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Epilogue - <Rhapsody in White>
백색 광시곡
글 조주리
Notes on White
2018년 현재 ‘백의민족’에 대한 검색 결과 값은 학술논문 및 단행본 통합사이트인 RISS에서 총 910건, Google 검색엔진에서 125,000건, 동영상 사이트인 Youtube에 1,450건에 이른다. 물론 검색 수치 값은 언제나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많음과 적음이 판별되고, 그 속의 내용적 가치나 진위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 자체로는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굳건히 믿고 합의하고 있는 민족적 기원이자 변치 않는 내집단으로서의 ‘한반도 한민족’과 일종의 민족 색채로써 연합된 ‘백색’이 맺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와 언술의 정치학을 되짚어 봄에 있어 필요한 근거와 단서들을 제공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백의 숭상의 신화적 기원과 일상적 소비, 억압과 귀환, 근대적 망실과 현대적 재림의 과정을 좇아가는 여정은 일반적인 역사 연구의 영역 안에 민속학과 미학, 집단심리학과 이미지 중심의 색채 문화비평, 식민지연구와 탈식민주의 담론이라는 복수의 층리들을 한꺼번에 밀어 넣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 100여년 동안 백의를 둘러싼 문화 담론에 스며있는 인종- 본질주의적이고, 경우에 따라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이따금 지리멸렬하기도 했던 연구의 파편들을 2018년의 타임라인으로 연결하되, 이미지들로 구성된 서사를 짜보는 것이 이 짧은 논고의 목표점이다.
Upon WHITE
오래 전, 하얀 눈에 관한 셀 수 없이 많은 표현을 갖고 있다 했던 이누이트 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특정한 자연환경과 소수민족의 언어가 조응하며 만들어 내는 풍부하고도 섬세한 빛의 이미저리에 대해 감흥과 동경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실상 교착어 성격의 에스키모 언어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 인류학자의 몰이해로 벌어진 과잉 해석으로, 눈에 둘러 쌓여 살아간다고 해도 이누이트 족이 흰색에 관한 수백 개가 넘는 단어를 구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민족의 백의는 어떠한가?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백의를 숭앙하고, 일상 속에서 즐겨 입으며, 국가권력과 식민지 주체가 강압으로 흰옷을 끌어내려 해도 끝끝내 백의 습속을 지켜온 민족적 관성에 관한 공식적 역사 기록, 정황 증거와 증언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민족적 코드로서 잔존하거나 때마다 소환되는 백의의 표상들. 북극의 흰 눈과 달리 진실로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 칭함에 무리가 없다.
순백, 수백, 백정, 정백, 선백, 유백, 난백, 회백, 황백, 청백, 소색, 담색. 백색을 정밀하게 분류하는, 채도, 명도, 톤, 분위기에 따른 미세한 스케일이다. 백색이 본디 무색이거나 빛의 색으로 특정하게 서술되기도 했다는 것은 확실히 염색 기술이나 염료가 부족해서 무명옷만 입었다는 설이나, 조선말부터 이어진 국난과 국상으로 인해 상복 벗을 날이 없어 소복이 일상복으로 굳어졌다는 가설을 부분적으로 반박하는 요소가 된다. 백색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양한 색의 옷이 존재해 왔으나 복잡한 무늬와 장식이 배제된 미니멀한 취향의 백의를 고대로부터 근대기 까지 집단적으로 선호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는 일종의 집단적 취향이자 합의된 색채 표상으로 다가온다. 비련과 애상의 코드를 조선의 백의에 강하게 덧씌운 야나기 무네요시 식의 관점과는 다른 독자적 색채 소비 패턴이며, 요람에서 입관까지 하나의 색으로 이어지는 생의 철학에 해당한다.
WHITE IS the OLD BLACK
한국인의 백의 애호 역사에 관한 이론과 해석은 단일하지 않으며 삼국시대 이후부터 지속되어 온 백의에 관한 금지 정책과 일반의 수용 사이에는 언제나 적정한 괴리가 존재해 왔다. 다만 끈질기게 이어져 온 백의에 대한 선호와 습속이 근대화의 파고 속에서 급격히 절멸한 것은, 한국인의 복식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유래 없는, 근대화/서구화 과정 속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게 된다. 당장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흰옷을 입은 조선인들의 이미지, 서구인의 시선에 포착된 무명의 기록사진들을 보면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과거의 사람들이 즐겨 입었던 흰 옷들이 믹스-매치가 용이한, 멀티 웨어로서, 일상적 노동복이자 외출복이었고, 경우에 따라 생애 의례복을 두루 겸하였고, 심미적인 측면에서도 조선의 풍경과 자연 속에 자연스레 녹아 드는 SSFW 토탈 컬렉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은 현대적 어휘로써 과거의 생활사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어긋나는 점이 있겠지만, 백의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블랙 의상 역할을 수행했던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시대 내내 거듭된 백의금지령과, 비-위생과 비-경제성을 이유로 개화기 내부의 지식인들로부터 제기된 백의 탈의론, 일제의 강압적 백의 억압 정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 깃든 백의 문화를 부러 없애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신체로부터 백의를 벗겨내는 과정은 내부의 계몽으로부터 외세에 의한 강제와 폭력의 역사로 이행하였고, 그 과정은 단순한 취향에 대한 탄압이기보다 전통을 원시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양복을 우월한 것으로 상정하며, 나아가 식민지를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과 그에 필요한 공장 설립과 노동 수탈, 소비재 취향을 계발, 가속화하는 ‘척식’의 역사로 이어진다.
