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45

벽돌탑의 도깨비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45 <벽돌탑의 도깨비>

막내는 잡아온 마을 사람들 가운데 돌이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걸렸다. 막내는 시신을 지고 온 풍산아재에게로 다가갔다.

“그 아이의 어미는 어디에 갔느냐? 이서방의 부인 말이다.”

“예? 누구요? 돌이네 말입니까? 집에 누워있겠죠?”

풍산아재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돌렸다.

“여봐라. 시신을 확인해라.”

막내가 흰옷의 사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내들이 풍산아재에게서 시신을 빼앗아 감아놓은 천을 풀기 시작했다.

“그럼 이 시신은 무엇이냐?”

“요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꾸 일어나서 걱정을 했는데 당골네 말이 얼마 전에 시집 못가고 죽은 처녀 분이의 귀신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이장하는 중이었습니다. 혼례도 안 치른 분이가 죽어서 명당에 묻어주지 않은 것이 이 사단을 불러왔다고 했습니다. 안그래요? 당골네.”

풍산아재가 당골네에게로 말을 넘겼다.

“네. 점괘에 그렇게 나왔고 신령님께서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라고 해서 이장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밤중에 이장을 하는 것이냐?”

막내는 의심스러워하며 당골네에게 물었다.

“점괘에 늦은 밤이 제일 좋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과 이장을 했습니다. 아이구 우린 분이가 불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천이 풀리고 시신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신은 동네 사람들의 말처럼 죽은 분이었다.

‘당했다. 요놈들 봐라.’

막내는 화난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표정을 무리해서 온화하게 했다. 그 모습이 더욱 괴상한 인상을 만들었다.

“이자들을 풀어줘라.”

“네?”

“내 말이 안들리느냐? 풀어주란 말이다.”

동네사람들은 시신을 천으로 감아 지게에 지고 관아를 빠져나왔다. 관아 동쪽으로 가는 그들을 보며 막내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들을 놓치지 말고 따라가자.”

돌이네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돌이네 가족이 눈물을 멈추고 도깨비를 쳐다봤다. 도깨비는 돌이네 가족이 눈물을 멈추자 긴 수염의 사내를 향해 말을 했다.

“진 빚도 있고 하니 여기까지만 같이 합시다. 당신은 당신 몸을 찾아가시오.”

“나도 당신들에게 진 빚이 생겼으니 다음에 이 빚을 꼭 갚겠소.”

긴 수염의 사내는 눈인사를 하며 그들에게 다짐을 하고 관아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관군과 저승사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소. 누군가 곧 우리를 쫓아 이곳에 나타날 것이오. 이제 움직입시다.”

도깨비의 말을 들은 돌이네 가족의 얼굴에는 근심이 드리워졌다. 돌이 어머니가 도깨비를 향해 말했다.

“관아에 마을 사람들이 잡혀있어요. 돌이 아버지 시신을 찾아오다가 잡혀간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어떡하죠?”

“일단 자리를 피하고 생각을 합시다.”

“집에 어머니가 계세요. 연세가 많아서 우린 먼 곳을 못갑니다.”

도깨비로써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들이 안동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소백산이나 태백산 쪽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살아야 관군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데 늙은 노인을 지금 데리고 간다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도깨비와 어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돌이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실 수 있도록 남겨두고 도깨비와 이서방 그리고 돌이가 함께 가족이 살 곳을 찾아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길을 떠나려는 순간 한무리의 사람들이 7층전탑 쪽에서 나타났다.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돌이 일행과 거리가 있었지만 곧 서로를 누군지 곧 알아봤다.

“이서방!”

“풍산아재!”

“아이구, 꿈 같네. 그래. 몸은 어떤가? 괜찮은가?”

이서방과 풍산아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을 사람들이 이서방을 감싸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산 쪽으로 물러나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돌이 어머니가 풍산아재에게 말을 걸었다.

“관아에서는 별일 없으셨어요?”

“관아에선 깜짝 놀랐죠. 그들은 분이의 시신이 나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흐흐흐. 이제 분이 시신을 보아둔 명당자리에 묻고 제사를 지내줘야죠.”

