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44

찢어진 책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44 <찢어진 책>

박노인은 순덕이네 집을 뒤로하고 관아를 향했다. 이미 해는 떨어져 어두웠다. 한참 길을 가다보니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렀다. 길옆에 작은 당집이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박노인 키 크기의 작은 장승이 둘 서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삐죽 튀어나온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박노인은 장승을 지나치려하자 뒷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뒤쪽 장승의 눈알이 움직였다. 깜짝 놀란 박노인은 유심히 장승을 쳐다봤다. 가만히 보니 장승이 아니었다. 사람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사람인가 싶어

“깜짝 놀랐소. 귀신인가 했소. 그래 서있으니 천상 장승같아서…….”

박노인의 말이 끝날 무렵 박노인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 도깨비라는 것을 알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놈. 썩 물러가라. 훠이 훠이”

“허허허, 노인장 기다리고 있었소. 해치려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오.”

도깨비는 성큼성큼 박노인에게 다가갔다. 박노인은 뒷걸음질 치며 허리춤에 있는 단도에 손을 옮겼다. 그리고 칼을 쓰기 위해 도깨비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도깨비가 팔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 들어왔다. 다가온 도깨비는 피리였다. 피리를 모르는 박노인은 순간 칼을 휘둘렀다.

“이크”

피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이놈 다시 와봐라. 내가 그리 호록호록해 보이느냐?”

박노인은 한 번의 실패가 분했다. 첫 번째 공격의 실패로 피리를 처리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생각했다.

“어허. 노인장, 왜 이러시오? 난 당신을 만나러왔소. 관세음보살님이 당신에게 전해주라해서 왔소만. 아……. 돌이라고 아시오? 돌이라고 하면 알꺼라고 하던데, 일전에 관아에서 아비가 죽은 아이 말이오.”

피리의 말을 들은 박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피리를 쳐다봤다.

“이걸 받으시오. 얼마 전에 숲속을 헤매던 사람에게서 뺏은 물건이오. 이걸 당신에게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들었소.”

피리는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박노인에게 전했다. 박노인이 서찰을 받아들자 피리는 도깨비불을 만들어 박노인이 서찰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줬다. 박노인이 서찰의 봉투를 뜯자 봉투안에서 매화를 많이 채색하다만 그림과 편지 그리고 책을 몇장 찢어 놓은 것이 나왔다. 박노인은 이것이 순덕이 아버지가 잃어버린 물건임을 알았다. 그리고 내용물을 읽어 내려갔다. 책장의 종이가 합쳐진 부분에 삼국유사라는 글자가 보였다. 박노인은 매화 그림에 그려진 꽃잎의 수를 세어봤다. 매화가 81송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채색이 이루어진 꽃은 몇 개 없었다. 편지글은 글씨가 시원시원했다. 그리고 겉봉투에 받는 사람이 적혀있었다. 박노인은 봉투에 다시 내용물을 넣자 피리가 입을 열었다.

“날 가지고 가쇼. 내가 도움이 될 것이오. 난 피리라오.”

노인이 대답도 하기 전에 도깨비는 변신하여 정말 악기 피리가 되어버렸다. 박노인은 피리를 챙겨들고 관아로 향했다. 얼마 후 박노인은 관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삼문을 지키는 나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송나졸 있으면 좀 불러주시게.”

나졸은 얼굴에 귀찮다는 듯 대답도 않고 인상을 그리며 삼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송나졸이 삼문으로 나왔다.

“아직 있었군. 이보게 종은 아직 관아 마당에 있는가?”

“네. 어찌 그러십니까?”

“내, 자네는 미더워 말하는 것이니 들어두시게. 저 종 도깨비를 움직이는 종일세. 삼국유사를 보면 진지왕의 아들 비형랑이라는 자의 이야기가 있네. 이자는 종으로 도깨비를 불러냈고 종으로 그들을 조종했다고 하네. 그리고 이 종은 도깨비를 부리기 위해서 성덕대왕 때 만들어진 종이라는군. 지난번에 이야기 했듯이 그 종은 원래 안동에 관아에 있던 것을 내가 50년 전에 옮겨서 상원사에 가져다 놓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안동에 나타난 것일세. 하지만 내가 숨기고 있던 부분이 있네. 종의 잘려나간 젖꼭지는 종이 움직이지 않아 잘라낸 것이 아니라네. 죽령 아래에서 큰 싸움이 있었어. 종을 옮겨가려는 자들과 도깨비들의 싸움이었지. 그때 도깨비들이 종의 젖꼭지를 잘라 가버렸어. 그땐 몰랐는데 한양에서 온 서찰에 모든 것이 적혀있네. 신라시대에 도깨비들을 군대로 사용했다네. 엄청나게 강력한 군대인데. 왕만이 그 힘을 가질 수 있었지. 신라가 망하고 그 힘이 도깨비들의 수장에게 전해지고 모두 잊고 살았던 모양이야. 50년 전에 그것을 간신들이 알아내고 종을 차지하려고 했던 거라네. 지금 저 종에 떨어져나간 부분을 붙이면 다시 그 힘이 돌아온다고 하는군. 그걸 막아야하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서찰을 부탁하네.”