RHAPSODY IN WHITE: Reiterated Colors
그런데, 본 논고에서 흥미롭게 여기는 지점은 내외부의 시선에 의해 일종의 민족적 표상으로써 고착된 백의 자체에 대한 인류학적 규명이나 백의 억압과 근대적 소실에 대한 뒤늦은 고발이나 전통의 복권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방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한 때 절멸하다시피 한 백의문화가 해방 이후 지난 반 세기 동안 민족주의적 사회 담론 안에서 소환되는 과정에서 작동한 스스로 선택한 신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적극적인 재-투영, 이후 새롭게 구성되고 덧씌워진 문맥 속에서 흰색의 이미지와 의미가 소비되는 구체적이며 분열적인 양상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나아가, 모시와 삼베, 무명을 짜는 전통 여성 직조노동의 역사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방직 산업의 공식적 경제사와 화려한 패션의 역사 속에서 누락되어 온 작고 누추한 이야기들에 확대경을 놓고, 들여 보려고 한다.
본 호에서는 흰 옷이 펼쳐내는 새로운 서사적 풍경들을 이어낸다. 마담 투소 박물관에 놓인 인형처럼, 현대적 모시 기념관에 들어앉아 있는 직녀는 밀랍 인형의 모습으로, 오래 전 독립 항쟁과 노동 쟁의가 벌어졌을 광장에는 프랑스 귀족 풍모의 백색 만찬 디네 앙 블랑이 펼쳐지고, 순수하게 증류된 동양적 고아함의 결정체로서의 코리안 오리엔탈리즘의 세계를 활짝 열어준 고 앙드레 김의 유산들과 국제 미인대회에 자주 출몰하는 백색 선녀 한복으로, 끝끝내 원환을 품고 귀환하여 남성을 위협하는 흰 소복 입은 귀신으로, 전 여성 대통령의 드레스 메이커였던 최순실의 수의 두른 창백한 모습으로.
백의가 부정기적으로 귀환하는 만화경 같은 양상은 백 년 전 여행자의 푸른 눈에 비쳤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백의 민족이 함께 써내려 온 지난한 질곡의 서사는 민족적 선율과 세찬 감정을 담은 광시곡에 가까워 보인다.
RHAPSODY IN WHITE
Notes on White
If one was to type in and search Baekuiminjok (백의민족, white-clad people) online, one will end up with 910 hits on RISS, an online academic essay and publication database, 125,000 on Google, and 1,450 on Youtube as of 2018. These numbers in and of themselves do not mean much—the number of hits can seem large or small depending on what they are being compared to, and the quality and authenticity of the information cannot be verified. However, it is enough to serve as pretext in reviewing the concept of “The Korean people on the Korean peninsula”—who will forever remain as the “in-people”—which is firmly believed and accepted as our nationalistic origin; and the various images and politics of discourse that the “color white” as a representative color of a people encompasses.
The journey—of tracing the mythological origins of revering white clothing, its daily consumption, repression, return, and loss due to modernization, and its comeback in the modern era—is one of squeezing in the multiple layers of: folk culture studies, aesthetics, mass psychology, image based color culture critique, colonization studies, and post-colonization discourse in the field of general historical research. The aim of this short statement is to bring back the fragments of research that seem incoherent at times, to the year 2018, but this time, by using images to create a narrative while keeping in mind the ethnic-essentialist, and at times mysticist elements that permeated the culture discourse on white clothing for the past 100 years.
Upon WHITE
A long time ago, I was told the story of the Inuit, how they have countless expressions for the white color of snow. I was inspired by the way the natural environment and a language of a people can consolidate to create the intricate imagery of light. However the truth was, they did not have hundreds of words for white even though they are surrounded by pearly snow. This idea was the result of the western anthropologists’ misunderstanding and over-analysis of the agglutinating language system of the Eskimos.
