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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Mar 12. 2018

#3. 1999년 <디자인 발견> 전 이후

디자인미술관의 개관과 디자인전시의 제도적 고착

  

1999년 예술의 전당 내에 디자인 미술관의 개관[1] 이후 지난 15년간 ‘디자인전시’는 공공미술관을 비롯한 다양한 미술 제도와 공간을 통해 생산되어 왔다. 디자인미술관의 개관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디자인 미술관의 비전과 기획 방향을 예고하는 첫 번 째 기획전이 <디자인 발견 – 일상 속의 디자인 문화>(1999.11.11 -2000.1.20)라는 제목으로 준비되었다. 1997년광주 비엔날레 특별전과 마찬가지로 ‘일상’ 그리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디자인을위한 디자인이 아닌 일상적 삶의 풍경 안에 녹아 든 디자인을 새로 ‘발견’해 내리라는 기대감을 자아낸다. 


주최 측의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디자인을 보는 관점을 ‘산업’으로부터 ‘문화’로 전환시키고, 대중의 일상문화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디자인에접근해보자는 취지로 마련 된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도시의 기호/사물의 질서/육체의 언어/주거의 풍경/ 가상공간과의 만남>이라는 소주제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앞서의 전시처럼 근·현대 시각문화전반을 다루기 보다는, 1999년 당시의 시각에서 바라본 당대의 일상,즉 급격하게 변모하는 디지털 문화와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로의 이행을 다루고 있다. 세기의끝 자락, 다가오는 밀레니엄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 심리와 미래적 비전을 그려내고자 하는 기획 의도는그 자체로 납득할 만한 의도이다. 그 누가 기획했더더라도 1999년이라는 시간성이 내포하는 시대상을 강조하는 주제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를 구성하는 어법이 지나치게‘설치미술’에 가까웠으며,전시의 내용 또한 산업 생산품의 나열에 다름없어 결과적으로 기존의 미술 전시보다는 못하고, 디자인 전시로서는 본령을 잃은 어정쩡한 풍경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당시 “예술에 가위눌린 디자인” 같다는 평가[2]과 함께 “예수 없는 예배당처럼 디자인 문화가 실종된, 최첨단 ‘전시’ ”만이 남았다는 적확한 평[3]을 통해 전시를 바라보는 디자인 관계자들의 진단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일상 속의 디자인 문화’를 통해 디자인 문화를 ‘발견’해 나가겠다고 표방한 것과 달리 ‘일상성’에 대한 문제 의식 자체가 단단하게 영글지 못한 채, 디자인에 대한 생산적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 데에 있을 것이다. 또한 디자인을 보는 관점을 산업에서 문화로 전환하자고 한 호기로운 선언과 달리 여전히 디자인을 시대의 시각적 ‘결과물’로 규정하는 관습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디자인미술관이 개관전으로 포문을 열었던 디자인 전시란 산업디자인 전람회 혹은 박람회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수준을 면치 못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의 진입과 함께 디자인미술관은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기획 전시를 매해 선보여왔다. <간판을 보다>(2000)전을 시작으로 <de-sign Korea: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2001),<디자인이 있는 거리>(2002), <신화 없는 탄생, 한국 디자인 1910-1960>(2004), <인간을위한 도시 디자인>(2005) 등 일련의 전시들을 꾸준히 생산해왔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디자인이 전시의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시각 제도로서 안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보아 이러한 기관형 전시들이 한국 디자인의 이론과 현장을 통합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달하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각각의 전시에 담긴 개별적인 성과와 의미를 나름대로 찾을 수 있겠지만, 한정된 기획자 풀에서 반복 재생되는 전시 관습과 서사 방식의  지리멸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디자인 이론가 강현주의 표현대로, 디자인미술관은 공공디자인 담론의 ‘진앙지’[4]역할을 하도록 기대, 설립되었다. 1999년개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디자인 전시의 생산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디자인미술관의 활동은 한국 디자인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쳐왔다. 그러나  긍정적 성과만을 조명하기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디자인이론과  현장감각을 겸비한 전시 기획자의 지층이 너무도 얇았던 탓일까?


비슷한 관점의, 고만고만한 수준의 전시가 되풀이 되었던 것은 상당히 제한적인 기획자 풀 안에서 전시가 만들어졌다는 데서 그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기관주도의 관제적 전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을 확보한 전시를 연이어 선보이기 어려운 점을 혜량할 수 있겠지만, 전시의 결과물들이 축적되어 점점 더 탁월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 보다는2000년대 중반까지 적절한 전시의 방법론을 찾아 헤매는 형국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디자인미술관이 디자인 관련 전시를 하는 ‘갤러리’, 즉 공간으로서의 기능에서 벗어나 전문적 조사연구에 기반한 자체 컬렉션과 아카이브를 갖춘 ‘미술관’으로 이행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세분화된 관객에 대한 이해와 전략 없이 블록버스터 형 디자인 전시와 홍보용 전시만 살아남은 것이 디자인미술관의 현 주소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디자인 전문 미술관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 디자인 미술관의 존재는사실상 실종된 셈이다.  


      



[1] 1999년 2월에 ‘문화산업법’을 제정한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의 맥락에서 본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여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한편, 산업 제 분야에 디자인 관련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할 목적으로 디자인미술관을 설립하였다

[2] 김신, <예술에 가위 눌린 디자인>, 한겨례 신문, 1999년 12월 15일자

[3] 김민수, <허공 속의 한국적 예술 민주화: 정치 없는 디자인 정치>, 디자인문화비평 2권,p.81

[4] 강현주, <공공디자이너는없다>, 디자인 미술관 웹진 원고, 2007년, 2월 15일

[5]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의 전시 역사를 살펴보면 1999년 디자인미술전의 개관기념전에 작가로 참여했던 김상규가 2000년에는 전시 기획위원으로 참여, 이후 2001년부터 디자인미술관의 전담 큐레이터로 고용되면서,  2005년까지 매년 2개 이상의 기획 전시를 선보여왔다.  기획자 김상규는 당시의 기획 환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권혁수 선생의소개로 미술관 개관전에서 <주거의 풍경> 섹션의작가로 참여해 연을 맺어, 2001년 1월부터 디자인 큐레이터로서몸을 담게 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디자인 콘텐츠로 전시를 한다는 것에 필요성을 못 느끼며 이해도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디자인 전시란 산업디자인 전람회와 같이 공모전의 결과를나열하거나, 박람회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형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01년 큐레이터 업무를 시작했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지침이 될 텍스트도, 역할 모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출처: http://hui88cs.publicvm.com/viewer/216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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