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별곡 17
이 낯설고 황량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만 이런가?
다른 사람들은 화가 안 나나?
너무 황당하여
이게 무슨 일이냐고
발로 길바닥을 차고
시멘트벽을 때리고
울면서 옷을 집어던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맞닥뜨린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여기가 거기가 아닐 거라는 강한 부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당황한 남편은 한 참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잖아. 여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했겠느냐고, 농촌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 이 아니냐고 달랬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건 저렇게 무식하게 덮으면 안 되는 거지!
수백 수천 년을 흐르는 물이 만들어낸 매끄럽고 부드러운 돌바닥에 파인 웅덩이와 좁은 물길.
회색 암반으로 된 이 작은 도랑의 바닥은 물길이 다듬어 낸 조각 작품이었다.
비 그친 뒤 골목으로 나온 아이들이 물웅덩이를 만들고 물 길을 내고 둑을 쌓고 놀듯 마치 자연이 그렇게 논 것 같았다.
물은 골짜기 위로부터 흘러와 도랑을 이룬다.
풀들이 우거져 도랑을 덮기도 한다.
개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물은 작은 웅덩이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길을 따라 흐른다.
둑에는 층층이 작게 부서지는 청석이 있어 그 사이사이 자란 물방울에 젖은 작은 풀들이 자라고.
숲이 우거진 아래 이끼가 자란다.
나의 무릉도원
그 모든 아름답고 다정하고 살아 있던 것을
몇 천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시멘트로 확 덮어 버리는 쿵 하는 소리.
나는 까 뒤집어서 그 아래 묻힌 도랑을 다시 꺼내고 싶었다.
아프고 아깝고 -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무릉도원으로 가는 그 길을 잃어버렸다.
길이 거기 있지만 그 길은 없다.
그 길을 따라가면 아버지와 엄마가 동그란 무덤으로 나란히 사이좋게 계시지만
그래도 그 길이 그 길은 아니다.
어쩌면 그 길에서 고생고생 힘들었던 엄마와 아버지는
그 길이 그 길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참 잘했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의 위로를 안고
그렇게 나의 미골 가는 길은
나의 무릉도원은
시멘트 아래 영원히 묻히고 말았다.
아버지 기일이 4월 말 봄날이라 멀리 사는 나는 해마다는 아니지만 이 길을 걸어 엄마와 아버지 산소를 갔다.
이 골짜기를 따라 있는 산에는 묘가 많아서 밋골이라 부른다. (사투리로 묘를 미라고 한다.)
복사꽃, 자두꽃이 피고 나무 아래 자북한 냉이꽃, 민들레꽃 바다의 호젓한 이 길을 걸으면 골짜기를 따라 솔바람이 불어오고 뻐꾹새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길. 둑을 따라 흐르는 좁은 도랑의 흐르는 물과 돌바닥은 내 마음의 비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봄 마주친 시멘트로 싹 정리되어 버린 도랑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아깝고 화가 나고 속상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울며 발로 차고 옷을 던지고 펄펄 뛰었다.
그 시멘트를 까뒤집어서 그 아래 있는 그 세상을 다시 꺼내려했다. 아무리 울며불며 발버둥을 쳐도 엄마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시지 않았듯 그 도랑도 다시 오지 못하리라 알아서 더 그랬다 -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거다. 맞는 말이다.
지금 시멘트 도랑은 막힘도 없이 물이 잘 흘러가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마운가.
좁은 길이 넓어져서 경운기도 편하게 오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 신선이 마시던 감로수가 농부들의 굽은 어깨를 펴게 해 주는 물이 된 거야.
그래도 시멘트 도랑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부모님 산소를 가도 아예 그쪽을 보지 않고 자두 밭만 보고 걸었다.
이제 시멘트 수로에도 풀과 꽃이 자라 서로 어우러지고 있다.
땅 속에 묻힌 물 길은 무릉도원으로 가는 비밀의 문이 되고
무심한 물은 새 물 길을 따라 명랑하게만 흘러간다.
아직도 가끔 잠들기 전, 폼페이 유적처럼 밋골 가는 길의 시멘트를 걷어내는 상상을 한다.
진짜 내가 막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