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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Mar 12. 2018

#2. 1997년, 지식생산형 디자인 전시의 원년   

- 시각문화의 구성 요소로서의 디자인과 일상성의 조명

국가주도의 디자인 정책, 즉 수출을 위한 산업 디자인이라는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전후 디자인 문화와 그 안에서 전개된 디자인 전시의 전사를 미처 다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상공업 박람회의 형식을 띄었음은 물론이다. 역사와 문화라는 거대담론과도, 일상과 삶이라는 미시사와도 그 어느 쪽과도 접면을 갖지 않는, 말 그대로 상품 쇼케이스다. 


국가적 산업진흥 차원의 디자인 전시 모델을 벗어나 시각문화로서의‘디자인’ 그 자체를 주요한 내용으로 다룬 최초의전시는 1997년 <일상·기억·역사 – 해방 후 한국미술과시각문화>로 기억된다. 이 전시가 ‘최초’의 ‘디자인’ 전시냐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진행된 조사연구형 전시의 원형을 제시한 시각 디자인 중심의 전시라는 점은 분명하다.


1997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으로 마련된 이 전시는 1945년 해방이라는 역사적 기점을 ‘새로운현재의 시작’으로 상정, 한국 근현대기의 포스터, 사진, 광고, 문화 등 시각문화 자료 전반을 광범위하게 소개하였다. 


전시는 크게 ‘시대’와 ‘분야’ 두 개의 축으로구성, 해당 시기의 모습을 매체 환경의 변화를 통해 연대기적으로 보여주었다. 시각문화라는 광의의 범주 아래 미술, 광고, 사진, 영화, 만화, 건축, 키치화, 패션등 총 여덟 개의 분야로 나누어 사회사적 사건들과 맞물려 변천해 온 상세한 상황을 통해 당시의 일상을 재조명 하였다. 전시가 전달한 현실적 구체성에 대해 ‘해방이후 시각 문화의 파노라마’[1] 혹은“최초의 본격적 대규모 다큐멘터리 전시”[2]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전시 기획자 김진송은 ‘일상성’을 “역사,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서로 분할된 인식론적 구분들을 작동시키고 통합하는 원리”라 설명하였다.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어로 ‘일상성’을 표방한 이러한 시도는 미술을 꼭지점으로 한 기존의 시각예술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다양한 시각적 기호를 결집시킴으로써 시각문화, 더 좁게는 디자인 전시와 이를 통한 사회사적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물론 실제 전시를 관람한 인원은 광주비엔날레 입장객의 일부이므로, 이 전시가 실제적인 폭발력을 획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찻잔속의 폭풍’라고 해야 할까? 비엔날레라는 국제적 미술 행사에서그 일부로서 기획된 일종의 부대 전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을 이들은 시각문화 연구자 혹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한 동질의 그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이후 등장하는 문화사적 관점의 대규모 디자인 전시의 일정한 원형을 제공함으로써 상징적 시원이 된다. 특히 21세기로의 전환과 함께 한국적 ‘디자인’ 역사와 문화를 회고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있어왔는데, 과연 1997년 전시 이후 한국의 디자인 전시가 얼마만큼 질적인 진보와 제도화, 내용적 변이점들을 생산해 왔는지 시간의 궤적을 따라 희미하게 이어진 ‘계보학’을 더듬어 나가기로 한다.  


      


[1] 노형석, <광주비엔날레 해방 이후 시각 문화의 파노라마>, 한겨례 신문, 1997년9월 5일

[2] 박찬경, <다큐멘터리와 예술, 무의미한 기호채우기> 『월간미술』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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