Then, what about the white clothing of the Koreans? There are historical records, circumstantial evidence, and testimonies on worshipping white clothing en masse throughout history, wearing it daily, and the people guarding their beloved pale attire no matter how much the country and colonizers alike tried to oust it. The symbolism of white apparel is revisited even to this day, and remain as a nationalistic code. Unlike the white snow of the North Pole, one can safely say that our people is truly one garbed in white.
Soon-baek (순백, pure white), soo-baek (수백, pure white), baek-jung (백정, porcelain white), jung-baek (정백, clean white), seon-baek (선백, pure white), yoo-baek (유백, milky white), nan-baek (난백, ivory white), hwe-baek (회백, grayish white), hwang-baek (황백, yellowish white), chung-baek (청백, bluish white), so-saek (소색, bleached color), dam-saek (담색, light color). These are all whites in different scales of saturation, brightness, tone, and ambiance.
This extensive list can be used to partially refute theories behind Koreans’ love of white such as, because of a lack of dyes, and dyeing technology, or because of a string of national crises and national funerals, the people no longer bothered to change out of their mourning clothes, and accepted it as their daily wardrobe. Not only white but other colored clothing did exist, however the Koreans were collectively partial to minimalistic garb, rid of elaborate patterns and decorations from ancient days until modern times. It can be read as mass preference, and an agreed color symbolism. It is a philosophy of a lifetime that spans in monochrome from cradle to grave unlike Yanagi Muneyoshi’s perception of projecting heartbreak and sorrow onto the ivory outfit of the Joseon people.
WHITE IS the OLD BLACK
The theory and interpretation of the history of Koreans’ white clothing devotion is inconsistent, with a constant gap between the ban on white clothing maintained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the acceptance of the ban by the people. However the persistent preference for white clothing and customs suddenly disappears amidst the turmoil of modernization. This severance is not only unprecedented in Korean but also in world clothing history, and is deemed a symbolic event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and westernization. Combing through the numerous images of Joseoners clad in white that were captured through the western gaze, makes one realize that these patternless clothes were multi-wear that would have been easily mixed-and-matched, and doubled up as both work wear and town wear, and at times even as ceremonial wear.
Aesthetically speaking, it was a SSFW total collection that perfectly melded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of Joseon. Such narrative may be modern and not quite appropriate for illustrating the past, however one thing is certain: white clothing was to the people of Joseon as black clothing is to us. Therefore, it would not have been easy to uproot the culture of white that was a part of life itself for the people of Joseon despite the ban that continued from Goryeo until Joseon, despite the intellectuals advocating an “out of white” movement on grounds of hygiene and practicality, and despite colonial Japan’s repressive ban. The history of ridding the people from their white garments transitioned from being self-enforced during the enlightenment era to being violently forced by external powers. This process is not so much a suppression of taste, but more of marginalizing tradition as being primitive, and endorsing western style clothing as being superior. Furthermore, it lead to the history of exploitation and acceleration thereof in order to create a new market of a colony establishing factories, labor profiteering, and inventing new tastes for consumer goods.
RHAPSODY IN WHITE: Reiterated Colors
However the RHAPSODY IN WHITE is not focused on the anthropological analysis on the white vesture that positioned itself as a people’s symbol of sorts due to both internal and external perceptions; nor on the belated exposure of white wear repression and modern disruption; nor on reinstatement of tradition.
Rather, the focus is on the zealous re-manifestation of the purposefully chosen mysticism and orientalism that was animated in the process of reincarnating the white clothing culture—that was all but abandoned during the course of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within the nationalistic social discourse for the past half century after independence; and the concrete and fragmented pattern in which the image of white is consumed within a context that is rebuilt and recast. Furthermore, the aim is to zoom into the tradition of women weaving moshi (모시, ramie), sambe (삼베, hemp), and moomyung (무명, cotton); the textile industry’s public economic history that extends from the colonial era, to post independence, to today; and the small, humble stories that were lost amidst the glamorous fashion history.
The RHAPSODY IN WHITE connects a new narrative landscape of white attire in the forms of: weavers demonstrating their craft at the modern moshi memorial hall like wax figures in Madame Tussaunds; the Dîner En Blanc with its French aristocratic flair held at a square where independence movements and labor strikes were once held; André Kim’s world of Korean orientalism, materializing pure distilled eastern elegance; white fairy hanbok (한복) that ever so often make appearances on the international pageantry stage; female ghosts who come back with a vengeance against men clad in white mourning attire; the former female president’s dressmaker, Choi Soon-sil’s pallid appearance shroud in prison uniform.
White clothing is making irregular kaleidoscopic comebacks, but it is no longer simple and beautiful as seen through the blue eyes of a traveler 100 years ago. The difficult and tumultuous epic of our Baekuiminjok seems more like a rhapsody with a nationalistic tune and fierce emotional expre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