가 가려는 곳으로 배를 태워줄 것이라고 했어요.”
“난 제비원 목수가 누군지 모르는 걸.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그래서 이제 만날 수가 없단다. 그런데 넌 혼자서 어딜 가려고 그러니?”라고 소년 혼자 배를 타려고 하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 처녀는 다시 물었다.
“전 지도를 따라 가고 있어요. 아직 제가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어요. 서쪽으로 가면 그곳이 나와요.”라며 강 하류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강을 건널꺼면 일단 배에 오르렴. 사람들이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잖니.”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돌이의 손을 잡아 당겨 올렸다. 그리고 삿대로 땅을 밀자 배가 스르륵 강으로 미끄러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처녀는 배가 사람 수 보다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사방을 살피고 또 살폈지만 배가 무거울 이유가 없었다. 처녀의 눈에는 감투를 쓴 도깨비가 보이질 않았다. 소년은 배의 돛대 옆에 앉았다.
“옛날에 목수 아저씨가 뱃사공 할아버지께 배를 만들어 드렸데요. 그래서 제비원 목수라고 하면 원하는 곳까지 태워줄 것이라고 했어요.”
“이 배를 만들어준 목수인 모양이구나. 하지만 난 일이 있어서 널 태워줄 수 없단다. 미안하구나.”라고 말하며 삿대를 다시 밀었다. 배가 강 가운데로 나아갔다. 배가 점점 깊은 속으로 들어가자 처녀는 삿대를 걷어 올리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노를 저으며 처녀는 간간히 돌이를 힐긋힐긋 쳐다봤다. 처녀가 한참동안 노를 저어 배가 이윽고 반대쪽에 닿았다. 배가 닿는 순간 검은 옷의 칼 든 사내들이 배위로 뛰어 올랐다. 돌이는 깜짝 놀랐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 사이에서 긴 수염의 사내와 함께 다니던 막내가 모습을 나타냈다. 막내는 배로 성큼 올라 사람들을 뚫고 지나쳐 소년에게 다가갔다. 뱃사공 처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일단 쳐다만 보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구나.”라고 막내는 말하며 돌이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아이를 내놓으세요.”
여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사또는 뺑이를 잡아 두고 박노인을 불러들일 생각이었으나 그의 생각과 달리 일이 꼬였다. 긴 수염의 사내가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후 나머지 네 명과 도사들이 긴 수염의 사내를 살려보려고 며칠간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수염이 긴 사내의 시체를 챙겨 관아로 돌아왔다. 그들은 관아에 도착해서 부상자의 상처를 돌보고 무기와 식량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잡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또를 찾아갔다. 사또는 무엇인가를 숨기는 듯 했다. 실랑이 끝에 돌이가 아닌 뺑이가 잡혀온 것을 알게 되었다.
“사또, 왜? 아이를 숨기십니까? 저 아이를 조사해야 도깨비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대장을 잃은 그녀는 사또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사또도 별말 할 수도 없이 뺑이를 막내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막내와 도사들은 뺑이를 병풍이 펼쳐진 공간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뺑이를 별자리 문양 안에 앉히고 주문을 외워나갔다. 뺑이는 눈꺼풀이 무거워져 눈이 저절로 감겼다. 뺑이가 주문에 걸리자 막내가 그의 몸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 넌 아이들과 들판을 뛰어 놀고 있었어. 친한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어. 그런데 상여행렬이 보여. 상여가 보이니?”라고 막내는 뺑이에게 말을 걸었다. 뺑이는 잠이 들었는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네, 상여가 보여요.”라고 뺑이가 말문을 열었다. 막내는 뺑이가 강물에 떨어져 저승으로 넘어간 것부터 머리 둘 달린 새에 타고 부석사를 찾아가고 봉정사를 거쳐 제비원까지 갔던 이야기를 세세히 했다. 그곳에서 돌이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것을 이야기 했다. 막내는 뺑이에게 돌이가 청성산 아래에서 허씨 성을 가진 늙은 뱃사공을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내는 무리를 이끌고 청성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청성선 나루 건너편에 도착한 무리는 좀처럼 강 건너에서 출발하지 않는 배를 기다렸다. 뭔가 실랑이가 있는 모양으로 보였다. 천천히 배가 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에 돌이가 타고 있는 것이 막내의 눈에 확인되었다.
막내는 돌이의 팔을 당기며 물었다.
“도깨비는 어디 있니?”
