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9월호, 'curator's voice' 에 개제
비교적 늦깎이로 전시기획 일을 시작한 편이다. 오 년 전인 2013년 아르코 미술관의 기획공모전에 낸 기획안이 덜컥 뽑히게 되면서부터로 기억하고 있다. 습작하듯 용감하게 그려본 전시의 구성안이 막상 제도공간 안에서 구현될 명분과 재원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이후부터는 전시를 주도했다기보다 13팀의 작가들이 제안한 신작들로 뭉쳐진 드센 기운과 몰아치는 시간 속에서 이리 저리 끌려 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체로 기획자의 상상 속에서 언어로 조탁되고, 개념 안에서 정밀한 축조 과정을 거친 전시의 지형도는 실제 설치라는 ‘후가공’ 의 시기를 지나, 그리고 대중에게 열려 있는 연극적 공간 안에서 관객들의 무작위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늘 애초와는 어딘지 달라진 심상과 의미망, 그리고 그것들이 자아낸 기이한 에너지로 귀결되고, 이윽고 낡은 기억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이것이 첫 전시의 기억이다.
이후 특정한 리그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 흔히 ‘독립 큐레이터’라고 말하는 조건 속에서 일하며, 지난 오 년 간 열 개 남짓의 전시들을 조직하고, 실행해왔다. 각 전시들의 내용과 형식, 기대되는 역할은 달랐지만 고백하건대, 일련의 전시들을 지나오면서 단계적으로 성취하고 싶었던 미션은 있었던 것 같다. 주제적 당위와 시의가 호출해 낸 작품들의 연역적 집합으로서의 전시가 아닌 전시 이전의 기원점과 작품 창작의 역동성, 막이 닫힌 후에도 새롭게 변성해 나갈 어떤 사건들을 내다보며, 기획자의 ‘프랙티스’를 섬세하게 궁리하고, 강화하여, 미약하게라도 변별점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 욕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베틀, 배틀>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사이클의 마지막 곡률에 걸쳐진 전시라는 느낌이 든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전 연구와 신작 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프리랜서 연구자/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의 세 지점이 포개지는 좌표 위에서 이번 전시가 시작되었다. 한편, 이미 옷을 주제와 소재로 다룬 두 차례의 전시 이력, 주로 민족지학적 관점과 연출방식이 채택된 이전의 전시에서 발언하기 어려웠던 내용과 억눌려 있던 형식적 제안들은 의도치 않게, 옷을 경유한 새로운 전시의 싹을 틔운, 전사(前史) 혹은 프리퀄(Prequel)이 되 주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베틀’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여성노동 기반의 직조문명, 방직기업사, 패션 인더스트리에서의 해묵은 문제들을 작가들과 함께 지금으로 문제로 정렬시키고, 동시대적 옷만들기라는 전시조건을 만들어 냄으로써 일종의 ‘배틀’을 벌여 나가는 미션을 구동시키고자 했다. 열 팀으로 구성된 창작자 집단은 스스로가 명명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걸고 각자의 이유있는 선택에 따른 질감과 무늬, 형태와 이음매로 만들어진 ‘오뜨 꾸뛰르’를 제안해 냈다. 각자가 품은 쟁점들은 직물과 옷이라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다른 차원의 오브제로 번안되고, 구체적인 제작술과 형태론, 배치 속에 발언을 담아낸다.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초기 단계에서 작가들에게 어느 순간 현대 미술에서 흔하게 소비되고 있는 역사적 조사방법론이나 관찰자로서의 시선은 되도록 후면으로 감추고, 각자의 조사연구와 쟁점들, 과격한 제스츄어는 옷감 표면과 봉제 선 안으로 산뜻하게 압축하고 미묘하게 추상화시키자 했다. 하이엔드 패션이 가진 모순적 어법을 한껏 투영한 작가들의 일그러진 쟁투가 그저 재현적 옷 만들기에 그치지 않도록, 현대미술 속 공회전으로 헛돌지 않도록, 치열한 조사와 발품, 낯선 이들과의 협업노동, 제작상의 오류,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시간 전시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실패의 시간들마저 견뎌 보자고 했다.
전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진행된 전시 준비와 현장 설치는 말 그대로 ‘배틀’ 그 자체였다. 그 안에 유사노동은 없었다. 작가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신작 제작을 강요하는 기획자와의 피곤한 대치의 시간이었고 경험한 적 없는 오뜨 꾸뛰르 발표 전장에서 다른 이들과 겨뤄야 하는 부담이었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확고한 전문가인 현직 디자이너들과 자신의 이름을 건 소책자를 만들어 낸 일곱 연구자들 역시 이번 전시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분투를 해야만 했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얼마간은 익숙해진 전시 문법과의 쟁투였고, 최대한의 노력을 방패 삼아 최소한의 큐레이터십을 지켜내고자 했던 이번 전시가 기획자로서 첫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쯤 되겠다.
전시란 그 드세기가 만만치 않아서, 이번에도 꽤나 끌려다녔다. 예상했던 방향으로 휩쓸려 다녔던 점만은 약간 달라진 점이다. 질퍽했던 고생의 과정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전시장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신선하다. 찬 바람이 불면, 습작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한갓진 자리에서 전시의 시퀄(Sequel)이나 구상해 보려고 한다.