그때 동네 사람들 뒤쪽에서 박노인이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이보시게들 이야기 좀 하세.”

박노인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자 때문에 이쪽저쪽 조사를 해봤네. 이번 일들의 문제는 관아에 있는 종일세. 그 종을 차지하려고 한양에서 성수청의 무당들과 소격서의 도사들이 안동으로 모여든 것이야. 그 종을 50년 전에도 가져가려고 했었지. 도깨비, 당신은 알 것 아니오. 그 종을 그들이 노리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 종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소. 종을 차지한자가 나 같은 도깨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오. 쉽게 말해 도깨비 군대를 조종할 수 있는 지휘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오. 50년전에 종의 일부분을 잘라서 그 힘을 없애버렸는데 이번에는 그 떨어진 부분을 찾기 위해 그들이 안동을 찾아온 것 같소. 종에 떨어져나간 부분을 붙이면 다시 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 종의 유두는 어디 있소?”

박노인의 말에 도깨비가 품안에서 종의 파편인 유두를 꺼냈다.

“이것이오.”

“맞군. 맞아. 50년 전에 죽령아래에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맞아. 조만간 세상이 뒤집힐 것이오. 몇 해 전 개혁파인 정암 조광조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난 성수청과 소격서를 간신들이 이번 일에 끌어들인 것이오. 간신들이 성수청과 소격서의 복수로 정암 조광조를 숙청하고 다시 궁궐 안에 성수청과 소격서를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소. 그리고 대신 안동에 있는 종을 자신들에게 가져올 것을 명한 것이오. 그렇게 되면 정치적으로도 군사력으로도 그들이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오. 정암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파의 숙청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지만 종을 빼앗겨서는 아니 되오. 종은 반드시 지켜야하오. 그들이 도깨비들을 마음대로 지휘하는 권력을 잡는다면 그 누구도 그들의 권력에 대항하지 못할 것이오.”

“유두를 그들에게 빼앗기면 아니 된다는 말이군요. 영원히 저들의 손에 들어가게 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이서방의 말에 도깨비가 침울하게 말했다.

“부숴버리는 수밖에 없겠지. 이 종을 가진 자들의 명령을 따라 우리는 많은 싸움을 했었지. 때론 권력자들의 위해 싸웠지. 하지만 세상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 때 종을 통해 우린 세상을 위해 싸웠어. 유두를 부수어버리면 정말 종의 힘이 필요할 때 쓸 수가 없게 되겠지.”

도깨비의 대답이 끝날 때 강 건너 산에서 해가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말을 듣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는 목수였다. 잠시 전부터 임청각 쪽에서 일꾼들의 집짓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방법이 있소. 유두를 봉인해버리면 될 것이오. 부처님의 힘으로 7층전탑 아래에 봉인하면 누구도 쉽게 유두를 꺼낼 수 없을 것이오. 내가 봉인 하는 방법을 알고 있소. 결정을 하시오.”

목수의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옆에 있는 벽돌탑을 쳐다봤다.

“내가 뭐라더냐? 놓아주고 쫓으면 된다고 했지? 저기 도깨비가 있다. 먼저 도깨비를 공격하고 그 사이 아이를 인질로 잡아라. 그러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산 귀퉁이에서 몸을 숨기고 막내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낙동강변과 산속으로 이동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곧 강 건너 산에 해가 떠올랐다. 잠시 뒤 삐이 하는 피리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산속으로 포위해간 무리들이 와아 하고 쏟아져 나와 도깨비를 공격했다. 도깨비 쪽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동네사람들은 반대편인 7층전탑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번에는 강변에서 한 무리가 뛰어 올라와 동네 사람들을 감쌌다. 동네 사람들을 잡은 무리는 몇몇만 남겨 벽돌탑 아래에 사람들을 모아두고 나머지는 도깨비와 싸우는 곳으로 합세했다.

