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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Nov 15. 2018

황야의 내부로, 성채의 바깥으로

전시 <2의 공화국 다시 읽기>, 월간미술 11월호 게재

 전시 <2의 공화국> 다시 읽기

   – 황야의 내부로, 성채의 바깥으로


글 조주리



열 세 팀에 이르는 듀오 아티스트들의 창작 방식과 관계 지형을 전시의 주제로 다루고자 했던 <2의 공화국>은 2013년 당시 아르코미술관이 시행했던 오픈콜 프로그램의 선정작으로, 공공 기관의 바깥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에게 전시를 제안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던 희귀 사례에 해당한다. 사실상 규모있는 기획전시를 꾸려본 경험이 없었던 신진 큐레이터에게 차례를 내어 주었던 것은 기관으로서는 일종의 파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미술관 측의 남다른 아량이나 기획의 독창성 때문이었기보다 내부에서 필요한 ‘기획’을 외부로부터 ‘공모’한다는 말 만큼이나 영악스러운 시대의 호출은 아니었을까. 협업의 가치에 대한 긍정과 그 속에서 예술의 면모를 더욱 특별하게 시각화하려는 욕망은 사회 전반에 두텁게 깔린 기제였고, 경쟁을 통해 단 한 팀에게만 전시 기회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과정 역시 전국민의 오디션화 열풍 속에서 태어난 시스템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전시는 2인 콜렉티브로 구성된 시각예술 프로그램이었지만, 2013년의 에피스테메가 담긴 시대의 풍경이기도하다.


전시의 구체적 내용과 구성을 복기하기에 앞서, 전시 생산의 조건과 수용 맥락을 지금 시점에서 되짚어 보는 일은 퍽 중요하다. ‘성채’처럼 수식된 2의 공화국이라는 전시명과 화려해 보이는 전시의 무대가 실상은 자아와 타자, 각각의 내부와 외부가 상호 쟁명하고 파열되는 ‘황야’였음을, 둘로 이루어진 세계의 단단함 안에 연약한 속살과 흔들리는 고갱이로 이루어졌음을 지금에서야 발설하고 싶어진다. 전시 <2의 공화국>은 외견상 협업의 예술적 가치와 당위를 설명하고 작가들 간의 전략적 연정(聯政)을 옹호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창작자들의 협업 과정과 긴장 관계를 전시로써 외연화 화는 과정 속에 적잖은 난관과 모순점들이 존재한다.


당시, 더 바인더스라는 팀명으로 응모했던 두명의 큐레이터(조주리, 박경린)가 공동으로 작성한 기획글을 살펴보면, 전시가 미술의 역사에서 오랜시간 단독자로서 존재하는 창조적 예술가 신화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모델로서 협업체제를 상정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그것은 전통적 저자개념의 부정이기보다는 복수의 저자성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었고, 작가들의 아이덴티티 게임으로 제유되는 동시대 예술계 읽기의 시도이기도 했다. 사실은 언제나 존재해왔던 협업의 구체성이 발현되는 ‘장’이 미술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작동되고, 미술의 창작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에서 그 특이점들을 솜씨있게 조망해 내는 것이 충분히 유효하다는 판단을 근거로 하였다. 기획단계에서는 아카이브 전시의 방법론을 중심에 두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작가들의 작품 안에서, 그리고 작품과 작품의 지형 속에 기획 의도들이 암호화되는 방식으로 우회하였다.


‘2’라는 숫자를 중심에 두고 협업의 개체와 변주의 경우수에 제한을 둔 것은, 그 안에서 가장 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대립, 상보, 경쟁, 보완 등의 워킹 모델을 시각화하고 싶은 기획 의도에 따른 것이다. 작가 풀을 다시 영구적 체제와 (언제 깨질지 모를) 일시적 구성체로 뒤섞고, 건축, 패션, 뉴 미디어아트, 기획 콜렉티브, 소셜 서비스 디자인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전시 안에 작가와 그들의 작업을 ‘초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시 만들기 과정에서부터 각 팀이 개입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역할들을 부여하고, 협업의 의미와 방식에 대한 비평적 서사를 스스로 작성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전략의 실행과 함께 전시는 열 셋의 2의 공화국들이 병렬적으로 놓인 집합형태가 아니라, 여러 주체가 비균질적인 위상을 갖는 탈 중심적 소사이어티로 설계되었다. 때문에 그 속에서 작품들 간의 명확한 위계와, 관람 상의 기승전결, 작업의 완성태를 만나기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둘, 경우에 따라 하나 혹은 셋, 넷, 다섯으로 이루어진 다자적 관계망과 팀의 페르소나, 작업의 환경, 협의와 불화의 과정들을 조형적 설치로 우회하여 드러낼 뿐이다.


협업의 과정 안에서 발행하는 정체성의 분열과 교환, 전략 체계 그 자체를 작품으로 은유해 낸 경우는 킴킴 갤러리의 <킴킴 더 제너럴리스트>와 김장 프랙티스!의 <합의의 지점>을 들 수 있고, 잭슨홍/홍승표, 플랜B(류한길, 윤지현, 김태윤), 곤잘레스 인터내셔널(구민자, 윤사비)의 작업 역시 그러한 테제에 포함될 수 있다. 협업의 결과물로서의 작업 과정의 단면들을 담아내는 전략은 코이노니아, 엑소네모(exonemo), 방앤리, SWBK, 에브리웨어 등이 속하겠지만, 어쨌거나 그 모든 선택 또한 작업 자체에 대한 선명한 부각이라기보다 2인 공동체의 철학과 방법론, 관계의 동역에 대한 도해에 가깝다. 그 밖에도 건축가 그룹 최-페레이라의 경우 공간 디자인에 참여함으로써 실무그룹으로 결합하였고, 당시 큐레이터 듀오였던 워크온워크는 전시 매뉴얼 작성을 통해 제도 비평적 코멘트를 시도하였다. 끝으로, 기획자와 실제로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베타뷰로(Betabüro)의 경우, <2의 공화국>이 제시하고자 했던 하나의 모델로서 제유되었다. 호주출신의 기획자와 인도 출신의 컨설턴트가 영국을 중간지점으로 하여 각각 함부르크와 뉴욕에서 협력해 나가는 워킹 모델은 다시 기획자가 대리 연출한 쌍둥이 오피스로써 구현되었다. 건조한 풍경 속에 두 사람 간의 동떨어진 거리와 매우 밀착된 협업의 성취가 상기시키는 시대적인 힙함, 이에 대한 열광, 그리고 오인들. 어쩌면 미술 바깥의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들의 예술적인 업무처리 과정 속에서 융복합이라는 단어가 강제하는 불편한 기색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전시는 강박적일 정도로 대칭적인 두 세계의 균형과 비대칭적 침범이 교차하는 더블-이미지, 혹은 연속되는 2의 프랙탈 이미지로 마음 속에 침잠되었다. 다만, 이후의 전시만들기를 해나가며 나는 여전히 서로 달라 보이는 것들끼리 곱게 짝 맞추고, 어긋나 있는 선들을 애써 이어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용기 내어 일하고, 친했던 무리와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혼자만의 2의 게임을 해나가고 있다. 함께 일했던 작가들로부터 배웠던 것처럼, 동료의 손을 잡고 황야의 안쪽으로 들어가보고, 홀로 안전한 성채 바깥으로 뛰쳐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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