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린의 작업에 대한 이해는 그가 속했던 세계로부터 친연성과 동질감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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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담론을 짚어보게 하는 전시의 제목 <숲 온도 벙커>는 첫 여행 이후 곧장 작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행일 지 모른다. 한 동안 의식에서 미끄러지고, 무의식 속에서 소환되기를 반복하면서 열목어 이야기는 환경파괴나 기후 위기를 상투적으로 다루는 작업으로 흐르지 않을 당위와 대상을 가까이 재현하거나 너무 멀리 추상화시키지 않을 여유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작업을 준비하면서 작가는 여러 차례의 현지 조사여행과 문헌연구, 어류학자와의 대화 등 여러 방면에서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과정 끝에 다다른 곳은 우리가 아는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모르는 것,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를 혼탁하게 흐림으로써 누군가의 사고 통로를 열어두는 일이었을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이 그려내고자 했던 ‘경이의 여행’ (Voyages extraordinaires) 시리즈처럼 작업의 이야기는 신비한 광선과 해저의 깊은 구멍,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기담과 모험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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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르지, 지금도 낙동강 어느 틈새에서 한강 열목어가 길을 찾고 있을지.’ 로 마무리되는 작업 노트를 읽으며, 나는 미약한 상상력을 끌어와 오래 전 달과 지구 사이를 오간다던 인어 종족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우주를 헤엄쳐 건너, 달에서 알을 낳는다던 인어 떼와 지구 행성의 핵 오염으로 인해 전개되는 인간과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가물가물한 예전의 이야기는 그렇게 또 다른 사념으로, 과감한 몽상으로 이어진다.
커다란 꼬리로 대양을 가르던 향유 고래와 잔 비늘의 힘으로 계곡을 거슬러 오르던 열목어가 땅이 솟아나고 바다가 꺼진다면, 서로 뒤바뀐 위치에 가 있을까 하는 상상. 어쩌면 에베레스트 산맥만큼이나 해저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리아나 해구 안쪽에 침잠해있던 단단한 암석덩어리가 봉화의 야트막한 계곡으로 튀어 오르고, 펄펄 끓던 베트남의 주물 공장이 시베리아 얼음 바다 아래로 잠기는 그런 상상.
백만 광년 바깥의 크립톤 행성에서 날아온 것 같은 색색의 인공 물질 덩어리를 바라보며, 나는 그것을 오늘날의 미술품이 아닌 온 존재의 ‘경이로운 여행’을 추억하는 천연 기념품이라 여겨 보기로 한다.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화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