그리고 곧 관아에서 나졸들이 몰려들었다. 긴 수염의 사내의 명령과 함께 나졸들은 창을 들고 긴 수염의 사내를 뒤따라 도깨비에게로 뛰어갔다. 긴 수염의 사내도 몸을 날려 싸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던 나졸들은 누구 하나 싸움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졸들은 싸움하는 곳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넋을 놓고 싸움을 구경할 뿐이었다. 군교는 싸움하는 곳 보다 벽돌탑 쪽에 관심이 있었다. 군교는 남은 나졸들을 데리고 벽돌탑 아래 잡혀있는 사람들에게로 갔다. 그들이 탑 아래에 도착하자 동네사람들을 지키고 있던 막내의 부하들이 도깨비를 향해 달려갔다. 군교는 잡혀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돌이 가족을 잡아냈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칼을 뽑아들고 도깨비를 향해서 외쳤다.

“이자들이 보이느냐? 투항하지 않으면 이자들을 죽이겠다.”

못된 것만 배운 군교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도깨비가 던지 창이 날아들었다. 군교가 피할 새도 없이 도깨비가 던지 창이 군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의 입으로 숨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군교의 몸이 땅에 부딪쳤다. 멀리서 요란하게 싸우는 모습이 군교의 눈에 들어왔다. 곧 군교의 입에서 기침이 튀어나왔다. 군교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누구하나 자신을 도우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긴 수염의 사내가 칼을 휘둘렀다. 그 칼날이 도깨비의 가슴 가까이를 긋고 지나갔다. 도깨비가 긴 수염의 사내를 흘끗 바라봤다. 그리고 도깨비는 방망이로 긴 수염의 사내를 내리쳤다. 긴 수염의 사내가 머리 위에서 내리 꽃이는 방망이를 칼로 막았다. 그 힘이 강해 왼손으로 칼등을 받쳐 겨우 견딜 수 있었다. 도깨비는 누르고 긴 수염의 사내가 받치고 있는 사이 막내의 칼날이 다시 도깨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도깨비가 허리를 틀어 막내의 칼을 피했다. 막내의 칼날은 도깨비의 옷은 찢었지만 도깨비의 몸에는 흠집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도깨비의 몸에서 주머니 하나가 툭 떨어졌다. 막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낚아챘고 손으로 만져 내용물을 확인했다. 긴 수염의 사내가 막내를 쳐다봤다. 막내가 고개를 끄덕여 그것이 그들이 찾던 유두임을 알렸다. 막내는 도망을 치고 도깨비는 막내를 쫓고 긴 수염의 사내는 그런 도깨비를 막았다. 그러는 사이 삐익 하는 피리 소리가 들렸다. 긴 수염의 사내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 곳에는 몸이 뚱뚱한 검은 옷의 사내가 수레에 동종을 싣고 임청각 쪽에서 벽돌탑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사내의 손에 신호용 피리가 들려있었다. 뚱뚱한 사내가 손짓을 하자 수레를 끌고 왔던 무리들도 칼을 들고 도깨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이 합세하여 도깨비를 막자 막내가 도깨비를 피해 동종을 향해 움직였다.

젊은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을 잡고 있는 나졸들을 공격하려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본 박노인이 고개 짓으로 그들을 말렸다. 나졸을 공격하면 나라에 반역하는 것이니 다시는 안동에서 살 수 없고 관군을 피해 산으로 숨어들어 산적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었다. 박노인은 품고 있던 피리를 꺼냈다. 그리고 피리를 입가에 가져가 몇 마디 말하더니 피리를 벽돌탑 위로 던졌다. 벽돌탑 3층 지붕에 피리가 날아가 부딪히더니 피리는 곧 도깨비로 변했다. 도깨비가 된 피리는 벽돌탑 3층 지붕에 두 팔과 두 다리를 거미같이 붙이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탑에서 뛰어내려 날뛰기 시작했다. 길쭉한 피리가 나졸들을 위협하자 나졸들은 창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피리는 박노인을 바라보고 한번 씨익 웃더니 도깨비가 싸우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돌이야 다시 만나 반갑구나.”

피리는 돌이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성큼 성큼 산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는 돌이 일행이 저쪽 세상에서 나올 때 사용한 도깨비집으로 달려가 그 집 아궁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도깨비들이 하나둘 아궁이를 통해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아궁이에서 이쪽 세상으로 쏟아져 나온 도깨비들은 몸집을 키운 뒤 싸움터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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