박노인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 서찰을 송나졸에게 전했다.

“무슨 일이라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거 큰일이네요. 성수청과 소격서에서 모두 여기 진을 치고 있으니 어떻게 한답니까? 지금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모양입니다. 좀전에는 죽은 이서방의 시신이 다시 관아로 들어왔습니다.”

“그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장사 지낸 사람의 시체가 다시 관아로 왔다고?”

“성수청 무리들이 무덤을 파헤친 자들을 모두 잡아왔습니다. 시체도 그들이 들고 들어왔습니다.”

“무덤을 파헤쳤다고?”

죄수가 저승사자를 달려들어 저승사자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상상도 못한 급작스러운 죄수의 공격에 저승사자들은 당황했다. 죄수는 무기를 휘두르며 저승사자를 제압해나갔다. 돌이와 돌이 아버지가 도깨비에게 달려가 풀어주려고 오랏줄을 잡았다. 손간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둘은 손에 화상을 입었다. 그 소리를 들은 죄수는 몸을 돌렸다. 이서방과 돌이가 손을 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죄수는 몸을 날려 칼날로 오랏줄을 내리쳤다. 오랏줄이 두 동강 나면서 도깨비가 오랏줄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저승사자들을 향했다. 순간 자신의 배에 공허함이 느껴졌다. 저승사자의 창이 배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죄수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도깨비가 주위의 저승사자를 제압했다. 몇몇은 도깨비를 이기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로써 잠시 시간을 벌었다. 도깨비가 죄수 쪽으로 몸을 돌리자 죄수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고 있는 돌이를 발견했다. 죄수는 긴 수염의 사내였다. 창이 꽂혀있던 곳이 점점 검은 공간으로 변해갔다.

“난 틀린 것 같소. 점점 소멸되어가고 있어.”

자신의 배에 생긴 검은 구멍을 보고 긴 수염의 사내가 말했다. 그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돌이가 허리춤에 있던 호리병을 이서방에게 건네줬다.

“여길 같이 빠져나갑시다. 아마 저 약을 먹으면 당신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오.”

도깨비가 손가락으로 호리병을 가리켰다. 이서방이 그 말을 듣고는 호리병의 마개를 열어 생명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것을 긴 수염의 사내에게 건네줬다. 긴 수염의 사내가 생명수를 마시자 배에 뚫린 검은 공간이 서서히 없어져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걸 확인한 도깨비가 일행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저승의 눈 셋 달린 개들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저승사자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 둘 달린 새를 놓아둔 곳을 보니 개 몰이꾼 하나가 긴 막대로 새를 끌고 가려고 후리고 있었다. 도깨비는 몸을 날려 개 몰이꾼을 공격했다. 그리고 새 등에 올라탔다. 새가 날개 짓을 하며 날아오르자 저승사자들로부터 화살이 날아들었다. 도깨비는 방망이로 그것들을 쳐냈다. 그리고 새가 퍼덕퍼덕 거리며 이서방 쪽으로 다가가자 건물 모서리를 끼고 눈 셋 달린 개떼들이 미끄러지며 달려왔다. 도깨비는 새를 조종해서 개떼를 날개 짓으로 잠시 쫓고 새의 두 발톱으로 이서방과 긴 수염의 사내를 움켜쥐게 했다. 둘을 움켜쥔 새는 무게감을 느껴 퍼덕거리는 것에 비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삐익하는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하늘 저편에서 불덩어리가 솟구쳐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도깨비는 새의 고삐를 당겨 급하게 다시 돌이를 향해 움직이게 했다. 새는 날개로 땅바닥을 치며 저공으로 날아 겨우 돌이를 오른쪽 머리의 부리로 물어 올렸다. 왼쪽 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자 날개 짓과 함께 새의 몸통도 따라 솟구쳤다.