“여기 오는 길에 헤어졌어요.”라며 돌이는 도깨비가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막내에 손에 돌이는 배 밖으로 끌려갔다. 돌이와 막내가 배에서 내리자 나머지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도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던 사람들도 하나 둘 배에서 내려 자기 갈 길을 갔다. 사람들은 돌이와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괜히 그들에게 잡혀 낭패를 보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본체만체 자기 길을 갔다. 처녀 뱃사공은 가만히 그들이 돌이에게 뭘 하려는지 바라봤다. 배에서 사람이 모두 내린 후 배가 살짝 물 위로 떠오르는 느낌을 처녀는 느꼈다. 처녀로써는 알 수 없는 존재, 그리고 강을 건너면서 계속 의심하던 존재가 배에서 내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처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가 땅에서 밀려 강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배를 강으로 밀어낸 것이다. 막내는 돌이를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이미 다른 무리가 숲속에 병풍을 치고 바닥에 별자리를 그려놓았다. 돌이를 별자리 문양에 앉히려는 순간 알 수없는 존재가 막내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막내의 몸놀림은 빨랐다. 돌이의 손을 놓고 칼을 뽑아 의심스러운 곳을 베었다. 그녀의 손에 느낌이 왔다. 분명 베었다. 검은 옷의 무리들 가운데 휘청거리는 도깨비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깨비감투가 잘렸다. 그 때문에 도깨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도깨비도 칼에 베였다. 도깨비가 잠시 방심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검은 옷의 무리가 도깨비를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휘청거리던 몸을 추슬러 오른쪽 발로 막내를 걷어 차버렸다. 막내는 칼로 도깨비의 발을 막았지만 사정없이 날아가 펼쳐놓은 병풍에 내다 꽂혔다. 막내가 날아가 병풍에 부딪히는 것을 볼 사이도 없이 검은 옷의 사내들이 도깨비에게 칼을 휘둘렀다. 도깨비는 긴 손톱으로 칼날을 쳐내고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하자 굉장한 위력으로 바람이 붕붕 일어났다. 막내가 부서진 병풍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도깨비와 동료들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의 맹렬한 공격은 도깨비가 휘두르는 도깨비 방망이 때문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도깨비는 갑자기 돌이에게 달려가 돌이를 한쪽 팔로 안고 뛰어 올랐다. 그렇게 몇 번을 펄쩍펄쩍 뛰어 강을 향했다. 뒤이어 막내와 검은 옷의 사내들도 도깨비를 따라 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루에 도착하자 도깨비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나루터의 끝을 박차고 몸을 날려 처녀의 배로 날아들었다. 처녀로써는 본적 없는 괴물이 돌이를 끼고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배로 날아드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깨비가 배에 착지하자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뒤이어 검은 옷의 사내들이 배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도깨비가 그들이 착지하기 전에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공격을 했다. 검은 옷의 무리들은 칼로 도깨비의 공격을 막고 튕겨 강물에 떨어졌다. 뒤이어 나루터의 무리들이 강물에 떨어진 자들을 발판으로 도약하여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왔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이렇게 싸울 생각으로 배를 강 가운데까지 밀어둔 터라 여유 있게 날아오는 자들을 하나하나 강으로 사정없이 빠뜨려버렸다. 몇몇이 헤엄을 쳐서 배로 오르려했다. 이 또한 돌이와 처녀가 삿대로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지만 사내들은 그 삿대를 이용해 몸을 날려 다시 배로 뛰어들었다. 세 명이 그렇게 배에 올랐지만 도깨비가 가볍게 발로 차서 다시 강 속으로 날려버렸다. 배는 점점 강 하류로 떠내려갔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더 이상 직접 배로 뛰어들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강변을 따라 계속해 배가 떠내려가는 하류로 따라 움직였다.
“이제 어쩌죠?”라고 돌이가 도깨비에게 물었다.
“지도를 꺼내보자꾸나.”라고 도깨비가 말하자 돌이가 품속에서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지도를 펼쳐봤다. 지도는 강 하류를 서쪽을 향하라고 나타나있었다.
“강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겠는데요.”라고 돌이가 지도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도깨비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 것인지 대답을 기다렸다. 그 때,
“그럼 함께 하류로 가죠. 제가 태워드리죠. 며칠 동안 계속해서 하늘의 별자리가 움직이질 않아 꼭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함께 가요.”라고 하면 머쓱해하며 도깨비를 바라봤다. 인사도 나누기 전에 주고받은 대화라 도깨비도 머쓱해했다. 도깨비가 씨익 웃어 보이며 동행을 허락하자 처녀도 웃어서 답을 했다. 배는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