간발의 차로 좀 전에 돌이가 서 있던 곳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개 몰이꾼들의 돌팔매질에 돌멩이들이 새의 주위를 휙휙 날아다녔다. 그리고 연속해서 화살이 팽팽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도깨비는 방망이로 날아오는 것을 계속해서 후려쳤다. 간신히 돌멩이와 화살이 도달하지 않은 곳까지 날아올랐다. 돌이는 새의 부리에서 겨우 도깨비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잠시 뒤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 새를 탄 추격대들이 따라붙었다.

“큰일 났어. 이놈 화살에 맞았어.”

긴 수염의 사내가 새의 배 부분에 화살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화살에 박힌 부분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날아가긴 힘들 것 같아. 출구를 빨리 찾아야해.”

도깨비는 말을 끝내고 곧 바로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지도를 펴자 다시 지도의 그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지도가 완성되지 못한 그 때 화살 하나가 지도를 뚫고 날아 가버렸다. 지도에 구멍이 생겼다. 지도의 지형들이 멋대로 꼬여서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화살이 새의 몸에 꽂혔다. 추격대가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 머리 둘 달린 새는 힘이 빠져 긴 수염의 사내를 놓아버렸다. 다행히 긴 수염의 사내가 새의 다리를 잡고 기어올라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도깨비 아저씨! 잠깜만요. 지도를 뚫은 화살이 안보여요. 지도를 뚫으면서 사라졌어요.”

도깨비가 화살이 날아간 쪽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돌이는 지도를 뒤집으며 앞뒷면을 살폈다. 구멍만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만요. 구멍 안에 뭔가가 보여요. 돌이가 구멍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지도의 뒤면 구멍으로 팔이 뚫고 나오지 않았다. 돌이가 외쳤다.

“이것 봐요.”

돌이의 손에서 팔꿈치까지가 지도의 구멍 속에 들어가 있었다. 도깨비는 몸을 기우려 이서방과 긴 수염의 사내를 새의 등위로 끌어올렸다. 그 순간 새가 곤두박질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이가 도깨비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 새가 바닥에 처박혔다.

돌이는 지도의 구멍 속에서 작은 도깨비들이 보였다.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잠시 후 반대쪽에서 돌이의 손을 집어 당겼다. 깜짝 놀라 도깨비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지도의 구멍 속으로 한 명 한 명 당기는 힘에 끌려들어갔다.

돌이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안경을 낀 도깨비였다. 지난번에 돌이와 뱃사공 처녀를 치료해줬던 도깨비였다. 이서방, 긴 수염의 사내, 도깨비까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한 돌이가

“어떻게 된 거죠?”

안경을 낀 도깨비에게 물었다.

“뭐가 말이냐?”

“어떻게 저승과 여기가 연결되어 있나요? 우리가 어떻게 여기로 온 것이죠?”

“니가 먹은 약 때문 아닐까? 부작용이 있어. 우리 쪽 세계의 귀신들이 보이지. 저 지도가 우리와 너의 연결고리를 해준 것 같구나.”

안경을 낀 도깨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이야, 첫닭이 울기 전에 약속장소로 가야해. 시간이 없다.”

도깨비가 돌이를 재촉했다. 도깨비의 말을 들은 안경 낀 도깨비가 약속장소에 가장 가까운 문을 열어줬다. 서로 인사를 급하게 나누고 돌이 일행 넷은 이승으로 연결되는 문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작은 오두막의 아궁이로 튀어나왔다.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사방을 살폈다. 법흥사 옆이었다. 옆에 7층으로 만들어진 벽돌탑이 보였다.

“어머니? 어머니?”

돌이가 7층탑으로 뛰어가 외쳤다. 탑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돌이 엄마였다.

“돌이야 이쪽이다.”

돌이 엄마를 확인한 돌이가 뒤돌아보며

“아버지 이쪽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왔어요.”

돌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서방의 혼령이 돌이 엄마쪽으로 다가갔다. 돌이 엄마는 이서방이 보이지 않았다. 돌이 엄마가 시체를 감아뒀던 천을 벗기기 시작했다. 시체에는 생기가 느껴졌다. 이서방이 자신의 몸을 보더니 다가가 형체와 형체를 겹쳤다. 잠시 후 이서방이 눈을 떴다. 이서방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고개를 돌리고 달을 쳐다봤다. 첫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도깨비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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